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미국산 수입쇠고기 검역설명회가 지난 2006년 11월16일 오후 인천 영종도 농림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인천지원에서 생산자단체와 소비자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이견이 노출돼 고성이 오가면서 결국 예정된 시연회를 마치지 못한 채 끝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동아일보>가 오늘(28일) '소가 웃을 일'을 보도했다. <동아일보>의 보도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보도한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실시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시행 두 달을 맞아 서울시와 구청의 단속 기준 등을 알아본 기사다. 이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초기 홍보'와 '집중 단속'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속기준 아리송…소들이 웃을 일?'(이설 기자)이라는 기사 제목처럼 "서울시는 올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이 제도를 홍보하고, 하반기부터는 단속에 들어간다는 방침"이지만 "단속기관인 자치구들은 점검 대상 업소를 정할 명확한 기준을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올해부터 실시된 쇠고기 식육 원산지 표시제는 "영업장 90평 이상 쇠고기를 조리해 판매하는 음식점"으로 "메뉴판이나 음식점내 팻말, 벽면 포스터 등 소비자가 알아 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원산지를 표시"해야 한다(이설 기자는 '조리용'이라고 했지만 그 대상은 '구이용'에 한정돼 있다).

원산지 표시제, 음식점 주인 양심에만 의존해라?

이렇듯 명확하게 대상 업소가 규정돼 있는데도 점검 대상 업소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첫 번째 이유는 음식점 등록에 관한 정보가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식점 등록이 한식, 경양식, 중식, 일식 등으로만 등록돼 있지 고기를 취급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음식점이 게시한 쇠고기 원산지의 허위 여부를 판단할 마땅한 방법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업소들은 "표시된 고기의 원산지 증명을 위해 고기의 등급판정 확인서, 도축검사 증명서를 1년간 보관"토록 돼 있다.

그러나 육안으로 고기 종류를 구분할 수 없는 일. 결국 수거해서 검사해야 하는 데 수거 검사에 필요한 인력도, 준비도 전혀 안 돼 있다. 자치구 관계자는 "해당 업소도 많고 매일 여러 부위의 고기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자치구가 일일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수거검사를 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DNA 검사로도 원산지 표시의 사실 여부를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DNA 검사로는 한우와 수입육만 구분이 가능"한데 "기술상 구분이 불가능한 젖소, 육우, 수입육의 원산지 표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이설 기자의 지적대로라면 이 원산지 표시제는 전적으로 음식점 주인과 유통업체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단속에 나서보았자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최소한 수입쇠고기와 한우는 구분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러나 <동아일보>의 기사와 달리 DNA 검사도 만능은 아니다. 미국에서 한우종을 길러 수출할 경우, 혹은 국내 젖소와 외국 젖소의 쇠고기는 DNA로도 그 구별이 안되기 때문이다.

쇠고기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이력추적제'

이처럼 DNA 검사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이 없지는 않다.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안을 내놓고 있는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말을 들어보자.

사실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력추적제(trace-ability)'를 해야 한다. 이력추적제란 한마디로 해당 쇠고기의 이력을 적어놓는 것을 말한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으며, 품종과 아비소, DNA정보, 질병치료 이력, 도축장, 소유주, 유통 경로 등을 적어 놓은 말 그대로 쇠고기가 나오기까지의 '이력'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모두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전체 쇠고기의 10%인 고급 쇠기에는 이 같은 이력이 같이 제공된다.

우리나라는? 한우 3% 정도만, 그것도 품종과 소유주, 탄생일, 접종 사실 등 아주 기초적인 정보만을 담은 '귀표'라고 하는 아주 간단한 이력추적제가 실시되고 있다. '귀표'는 말 그대로 소귀에 붙은 노란 딱지다(시골에 가보신 분은 소귀에 노란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큼지막하게 숫자가 적혀있다. 식별번호이다. 이에 따라 품종 같은 간략한 소의 이력이 기록된다).

이력추적제가 제대로 시행돼야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도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순방향과 역방향 추적이 가능해져 원산지를 속이기가 어려워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이력추적제는 쇠고기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제도이자 수입쇠고기에 맞서 한우의 경쟁력을 키워 갈 수 있는 결정적인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금지돼 한우 축산농가가 경쟁력을 갖출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이런 이력추적제는 축산농가의 반대와 정부의 의지 부족 등으로 실시되지 않았다.

한우농가 경쟁력인 '안전' 부각해야

이제 한우 축산 농가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라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우농가들이 내세울 가장 큰 경쟁력은 '안정성'과 '품질'일 것이다. 한반도의 물과 바람과 사료로 키운 한우야말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질과 입맛에도 딱 들어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나 더, 미국산 쇠고기보다 '안전'하다는 믿음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아닌가.

그런데 만약 '이력추적'이 가능한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지 못한 '한우'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한국축산농가와 농림부가 맹성해야 할 대목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