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크기의 가방은 마트 내로 들고 갈 수 없습니다.'
동방신기 콘서트 논란을 보면서 예전에 대형 할인 마트에서 가방을 못 들고 가게 하여 관련 기사를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낭 크기의 가방을 메고 들어가면 물건을 훔칠 우려가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대형 할인 마트의 주장은 소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탁현민 기자의 ' 동방신기 콘서트 파문, 그깟 사진 몇장 때문에 그러냐고'를 읽다 보니 10대 팬들이 마치 당시 내가 느꼈던 것처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BRI@물론 연예인의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는 이루어져야 한다. 연예인 초상권이나 재산권 보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을 압수하고 밤 늦게까지 찾아야 했던 팬들의 불편 사항만 중점 보도한 것은 연예인이나 관련자의 입장에서 억울할 법도 하다. 그러나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생각해봐도 탁현민 기자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탁 기자는 기사에서 '23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동방신기 콘서트에서 관객들의 촬영을 막기 위해 핸드폰과 카메라를 압수'했다며 이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압수란 무엇인가? 압수의 뜻을 들여다 보고 나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분은 과히 좋지 않다.
'물건 따위를 강제로 빼앗음.'
이유야 어찌되었든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다면 당신은 과연 '예 가져가세요'하며 기분 좋게 줄 수 있을까? 사람인 이상 누구나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팬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이유로 핸드폰 및 디지털 카메라 등을 쓰지 말 것을 부탁하는 영화관이나 다른 공연장에서 강제로 그런 기기들을 압수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그저 주의만 줄 뿐이다. 스스로 자제해줄 것을 부탁한다.
핸드폰이든 디지털 카메라든 그것은 일차적으로 팬들 자율 의지에 맡겨 자제하기를 부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만약 그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 곳에서 핸드폰이든 디지털 카메라든 팬들이 자신의 것을 분실하는 사고가 여러 건 있었다면 그 사고들에 대해 기획사는 모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새벽 2시까지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해 더욱더 심한 의구심이 든다.)
탁 기자가 연예인의 초상권을 거론하면서 압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수긍할 수 없는 일차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기획사 측도 져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백 번 양보해 연예인의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치고, 또 아직 대부분 미성년자들이기에 그런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동방신기를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해준 것은 과연 누구인가? 동방신기 같은 아이돌 스타를 지탱해주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바로 그들을 맹목적이다 싶을 만큼 따라다니는 10대 소녀 팬들이다.
동방신기는 그들에게 단순히 음악만을 들려주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10대 소녀들은 동방신기를 때로는 자신들의 남자친구처럼 여기며 때로는 짝사랑하는 오빠처럼 여기며 그 이미지를 소비하고 즐기기도 한다.
그들에게 콘서트 자리에서만이라도 잠시만이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줄 수는 없었을까? 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찾아온 자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 한 장 찍어 담아갈 수 없다며 그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소녀팬들에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담아갈 기회를 주는 것은 어쩌면 연예인의 하나의 의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그런 이미지를 담고 싶어하는 소녀팬들의 열망을 가혹하다 싶을 만큼 내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연예인의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 가운데 초상권에 방점이 찍히는 것인지 재산권에 방점이 찍히는 지에 대해 솔직히 고백해보고 넘어가보자. 탁현민 기자의 글 가운데 아래 두 부분을 보면 초상권 보다 재산권에 방점이 찍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판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나를 보자마자 카메라와 휴대폰을 코앞까지 들이밀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 생김생김에 대해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는 것을 멍청하게 서서 들어야 할 때의 기분을 그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사진을 찍는 것은 적어도 찍히는 대상에게 분명한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거잖아'
탁 기자가 자신이 하는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김C의 말이다. 그게 과연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마지막 부분만 보면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김C는 아무데서나 연예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태를 풍자한 것이지, 콘서트장에서 사진기를 들이대는 데 대한 경고성 멘트로 보기는 힘들다.
콘서트장에 오는 팬들은 그 연예인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콘서트장까지 찾아오는 팬들은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다. 그런데 그런 팬들이 김C의 견해처럼 부담스럽기만할까? 게다가 그 생김새에 대해 과연 나쁘게 얘기할까? 콘서트장에서 연예인의 사진을 찍는 팬들의 심리는 연예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좋아하는 마음에 저절로 발생하는 일일 뿐이다.
좋다. 이런 모든 것이 연예인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다 인정받을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그렇게 애타게 외친 만큼 팬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신경 써주는 것이 연예인을 사랑해주는 팬들에 대한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번 동방신기 콘서트에서는 과연 그랬는가?
탁 기자는 '사고의 원인이 기획사의 미숙한 공연 진행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차후에 사과하고 배상할 문제로 연예인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와는 별도로 논의되어야 할 문제처럼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공연은 단 한 번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관람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해 걸맞는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한다. 차후에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은 핸드폰과 디지털 카메라를 압수당하면서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배려를 해주려 했던 팬들에 대한 예의를 이미 져버린 행위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라는 우리 속담이 괜히 생겼겠는가.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애시당초 만들지 말아야 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을 연예인 초상권 보호 및 자신들의 이윤 보호를 위해서 압수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응당 그로 인해 불편을 겪을 소비자에 대한 대책은 공연 전에 미리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나서 '잘못했소' 한다고 해봐야 이미 소비자는 자신이 낸 돈 만큼의 서비스를 받지 못한 셈이다. 심하게 말해 자신들의 이윤 추구가 중요해 소비자의 권리를 뒷전으로 미루어 버렸다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불법 촬영의 위험이 있어 카메라를 압수당했다가 돌려받는데 몇 시간 이상 걸렸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그런 제도를 시행할 생각이라면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을 계산하고 미리 대비책이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 팬들에게 의무만 지우고 권리는 제대로 행사 못하게 한다며 누가 거기에 대해 손가락질을 안 하겠는가.
'공연 중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와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 무대 앞에 놓인 소형 녹음기 때문에 애써 준비한 공연의 흐름이 깨지면 그 피해는 가수와 관객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한 그 피해가 다만 공연하나 망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 연예인들의 인권과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 부분에 대해 반문해보고 싶다. 팬들이 들고온 카메라 핸드폰 때문에 무대 위 연예인들의 인권과 재산권을 침해당할 것을 우려했던 기획사가 이런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는가?
탁 기자의 말대로 가수와 관객 그리고 매니지먼트사, 모두를 위해 자신의 소유권을 잠시 포기했던 팬들을, 그것도 아직 성인도 아닌 청소년 팬들을 새벽 2시까지 떨게 했던 행위는 6명의 인권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재산권 침해를 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신지.
연예인의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울리고자 하는 취지는 좋았으나, 아무래도 이번 사례에서 더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기획사들이 팬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문제가 많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몇 번이고 고쳐 생각해봐도 팬들의 입장을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청소년들을 새벽까지 집에 못 돌아가게 하는 그런 행사 준비를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연예인들의 초상권 및 재산권 보호가 중요한 만큼 그들에게 사랑을 주는 팬들의 인권 및 재산권부터 존중해주는 게 순서 아닐까. 역지사지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던가?
덧붙이는 글 | 탁현민 기자의 글에 일리는 있습니다만 10대 팬들이 공연 문화에서 지나치게 의무만 부여받고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