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내 마음속 사진첩에서 꺼낸 이 한 장의 사진>.
ⓒ 샘터
역사를 증언하는 '사진'도 있고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도 있으며 자연 풍경을 담아놓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만났거나 더불어 지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진들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그 시절로 스르륵 잠겨 들어가게 한다. 말하자면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순간이동이거나 웜홀 같은 것이다.

<내 마음속 사진첩에서 꺼낸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사진들은 시인 혹은 작가들이 한 장씩 내놓고 있는 사진이다. 모두 흑백사진(이 중에는 혹 원판이 컬러인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인쇄상으로는)이다.

사진첩은 3개로 분류되어 있다. 하나는 유년과 학창시절의 묶음이요, 또 하나는 가족의 묶음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과 풍경의 묶음이다.

작가 박범신의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재미있는 것은 오로지 활짝 웃고 있는 것은 그 자신뿐이라는 점이다. 어머니, 아버지, 셋째 누나는 앞줄에 앉아 있고, 20대 중반의 그와 막내누나는 45도쯤 몸을 구부린 채 뒷줄에 서 있다. 사진을 찍은 곳은 '수돗가'인데 이전에는 '장독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이 사진이 출발점이 되어 작가는 강경집에서의 추억을 떠올린다.

"강경집, 하면 수돗가에서의 추억이 제일 다채롭다. 집 안에는 따로 수도시설이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돗가야말로 세면실이자 목욕탕이었으며, 개수대였다. 여름이면 어머니가 자주 등멱을 시켜주던 곳도 여기였고, 생선이나 야채를 다듬던 곳도 여기였고, 설거지를 하던 곳도 여기였다."

사진은 가족사의 압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진 속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표정이 있고 일시 정지된 시간과 붙박아놓은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당시의 구성원의 한 때를 증언한다.

작가는 '블록 담장 위의 유리조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맞다. 시골에서 담을 둘러칠 때 맨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이것을 심어 시멘트로 발라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산 다람쥐는 요 사이사이로 또르르 잘 다니기만 했지만.

작가 하성란의 사진도 가족사진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찍은 사진이라 하는데 작가는 엄마를 꼭 빼닮았다. 양손에 '왕자파스'를 들었고 잔뜩 긴장한 듯한 표정이 오히려 재미있다. 옆에는 동생이 있고 바로 뒤에는 아빠가 있으며 그 옆에 막내를 안은 엄마가 있다.

양미간을 찌푸리곤 하던 버릇은 계속 이어져 지금 내 양미간에는 실금처럼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다. 아직도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그때처럼 입을 꾹 다물고 본다. (88쪽)

작가 윤대녕의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학창 시절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둘 다 계단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다. 그는 친구의 어깨에 오른팔을 얹고 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모자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다. 왼손 손목의 시계도 보인다. 오른발은 왼발 발등 위에 걸쳐놓았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 역시 "결정적인 추억의 증거"이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설명을 듣노라니 한여름 교정의 스탠드에서 그날의 수업이 모두 끝난 다음에 찍은 것이란다. 옆의 친구는 예산 덕산이 고향인 동향인으로 대전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단다. 태권도 유단자고 무뚝뚝하면서도 정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과 그 외의 몇 가지를 더 작가는 기억하고 있다.

검게 뚫려 있는 세 개의 창문 속에서 청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아래 상체만 옆으로 찍혀 있는 자는 누구일까? 저 푸르던 잎은 지금도 안녕하신가? (…)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스탠드 앞 오른쪽 아래로 구내식당이 있었다. 거기서 라면 끓이는 냄새가 지금도 콧가에 스민다. (39~40쪽)

한 장의 사진은 잘려나간 부분을 완성시키기도 하고 사각의 네 면 너머로 확장되어 다른 공간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사진 안에서 사진 밖으로 무언가 자꾸만 퍼져나간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박완서, 이호철 외 27명 / 펴낸날: 2004년 4월 25일 / 펴낸곳: 샘터 / 책값: 9800원


이 한 장의 사진 - 내 마음속 사진첩에서 꺼낸

박완서 외 지음, 샘터사(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