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들이 국회본회의장 앞에서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하며 삭발한 일이 있었다. 삭발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일종의 자해행위라 할 수 있다. 삭발을 함으로써 자신의 외모와 이미지에 대한 손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개적인 삭발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하더라도 알리기 위해 많이 택하는 시위의 수단이다. 결코 강자의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노사협상 장소에 사용자 대표인 사장이 삭발을 하고 나오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또 대통령이나 장관이 국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삭발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위압감을 줄 수도 있는 삭발
하지만 삭발의 또 다른 경우도 있다. 흔히 '깍두기 머리'라 불리는 이른바 조직폭력배 헤어스타일의 경우다. 그들의 삭발은 보통 사람들에게 묘한 위압감을 준다. 그들이 그런 머리 모양을 유지하는 이유에는 전투적 효율성이 있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에게 미리 겁을 줄 수 있는 자해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삭발보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이 자해다. 할복이나 분신 같은 경우가 그러한 경우다. 전태일 열사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벽 앞에서 분신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함으로써 노동인권을 알리려 했다. 장애인 생존권을 요구하다 음독 자살한 최옥란 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약자의 입장에서 마지막 생존권이나 인권의 저항 수단이 삭발을 포함한 자해 행위라면, 강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깍두기 머리'와 마찬가지로 위협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강자의 그런 모습에 약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된다. 약자의 그런 수단에는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강자의 그런 모습에는 "이러다가 자칫하면..."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의사단체의 한 집회 때 한 의사가 칼로 배를 그어 자해하는 일이 있었다. 사회의 엘리트층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의사의 그런 파격적 모습에 대해 공감을 느끼기보다는 걱정과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낀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 방법이 아니더라도 의사 집단의 주장과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내 제1당이자 차기 대권을 눈앞에 두고있는 한나라당 원대부대표들의 삭발 모습에 물론 많은 사학들은 흐뭇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과 당혹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 마음껏 다할 수 있고, 법률제정의 우선권을 가진 원내1당의 의원들이 삭발하고 지도부가 격려하는 모습이라니 참 어이가 없다.
약자가 아닌 강자를 위한 그들의 삭발
그들이 비정규직이나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명분에서 삭발을 한 것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사학법의 재개정이다. 사학들이 사회적 약자도 아닐뿐더러,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안이 아닌 재단 내부의 문제다.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된 사학법 때문에 현재까지 문제가 된 일도 없다. 사학법을 위한 것인지, 사학의 이권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나라당의 집념은 참으로 질기다.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얻기 위해 부동산관련법의 발목을 잡고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민생을 인질로 잡아 정략적 이익을 얻고자하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사학이라는 형님을 위해 '깍두기 머리'들이 나선 격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삭발은 힘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시위수단이라기보다는 조폭들의 행동양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내 제1당의 국회의원이 힘없는 사람 흉내나 내고 있는 사이, 가까스로 안정시켜놓은 부동산 시장이 입법 지연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협박이나 다름없다.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요구하며 삭발한 한 이규택 의원까지 포함하면 이제 한나라당 의원 4명이 삭발한 채 양복을 입고(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국회의사당에 나타나게 됐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는 좋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면바지를 입고 나타난 유시민 의원의 모습보다 더 품위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