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가족>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존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게 되어 있는 가족. 그 가족이 불행한 시기를 맞아 고통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이야기. 소설은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게 되고 갑자기 경제적 파탄에 직면한 가족 구성원들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고통 받는 개개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조금씩 유리되어 가는 과정을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빚 때문에 집이 모두 날아가고 각자 친척집에 얹혀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들은 당장 학교에 내야할 등록금이 없고, 당장 해결할 밥값이 없는 상황에 처한다. 갑자기 가난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이들은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상처 입히게 된다.
...석진 아빠가 사업한다고 했을 때 제가 얼마나 말렸어요? 처음에 회사에서 실직당했을 때, 그냥 웬만한 데 취직하라고 그렇게 사정하다시피 했잖아요. 그런데도 그 사람... 대기업의 그럴듯한 직위에 있었다고 아무 데나 취직을 못한 거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온 식구를 이 지경까지 만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업은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한 게 아니라 자기체면 때문에 벌인 거라고요...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당장 먹을 끼니조차 잇지 못하게 되자 아내인 지은이 화가 나서 시어머니에게 하소연한다. 평소의 지은이라면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으니 본인도 얼마나 힘들겠냐며 애써 위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도로 인해 자신이 알거지가 되고 벌거숭이가 되자 남편이 하는 모든 일이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본인이 불행한 상태에 있으니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두 아들과 딸도 부모를 원망하면서 점점 문제 청소년으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하고, 이러한 가족들의 모습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비관적으로 변해가다가 어느 날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게 되는 가장 시우.
@BRI@이 책은 가족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여 서로를 어떻게 공격하게 되는지, 그 개개인의 변질 과정을 단순한 플롯과 빠른 전개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로지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거침없이 써나간 이 간결한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그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각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던 환경적 요인이 있었음을 이해하고 연민하게 된다. 일부 독자는 가족의 해체를 불러왔던 IMF사태에 대해서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고, 일부 독자는 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의 질긴 인연에 대해서 곱씹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쉽고 간결한 문체 덕분에 선명하게 잘 읽히는 이 소설은 그러나 너무나 뻔한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식상한 느낌을 주고 막을 내린다. 사회에 나가서 일하려 할 때마다 번번이 사회의 벽에 부딪히고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약자의 모습으로만 그려진 '아내'의 모습도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과장된 설정을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불행에 직면한 가족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영원한 안식처인가 혹은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