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넷신문협회(인신협)가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합동인터뷰 '취임4주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는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가 인터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애초 오후 3시부터 4시 30분까지 예정됐던 인터뷰가 5시를 훌쩍 넘어서면서 시작됐다. 김미화씨는 6시 5분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생방송이 예정돼 있어 노 대통령의 마지막 발언을 앞둔 5시 20분께 황급히 방송국으로 향해야 했다.
인터뷰는 약 2시간 40분 동안 진행됐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1시간여 연장된 이유는 패널들과 대통령의 문답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뷰 질문은 인신협 공동 질문 5개를 포함해 총 16개가 준비됐다. 그런데 다섯번째 질문인 '개헌안 발의의 이유'에 대해 노 대통령이 답변하고 있을 때 시계는 이미 4시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질문의 주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진보 비판, 북핵 문제와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 '원 포인트 개헌' 등 정치 사안을 비롯해 한미FTA협상, 부동산정책 등 경제 문제, 그밖에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과학기술 정책, 의료법 개정안 등 전문적인 분야까지 다양했다. 노 대통령은 질문의 요지를 메모하면서 꼼꼼히 답변해 나갔다.
인터뷰에는 각 회원사가 선정한 패널 외에 방청객 100여명이 참석했다. 인터뷰는 실시간으로 각 인신협 회원사 홈페이지를 비롯해 뉴스전문채널인 YTN, MBN과 한국정책방송 KTV에서 생중계됐다.
김미화씨 원할한 진행 돋보여... '열정적인 대통령 돼 달라' 따끔한 충고도
한편, 이날 인터뷰에서는 김미화씨의 원활한 진행이 눈길을 끌었다.
김씨는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회를 봐달라고 할 때 깜짝 놀랐다, '혹시 손석희씨 전화번호를 잘못알았나, 내가 손석희씨보다 컸나'고 생각하기도 했다"며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이어 "김미화가 정치, 경제, 사회를 잘 모르니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아듣기 쉽게 편안하고 솔직한 대화의 장을 열자는 바람으로 날 부른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솔직한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인터뷰 초반, 노 대통령이 최근 논란이 된 진보 논쟁에 대해 "오늘날의 매체를 보니 국민들은 간 데 없고, 누구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만 있다"면서 "정치적 저의 같은 건 없다, 나의 논쟁은 대선과 상관없다"고 토로했을 때다.
김씨는 "국민들이 진심 몰라줘서 섭섭한가"라며 노 대통령의 속내를 끌어내려고 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진심을 몰라줘서 섭섭한 것보다는 소통하기 어려워서 갑갑하다는 느낌은 든다"고 화답했다.
다음은 진행 중 돋보였던 장면.
[장면 1] 개헌안 발의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노 대통령은 "왜 지금 개헌하면 안 되나" 반문한 뒤 "패널로 나오신 분 중에서 혹시 누구라도 말해보자, 오늘 즉석에서 한번 토론해 보자, 아주 중요한 문제다"며 멍석을 깔았다.
이어 한 패널이 "국민들이 전혀 공감대 느끼지 못한다"고 논쟁에 불을 지피자 노 대통령은 "(개헌에) 공감대가 없는 것이 아니고 지금 하자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없다는 것이다, 왜 지금 안 되느냐는 것을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며 맞섰고 순간 영빈관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에 김씨가 "(지금 이야기는 안 되고) 내일 신문에서 나올 것 같다"며 웃음짓자 노 대통령과 방청객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았다. 노 대통령은 "저는 우리 사회가 이래도 좋으냐는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장면 2] '올해 대선에서 어떤 아젠다가 선거 쟁점이 될지, 그리고 올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노 대통령은 "대선쟁점은 현재 대통령이 말하는 것보다 그 시기 공론이 대선 쟁점을 이끌어 줘야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정치를 잘 알고 가치를 말하고 정책을 말하는 사람, 가치 지향이 분명하고 정책적 대안이 분명한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정치를 좀 알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자 김씨는 "꼭 집어 누구라고 하면"이라면서 자신의 궁금증을 솔직히 털어놨다. 이에 노 대통령은 "그러면 제2의 탄핵이"라고 대답해 방청객이 웃음을 터트렸다.
[장면 3]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로 연이은 '말 실수'를 거론했다. 노 대통령은 "집사람이 '말 실수 좀 하지 마세요'라고 할 정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김씨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의기소침한 대통령'으로 본다"고 운을 뗀 뒤, "아직 1년이라는 긴 시간(임기)이 남았다, 남은 기간 '열정적인 대통령'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충고했다.
김씨 말에 방청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노 대통령은 미소를 띈 채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앞으로 자신만만하게 일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석가는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지만, 다만 허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등 솔직한 모습을 존경 받았다더라"면서 "흉내 좀 내보려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 말 실수의 '진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