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들이 퇴장하고 있다. 민중의 환호 속에 등장했던 카이사르는 전제정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의 독재는 공화정을 신봉하는 측근에 의해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는 지금 사회 곳곳에서 그런 카이사르들을 보고 있다.
카이사르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일정 시점까지는 '개혁'을 표상한다. 기성 집단의 무능·부패·반민주성에 대항하는 개혁이다. 이 때문에 기성 지배층에 염증을 느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독주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를 문제삼는 지지세력 일부 또는 다수가 이탈하기 시작한다.
카이사르의 비극은 그 다음부터다. 이후 카이사르들은 독재를 내장한 고립주의 노선을 걷는다. 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깊은 연관이 있다. 마지막으로, 독선에 빠진 카이사르들은 지지기반의 붕괴를 감지하지 못하고, 끝내 조기 퇴장당하거나 실패한 리더십으로 귀결된다. 특히 과거의 지지자들이 반대자로 돌아선다.
한국의 '카이사르'들이 퇴장한다
@BRI@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지지했던 똑같은 이유로 그를 멀리하려는 '민주파'에게 위협받고 있다. 어느 시점부터 그는 소통의 능력을 잃어 버렸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도 비슷한 형국에서 대학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애초 이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대학재편에 저항하는 교내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임기 1년을 앞두고 얼마 전 사임한 정태기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도 이 경우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기자협회보>는 사설에서 "최고경영자의 독단적인 행태와 돌출적인 행동이 조직을 얼마나 큰 위기로 내모는지 생생히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각각의 그 복잡한 내부 사정을 시시콜콜 밝히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 모두가 '카이사르'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으로 대체적인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내가 오히려 관심을 두는 것은 다른 데 있다. 카이사르와 항상 대립했던 공화주의자 '키케로'의 삶이다.
키케로는 흔히 카이사르의 개혁에 맞선 '보수파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결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키케로는 일찍부터 카이사르의 독재성향을 간파하고 이에 시종일관 반대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을 민중 위에 군림하는 특권집단으로 평가했지만, 키케로가 보기에는 카이사르야말로 토론과 합의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자였다.
키케로가 지키려 했던 '공화주의' 가치가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신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키케로는 카이사르 못지않게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카이사르의 암살을 지지했지만, 그 뒤에 닥쳐온 혼란의 와중에 그 스스로도 암살당했다. 카이사르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제군주정의 뿌리를 뽑지는 못했다. 키케로의 죽음 이후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의 전제정 아래에 놓이게 됐다.
카이사르를 제거하려 했던 공화파가 오히려 내전을 자초했고, 극심한 혼란에 지친 민중들이 오히려 강력한 전제정의 출현을 수용했다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찌됐건 키케로는 무덤 속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반복되는 '키케로'의 비극
무엇보다 역사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기억할 뿐, 키케로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독재자'인 카이사르가 지녔던 창조의 힘이 '민주주의자'였던 키케로가 품었던 비판의 힘보다 더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후세는 키케로가 아니라 카이사르로부터 로마를 이야기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생각보다 더 자주 반복된다. 카이사르를 반대한 키케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더 강력한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유·평등·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공화주의의 이상은 곧잘 포퓰리즘과 독재에 의해 대체된다. 때로 그 독재는 과거의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 아이러니를 알고 있는 '키케로'들은 고민에 빠진다. 카이사르를 향한 나의 비판이 결국 다음의 전제군주에게 역이용되는 것이 아닐까. 혹시 카이사르의 창조를 위해 키케로의 비판을 유보해야 되는 건 아닐까. 역사가 기억하는 것이 결국 카이사르라면, 아예 카이사르를 돕는 게 더 나은 일이 아닐까.
어찌 보면 키케로의 공화주의적 이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공화주의는 합리적 이성을 지닌 다수의 주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소통하는 가운데서 온전히 구현되는 것이다. 현실은 카이사르와 카이사르의 아들들이 판치는 곳이며, 이들을 손쉽게 우러를 준비가 돼 있는 필부들이 신음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공화주의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독재의 반대말로서 공화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참여, 권리와 의무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제한된 자원과 한정된 시간 아래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를 지니고 있는 집단일수록 독재가 아닌 공화주의의 길을 택해야 한다.
탁월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함께 지혜를 짜내 힘을 모으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토론은 공화정의 연료이므로, 다소간의 혼란과 논쟁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태어난 이상 그 길을 피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조선조 이래 한반도의 정치는 대부분 이 '공화'의 이상과 연관된 것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 논쟁은 한반도 정치의 숙명이었다. 그 와중에 간혹 "내가 고민을 대신해줄테니 넌 신경쓰지 말아"라고 속삭이는 독재자들이 등장해 혹세무민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반도에 사는 이들이 택할 것은 공화주의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고 산물이 풍부하여 제 마음대로 살아도 별 상관없는 곳이라면, '엘리트'끼리 모여 정치하는 일이 민중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지만, 한국은 아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정치적 결정은 모두 나의 일상과 직결된다. 그러니 나는 토론과 참여의 기회를 전혀 양도할 뜻이 없다.
그러나 결국 '키케로'의 승리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한국은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하고, 고려대학교는 총장을 새로 뽑아야 하고, <한겨레>신문사는 대표이사를 새로 뽑아야 한다.
키케로는 이럴 때 카이사르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공화주의의 원칙을 되새길 뿐이다. 다만 그 자신에게는 서글픈 운명이 닥칠 것을 비감하면서…. 권력의 요지경을 지켜보는 2007년, 한국 시민들의 마음이 매양 그러할 것이다.
이 시대의 키케로들에게 바칠 위안거리가 한 가지 있다. 키케로는 고대 로마가 전제정의 길로 빠져드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2천 여 년 뒤에 인류가 공화정의 길로 나아가는 초석을 세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사모'가 아니라 '키케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안수찬 기자는 인권연대 운영위원과 <한겨레>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