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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덟시간 동안 빚고 쪄낸 천 개도 넘는 만두들
여덟시간 동안 빚고 쪄낸 천 개도 넘는 만두들 ⓒ 김혜원
두부를 한모나 한모반 정도를 넣으면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대형만두피로 약 100여개 정도의 만두를 만들게 되니 4인가족이 먹기에 적은 양은 아니랍니다. 그런데 두부가 열다섯 모라니. 저희 외갓집 만두소의 양이 얼마 만큼인지 짐작이 가시지요?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처음 맞는 설. 친정 엄마와 함께 나이 드신 외할머니의 만두만들기를 도와드리러 외갓집에 갔습니다. 기왕에 하는 거 한집에서 만들어 나누어 먹자고 한것인데 외갓집, 우리집, 이모네집, 숙모집 이렇게 네 가족이 먹을 양을 만들다보니 재료가 거의 공장수준인 것이지요.

아침 일찍 내려오라는 외할머니의 지청구에 서둘러 앞치마를 꾸려 가니 오전 열시. 김장 때나 사용할 만한 빨간 고무다라이 가득 만두소가 버티고 있습니다.

커다란 베개만한 밀가루 반죽 다섯개를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들고 그것을 스텐 종발로 떼어내 만두를 만들어야 한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할머니, 이거 누가 다 먹어요? 웬 걸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말 할 새 있으면 얼른 만들어라. 하다보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지난해보다 적게 했구먼 뭘그래. 옛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끄응~'

노인들과의 말싸움은 결과가 정해져 있지요. 길게 말할수록 젊은 사람이 손해라는 것.

증손은 도넛을 만들고 할머니는 만두를 빚고
증손은 도넛을 만들고 할머니는 만두를 빚고 ⓒ 김혜원
여든 넘으신 외할머니와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 환갑을 앞둔 이모와 오십대 외숙모, 마흔 중반의 저 그리고 올해 여섯살이 되는 증손이 주석이까지 본격적으로 달라붙어 만두빚기를 여덟 시간. 오전만 해도 절대로 없어질 것 같지 않던 만두소와 만두피가 드디어 바닥을 드러냅니다.

"으아아아~ 만두가 사람 죽이네. 할머니 다음부터는 사다 드세요. 해마다 이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하신데요."
"얘가 얘가, 젊은것이 말하는 것 좀 봐라. 식구들 입에 들어갈 걸 생각해봐. 힘든 게 다 뭐야. 많아 보여도 여기저기 나누면 얼마 안 돼. 너 잘 됐다. 내년에도 꼭 와서 만두 빚어라. 할미 죽기 전에만 하는 거야. 할미 죽으면 누가 만두를 빚겠냐? 애썼으니까 많이 가져가."

"애구~ 할머니. 이젠 만두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려구 그래요."
"누가 너 먹으래? 이 서방하구 용욱이 먹이라는 거지. 넌 그만 먹어 살쪄야."
"아이구 내가 못살아."

다 만들고 나니 천 개도 넘는 만두들이 베란다에 그득합니다. 힘은 들었지만 그 든든함에 마음이 뿌듯하겠지요.

온몸 구석 구석 안쑤시는 데가 없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부침개를 부치고 기름질을 해야합니다. 다들 잘 하시겠지만 오늘 저녁엔 아내의 팔다리도 주물러 주고 허리도 좀 두드려 주세요. 부엌일도 살짝살짝 도와주시구요.

모두 모두 행복한 설 맞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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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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