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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 자식 가르치고 나니 남은 건 빈 반찬통 뿐이더라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식 거둬 먹이느라 고생하셨을 부모님들, 그 뒤를 저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럿 자식 가르치고 나니 남은 건 빈 반찬통 뿐이더라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식 거둬 먹이느라 고생하셨을 부모님들, 그 뒤를 저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 이승숙
부모 눈에는 다 큰 자식도 항상 어리게 보이는 법인지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딸애가 내 눈에는 어리게만 보인다. 남들 보기에는 다 큰 어른이지만 우리 눈에는 아직 어리기만 한 딸이 이제 부모 품을 떠난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편하게 받아먹던 우리 딸이 이제 독립해서 제 입, 제가 챙겨야 되는 것이다.

딸이 공부를 할 때는 대학에 합격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합격을 하고나니 또 다른 걱정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서울에서 거처할 방이 문제였다. 딸이 들어갈 학교는 기숙사가 없었다. 그래서 자취를 하던지 하숙을 해야만 했다.

2월 어느 날 방을 구하러 대학교 근처로 갔다. 교문 근처에는 여기저기에 원룸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깨끗하고 시설이 괜찮아 보이는 방은 월세가 비쌌고 돈이 싼 집은 이미 다 나가고 없었다. 서울은 참으로 방세가 비쌌다. 콧구멍만한 방도 월세가 다락같이 높았다.

다행히 딸애는 운이 좋았다. 알고 지내던 이가 딸애를 거둬주겠다고 했다. 딸애 혼자 서울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귀인이 나타났다. 우리 딸애가 서울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거둬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름을 떨쳐버렸다.

혼자 지낼 딸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다

어제(27일) 딸을 서울로 떠나보냈다. 떠날 날이 다 되도록 천하태평으로 지내던 딸은 떠나기 이틀 전에야 비로소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옷장 속에 있던 자기 옷들을 꺼내서 챙기고 그 외 자기 물품들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하는 거였다.

딸이 자기 물건을 챙기는 동안 나는 딸애가 먹을 밑반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 떠나서 혼자 밥 해먹을 딸을 위해서 오래 두고 먹어도 탈이 없을 밑반찬들을 만들었다. 딸이 평소에 잘 먹던 반찬 중에서 몇 가지 골랐는데 고르다보니 예전에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서 해주시던 바로 그 밑반찬들이었다.

멸치볶음이랑 오징어채 조림 그리고 깻잎 김치랑 콩자반 등을 반찬 통에 담으면서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도 나 떠나보낼 때 지금의 나처럼 이랬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먼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었다. 엄마 아버지는 혼자 지내야 할 딸을 위해서 고운 이부자리를 사주셨다. 공부하라고 책상도 사주셨고 전기밥솥과 석유곤로도 사주셨다.

이불 보따리만 해도 한 짐이었다. 그 짐들을 이고 들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먼 곳으로 유학을 떠났다. 엄마가 해주던 밥을 앉아서 받아먹던 나는 그 날부터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번개탄 피워서 연탄불 붙이고 석유곤로의 심지를 돋워서 반찬을 해먹었다. 삼시 세 끼를 제때 챙겨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학교를 다녔고 그리고 졸업하고 얼마 뒤에 결혼을 했다. 20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 품을 떠난 뒤 다시는 부모님이랑 함께 살지 못했다.

딸이 새 집에서 무탈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팥시루떡을 샀습니다.
딸이 새 집에서 무탈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팥시루떡을 샀습니다. ⓒ 이승숙
내 딸애도 이제 우리 품을 떠나는 거다.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거다. 이렇게 우리 딸도 혼자 살다가 영영 우리 품을 떠나겠지.

'서울은 무서운 곳이니 문단속을 잘 해라.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한테 맨 먼저 전화해라. 공부 열심히 하고 세상을 크게 멀리 봐라.' 등등 딸에게 해줄 말은 많고 또 많았다.

팥시루떡에는 엄마 마음이 들어 있단다

딸애를 데리고 서울로 나갈 때 일부러 떡집에 들렀다. 팥시루떡을 사러 떡집에 갔다.

"딸아, 팥시루떡 왜 사는지 아니?"
"아뇨? 왜 사는데요?"
"응, 팥이 붉은 색이잖아. 우리 민간풍속에 보면 붉은 색이 액을 막아준대."
"아…. "

딸은 더 말을 잇지 않았지만 엄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거 같았다. 딸애의 앞날이 행복하길 비는 엄마의 마음을 딸은 알아들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서는데 딸이 따라나선다.

"지하철 타는데 까지 같이 가요."

딸애는 현관문 열쇠를 하나 복사해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서울 나오면 늘 피곤하다 그러셨잖아요. 이제 서울 나오시면 쉬었다 가세요."

딸애가 쥐어주는 열쇠를 내 열쇠뭉치에 끼우면서 나를 생각해주는 딸애 마음에 흐뭇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봤다. 저만치 걸어가는 딸애의 뒷모습이 보였다.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를 찰랑대며 서울 길을 가뿐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딸아, 잘 살아라. 튼튼하고 굳건하게 잘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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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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