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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활용가게 '기프트& 쓰리프트'의 서적코너
ⓒ 한나영

"와, 똑같은 책이 네 권이나 있네요(한 권 줬으면…)."
"예, 식구 수대로 샀어요. 각각 제 몫으로 밑줄도 쳐 가면서 읽으라고요(그러니 줄 수 없어요)."


집에 온 손님이 똑같은 책(<목적이 이끄는 삶>) 원서가 네 권이나 있는 걸 보고 의아해 하면서 내심 한 권 줬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내용은 같아도 책의 임자가 달라서 줄 수가 없다. 한 권은 큰 글자판이어서 눈의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남편이 읽는 책이고, 하드커버 두 권은 아이들의 책이다. 각자 마음대로 밑줄도 쳐 가며 읽으라고 사 줬다. 그리고 나머지 소프트커버는 내 것이다.

▲ 각각 자기 책 읽으라고 산 <목적이 이끄는 삶>.
ⓒ 한나영
책꽂이에 꽂힌 네 권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왜냐하면 한 권에 20달러나 되는 책을 무려 네 권이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돈이 그렇게 많기에 80달러나 들여 같은 책을 샀느냐고?

중고책 사는 재미에 푹 빠지다

@BRI@눈치 챘겠지만 이건 모두 재활용 가게에서 산 중고책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세 권은 서점에 갖다 놔도 모를 만큼 새것이다. 책 안에 밑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고 책을 넘긴 흔적마저 없어 금방 출판된 새 책 같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런 새 책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을까. 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온 느낌이다. 이렇게 중고가게를 열심히 찾다 보면 이런 횡재(?)를 하기도 한다.

재활용가게인 '기프트 앤 쓰리프트(Gift & Thrift)'에서 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뻤다. 왜냐하면 한글판으로 이미 식구들이 다 읽었던 책인데 다시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그 자리에서 책을 샀는데 며칠이 지난 뒤 다시 그 가게에서 또 두 권을 발견했다. 아이들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샀다. 그리고 나머지 큰 글자판은 다른 재활용가게에서 샀다.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같은 책을 네 권이나 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책값이 싸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얼마이기에 그렇게 눈에 띌 때마다 책을 샀던 것일까.

단돈 1달러 50센트! 하드커버는 2달러 50센트였다. 네 권 모두 합쳐봐야 10달러(약 9500원)도 안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산 것도 1만2000원이었는데 그것보다 적게 든 것이다.

▲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책들.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는 75센트, 다른 책들도 보통 2달러 내외)
ⓒ 한나영

이것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성공한 사람들(10대들)의 7가지 습관> 등도 모두 재활용가게에서 샀다.

책값은 보통 1, 2달러이고 비싸도 5달러를 넘지 않았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시리즈는 보통 1달러 25센트였는데 내가 산 것은 운 좋게도 75센트였다. 최근에 읽고 있는 힐러리 클리턴의 어록집인 'Unique Voice of Hillary Rodham Clinton'도 1달러 25센트를 줬다.

"엄마, 책 좀 그만 사!"

이렇게 저렴하고 좋은 책이 종종 재활용가게에 나오는지라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정기적으로 순례하게 되었다. 물론 책뿐 아니라 다른 값싼 것들도 은밀하게 나를 유혹한다.

▲ 스웨터는 원래 4달러 50센트였는데 구멍이 뚫린 뒤(할인품목 지정) 50센트가 되었다. 물론 내가 샀다.
ⓒ 한나영

그런 까닭에 우리 아이들은 내가 집에 들어서면 먼저 내 손부터 살피곤 한다. 이번엔 또 뭘 사왔을까?

"엄마, 이제 책 좀 그만 사. 놓을 자리도 없잖아."
"책도 읽지도 않으면서 자꾸 사들이기만 하고…."


아이들의 원성이 높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다.

"얘야, 이런 좋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아깝지 않니? 너희들이 읽어도 좋은 책인데 시간 나면 좀 읽어라. 엄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야."

