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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문학사
몇 해 전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영화 <선택>을 본 적이 있다. 0.75평의 방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형기를 사는 장기수들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눈뜨게 되었다. 박소연의 <눈부처>도 장기수와 그 가족의 삶을 내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눈부처’가 무슨 뜻일까. 언뜻 생각하기에 눈사람처럼 눈으로 만든 부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눈부처란 눈동자 속에 비친 사람의 형상을 말한다.

‘내 눈동자 속에 비친 사람을 부처 삼아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제목이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게 다가왔다. 기실 제목은 작품이 하고 싶은 말을 한 단어에 농밀하게 싣고 있었다.

김 선생은 30여 년 간 복역하다 출소했다. 간단하게 전향서만 작성했다면 빨리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거듭된 당국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 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김 선생은 그의 삶을 온전히 차가운 감옥에 바친 셈이다. 감옥 밖의 가족들도 빨갱이 가족이라는 멍울과 멸시로 또 다른 감옥에서 살았다. 정치적 폭력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한 가족을 비탄에 빠뜨렸다.

한 사람의 내면에 속한 양심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머릿속 생각에 대해 누가 함부로 간섭하고 침해할 수 있는가. 인권이란 무엇인가. 국가권력이 개인의 신념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소설은 끊임없이 그런 것들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었다.

김 선생이 감옥에 있는 동안 노모와 아내는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장사에 바쳤고, 아들은 일류대에 진학했으나 그것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딸은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는 듯했으나 아내가 병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장의 역할을 위임받게 되었다. 가난은 한시도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채현은 오빠를 학교에 보내고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했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서 무모하게 몸을 던졌고, 나중에는 뱃속의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 모두가 자신의 탓인 것 같아 괴로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들은 출옥한 아버지가 반갑지 않다. 이미 오래 전에 아버지와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것이다. 그깟 신념이 뭐라고 가족들을 이리 고생시키는지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주말마다 집에 오시는 아버지가 부담스럽다.

아들은 아내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다. 며느리는 그간 시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남편과 자주 다투었다. 김 선생은 며느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손주들과도 살갑게 만날 수 없었다. 며느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친정으로 피하듯 떠나 버렸다. 그러기를 얼마간 반복하다 급기야 아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 버린다.

세상이 좋아져 김 선생에게도 송환의 기회가 주어진다. 채현은 아버지에게 북으로 갈 것인지 묻는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한평생 그리워하며 살았을 아버지를 생각하여 채현은 김 선생에게 북으로 가라고, 자신은 오빠가 있는 캐나다에 가서 살면 된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북으로 가버리면 다시 홀로 남게 될 딸을 생각하여 차마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일이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에 채현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러나 김 선생은 이미 남으로 올 때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평생 꿈에 그리던 고향이지만, 그곳에 두고 온 처와 자식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고 북으로 가더라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채현을 돌보는 것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만이 계시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팔순의 나이에도 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순전히 딸 때문이었다.

채현은 하루도 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환각제를 멀리하려다가 술에 빠진 것이다. 아버지는 딸의 갱생을 위해 병원에 입원시키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했지만 채현은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출옥했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는 일은 힘겨웠다.

아버지를 두고 아무리 말해도 답이 없는 ‘벽’이라고 말하는 아들이나, ‘나는 늘 취해있고, 아버지는 늘 깨어있다’는 딸의 말이 모두 가슴 속을 파고든다. 소설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과연 정치적인 이유가 인간의 실존적 가치와 권리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박소연의 <눈부처>는 분단된 조국에서 양심을 지키느라 빛나는 젊음을 차가운 감옥에 바친 장기수의 삶을 다루었다. 정치적 신념을 지키느라 가족을 돌보지 않은 주인공과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지만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딸의 고통과 소외를 통해 독자들은 굴곡진 현대사에 대해, 인권의 가치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눈부처

박소연 지음, 실천문학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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