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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23일 서울 용산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필리핀에서의 비합법적 살인과 인권 탄압을 중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피플파워' 21주년을 앞둔 필리핀에서 무자비한 '정치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23일 서울 용산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필리핀에서의 비합법적 살인과 인권 탄압을 중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피플파워' 21주년을 앞둔 필리핀에서 무자비한 '정치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 안윤학
필리핀의 '피플파워(People Power)'는 한국의 87년 6월항쟁과 비견될 수 있다.

피플파워는 1986년 2월 25일,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시민혁명이다. 이로 인해 마르코스는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고, 코라손 아키노라는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필리핀은 오는 25일 피플파워 21주기을 맞는다. 그러나 필리핀 민중들은 현재 특별국경일인 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할 수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민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에 따르면, "현 아로요 대통령 집권 5년동안 800여명이 살해당하고 200여명이 실종되는 등 끔찍한 인권 탄압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 주한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열린 '필리핀에서 지속되는 (정치)활동가 살해 규탄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단 한 단어, '왜'였다. 대체 왜 '21살 피플파워'가 흔들리고 있는가.

[의문①] 지금 필리핀에서는 어떤 일들이?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한 시민사회단체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근 필리핀 전 지역에서 인권 활동가, 정당 활동가, 노동자, 농민, 학생, 종교인 등에 대한 무차별적 납치와 살해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필리핀 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던 필리핀 독립교회의 라멘토 주교가 괴한에 의해 피살됐다. 지난 8일에는 농민 지도자 달마시오씨가 자택에서 무장괴한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필리핀 정부는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지난해 8월 납치 및 살해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 '멜로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지난 1월 위원회 보고서는 비밀에 부쳐져 대통령에게만 보고됐다.

필리핀 언론에 따르면, 보고서는 '정치적 살해'에 정부군이 연관돼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로요 정부는 군에 대해 조사하지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1달간 필리핀에 머물렀다는 '경계를 넘어'의 활동가 지은씨는 "지역활동가와 철거민이 머무는 곳에 군부대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눈 밖에 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갔다"면서 현지 사정을 전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최정의팔 목사는 "군부대가 난사한 총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여기저기 숨어 지내며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게 현재 필리핀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해냈다.

필리핀이주노동자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크씨는 "멜로 보고서에 따르면, 현 정권의 시책을 반대하는 정치가, 인권운동가, 학생운동가는 국가의 적으로 규정됐다, 이들에 대한 정치 살인이 계속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의문②] 21살 피플파워, 왜 흔들리는가?

필리핀이주노동자공동체 활동가 마크씨가 필리핀 군부에 희생된 시민사회 활동가, 인권 운동가, 노동자·농민 지도자 등의 사진을 들고 필리핀 대사관 앞에 섰다.
필리핀이주노동자공동체 활동가 마크씨가 필리핀 군부에 희생된 시민사회 활동가, 인권 운동가, 노동자·농민 지도자 등의 사진을 들고 필리핀 대사관 앞에 섰다. ⓒ 안윤학
현 대통령 글로리아 아로요는 2001년 2차 '피플파워'로 정권에 중심에 선 인물이다. 당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각종 뇌물 스캔들에 휩싸여 있었고 민중들의 항거에 의해 결국 사임해야 했다. 이에 따라 부통령이었던 아로요가 권좌에 올랐다.

그런 아로요가 피플파워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노동자·농민·종교 지도자, 언론·지식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살인과 폭력을 방관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살인의 배후에는 필리핀 정부군과 준군사조직이 개입돼 있다"면서 "이는 9·11 이후 아로요 정권이 미국과 협력하여 진행중인 테러와의 전쟁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희생자 대부분이 미국 군사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며, 억울한 죽음 뒤에도 정부에 의해 공산주의자 또는 이슬람 무장단체로 낙인 찍혀 적법한 조사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근거를 댔다.

한편, 필리핀은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아로요 정권과 군부의 정치적 탄압과 폭력도 심해져, 이번 선거가 '피의 선거'가 될 거라는 얘기도 나돈단다.

[의문③] 왜 한국의 시민사회는 나섰나?

이날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Stop extra-judicial killings and human rights violations in the Philippines(필리핀에서의 비합법적 살인과 인권 탄압을 중지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대사관 앞에 섰다. 왜 필리핀의 정치 상황에 한국의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걸까.

김유은경(한국여성의전화연합)씨는 "필리핀의 여성, 아동 등 민중들이 아무 이유없이 잔혹하게 살해되고 있다는 얘기를 지난해 아시아의 한 단체로부터 이메일로 전해들었다"면서 "한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영석씨(원불교인권위원회)는 "한미FTA협상,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서 보든 한국과 필리핀의 상황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로 인해 각국내에서 '폭력'이 일상화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크씨는 "아로요와 군부 고위층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되고 감옥에 갈 때까지 형제자매들과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성토했다.

시민사회는 필리핀 정부에 ▲정치 살인, 폭력, 인권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 ▲철저한 진상 규명 ▲정치 살인을 중단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필리핀 공산주의 계열 및 무슬림 단체들과 체결한 평화협정 이행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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