책 놓을 자리가 없다고? 그럼 책장을 사야지

▲ 10달러짜리 원목 책장(위)과 거저 얻은 책장 (아래).
ⓒ 한나영
미국에 온 뒤로 책장을 샀다. 새것으로. 그동안 늘 해오던 대로 새것을 샀다. 그런데 가만 보니 소비 천국이라는 미국이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우리보다도 자원 재활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로 많은 재활용가게가 그 예였다.

그래서 두 번째 책장을 살 때는 재활용가게인 '트라이드 앤 트루'를 찾았다. 작긴 하지만 튼튼하고 원목이어서 맘에 드는 책꽂이였다. 더구나 옐로북(전화번호부)의 부록에 붙은 30% 할인 쿠폰까지 써서 저렴하게 샀다.

이곳에 살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니 이제는 '돈'이 보이는 것 같다. 절약할 수 있는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바로 재활용가게를 이용하는 것도 그것인데,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인 이곳만 하더라도 재활용가게가 무려 열 개 가까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내 소비 습관도 바뀌었다. 그래서 무조건 새 매장을 찾지 않고 웬만하면 재활용가게를 먼저 살핀 뒤 쓸 만한 게 있는지 확인한다.

찜찜하지 않느냐고? 천만에.

이곳 재활용가게는 물건을 깨끗이 손질해서 내놓기 때문에 찜찜한 느낌은 별로 없다. 지난 번 내가 만난 어떤 미국인 부인은 안 입는 옷을 재활용가게에 기부하기 위해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다. 기부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정성을 다해 물건을 내놓는다.
 
▲ 재활용가게에는 없는 게 없다.
ⓒ 한나영
재활용가게에도 '반값 세일'을 한다

책, 가전제품, 가구, 신발(운동화, 구두, 스포츠화, 스키화, 골프화), 스포츠기구, 액세서리, 가방, 주방용품, 침구류, 옷감, 장난감, 장식품, 의료기구(목발, 휠체어, 보조기 등), 자전거 등등. 재활용가게에 나와 있는 물건은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다.

하지만 재활용가게의 주요 품목은 옷이다. 옷은 보통 3-5달러 정도 하는데(가죽옷 등 비싼 것은 20달러가 넘는다), 이것마저도 요일을 잘 맞추면 50% 싸게 살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장 큰 재활용가게인 '머시하우스'는 할인 품목이 날마다 정해져 있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상의와 하의, 화요일은 원피스와 정장, 액세서리, 수요일은 아동복과 장난감, 금요일은 주방용품과 옷감 등 침구류, 토요일은 책, 비디오테이프, 음악 CD와 LP판을 반값에 판다.

▲ 재활용가게 '머시하우스'의 스페셜. 요일별로 50% 할인되는 품목이 정해져 있다.
ⓒ 한나영

또한 '구세군 재활용센터'는 매주 금요일이면 지정된 색깔의 옷을 무조건 49센트에 팔고 있다. '기프트 앤 쓰리프트'는 옷에 붙은 가격표의 색깔별로 50%가 할인되는데 이 가격표에 구멍이 뚫리면 모두 50센트다.

재미있는 것은 팬티, 브래지어, 양말 등 속옷도 잘 손질이 되어 재활용가게에 진열되어 있다. 실제로 이런 속옷을 사기 위해 거울 앞에 서서 겉옷 위에 속옷을 대보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 재활용가게마다 속옷을 판다. <기프트&쓰리프트>(위), <머시 하우스>(아래).
ⓒ 한나영
이번 공모작 주제인 '어디 가면 싸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내 대답은 바로 <재활용가게>다. 정말이지 이곳보다 더 싼 데가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지.

지금 소개한 재활용가게는 비록 미국의 예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녹색가게>나 <아름다운 가게> 등의 재활용가게도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돈도 절약하고 자원도 활용하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위): 구세군 재활용가게 기부센터. (아래): 머시하우스-재활용가게를 이용하면 일거양득. 모든 이익금은 홈리스 가정을 위한 쉼터 기금으로 들어간다.
ⓒ 한나영

덧붙이는 글 | '이 물건, 여기 가면 싸다' 공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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