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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트로피
ⓒ 세종연구원
사실 이 책이 나온 지는 꽤 됐다. 그럼에도 지금 이 책에 대해서 쓰는 이유는 내가 지난 1월에서야 이 책을 접해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너지 위기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날이 갈수록 연료 값은 비싸지고 있고 연료로 인한 공해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운전자들은 날로 높아가는 기름값에, 서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난방 연료비에, 도시인들은 심각한 대기오염에 숨이 막힌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위기는 이미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석유의 가채연수는 50년이 채 안되고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 각종 에너지원이 고갈 직전의 위기에 처해있다. 현대 산업사회의 사회 인프라는 석유를 기반으로 한다. 이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와 공장이 뿜어내는 연기는 우리의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저)는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상황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반대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다.

열역학에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이 있다.

제 1법칙: 에너지는 어떤 형태로든 보존되며 다만 그 형태가 바뀔 뿐이다.
제 2법칙: 유용한 에너지는 변환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무용한 에너지로 바뀐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제 2법칙이다. 여기서 무용하게 된 에너지의 양을 '엔트로피'라 한다. 이 책은 가장 먼저 산업사회가 이 지구를 파먹게 하는 동력원인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해 다룬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역사는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애덤 스미스, 로크 의 공동 작품이다.

베이컨은 끊임없는 진리탐구의 문을 연 사람이다. 세계를 더 나은 방법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로 들어온 데카르트는 수학의 정밀성을 강조했다. 그는 "수학은 모든 것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면서 살아 있는 자연을 단순한 것으로 정밀화·합리화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자연이 과연 정밀한 수학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인가에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결국 생명의 존재를 수학적인 것으로 질서화해 버렸다.

뉴턴은 기계적 운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기계론적 세계관을 중흥시켰다. 데카르트의 수학적힘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그러나 기계론적 세계관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왜 사회라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측이 가능하지가 않는가? 이것을 연구한 사람이 로크와 스미스였다(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살아있는 인간을 정밀화, 기계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

로크는 사회적 관계라는 개념에서 도덕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창시자인 스미스도 예측 가능한 경제, 보다 정밀한 경제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물질적 수단의 한 노예로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스미스의 경제이론에는 인간은 없고 온통 실용주의에 찌든 이기주의자들뿐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런 식으로 살아있는 자연을 비생명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철저한 실용주의에 의해서 자연은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간의 자연파괴의 시작이다. 이후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에너지 분수령에 따른 자연파괴를 합리화 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리프킨은 이 기계론적 세계관이 불러온 현재의 위기사태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며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것은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를 덜 무용하게 하는 세계관이다.

이번에는 제레미 리프킨의 인류발전에 대한 절묘한 해석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반드시 '에너지 분수령'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맨 처음,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에너지원은 바로 나무였다. 너도나도 나무를 땔감으로, 혹은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서 베어다 써왔다. 잉여농산물로 빈곤을 해결한 인간은 그 수가 급속히 증가했고 결국 나무의 수요는 급증했다. 결국 나무는 고갈직전상태까지 갔고, 인류는 첫 번째 에너지 분수령에 도달했다.

나무의 부족을 체감한 인간은 다른 에너지원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바로 석탄이었다. 석탄을 이용하려면 기술이 필요한데, 리프킨의 관점에서 기술이란 인간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발전해온 것이다. 어쨌든 이 기술로 석탄을 한동안 잘 써먹은 인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점점 갱도가 깊어지고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석탄을 계속 사용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결국 두 번째 에너지 분수령에 도달한 것이다.

석탄대신 석유라는 대체자원을 획득하고 석유라는 자원에 초점을 맞춰 기술을 발달시킨 결과, 인류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사회구조가 석유를 기반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석유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인류는 다시 한 번 에너지 분수령에 도달하게 되었다.

@BRI@기술이라는 것이 복잡화되고 에너지 분수령을 거치면서 엔트로피는 점점 더, 급격히 커져왔다. 비효율의 극치를 달려온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의 에너지 비효율에 대해서 흥미로운 한 예가 있다. 약 280칼로리를 내는 빵 한 조각의 제조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농장에서 농부는 밀을 생산하기 위해 석유를 넣어야만 움직이는 농기계를 매일 사용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재배된 밀을 트럭(석유를 잡아먹는)에 실어 밀가루 공장으로 보낸다. 공장은 밀을 표백하고 도정하여 인체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 그리고는 밀은 다시 트럭을 타고 빵공장으로 보내진다. 전기(20~40%의 에너지 효율로 생산된)로 움직이는 기계는 밀가루와 재료들을 섞고 뜨겁게 굽는다. -굽는 과정에서 무용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엔트로피의 양은 가히 엄청나다- 다시 트럭에 실려 가게로 보내지면 진열대로 올려져 포장된다.

소비자가 280칼로리의 머핀 하나를 얻는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이 외에도 고층빌딩을 짓는 행위도 엔트로피를 극대화한다. 에너지 분수령을 여러 차례 겪을수록 에너지의 비효율은 증가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증명한 셈이다.

다음으로 리프킨은 현재 가장 희망적인 대체자원으로 촉망받는 태양에너지의 효율을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정난방이나 채광정도는 태양열로 대체할 수 있겠으나 현재 사회의 기반에너지인 석유만큼의 효율은 절대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뉴욕 맨해튼의 전기 사용량을 충당하려면 태양열 집열판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설사 대체 에너지의 효율을 어떤 기술로써 극대화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기술을 개발할 때가 언제쯤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는 석유가 모두 고갈되어 전세계 사회 시스템이 정지한 후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리프킨은 현재의 기술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E.F 슈마허(작은 것이 아름답다) 식의 '중간기술'(사람의 노동력이 개입된 기술 - 연료를 사용하지 않음)과 직접 실천하는 농업(가장 에너지 비효율이 낮다), 적당한 정도의 태양열 이용기술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산업화가 진행될 대로 된 사회에서 리프킨의 제언은 실현가능성이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사실 실현가능성은 낮다. 대량 소비와 대량 생산이 끝없이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산업사회에서 지금의 인류가 얼마나 이를 깨닫고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까? 산업화를 '멋진 진화의 결과물'로 알고만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물론 이는 나의 비관적 견해일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지나친 사용이 지구에 위협이 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산업사회의 구성원들도 리프킨의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는 희망은 있다.

과학 기술의 개발도 한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은 예측을 불허한다. 과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기술이 그렇게 쉽게 발전될 것인가? 아무도 이를 보증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만 믿고, 과학은 도전에서 시작된다며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과거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억측일 뿐이다.

리프킨이 제안하는 것처럼, 우리가 직접 경험했던 농업의 생명 창조의 미학에 다시 몸담아 보는 것은 어떤가? 이는 엔트로피를 축소시키고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포장하고 낙관하면서 막연히 기술개발을 기대하기엔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다. 과거로의 회귀가 (어렵겠지만)이미 증명된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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