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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섭 前전국농민회총연맹 화순군 농민회 회장.
박종섭 前전국농민회총연맹 화순군 농민회 회장. ⓒ 박미경
박종섭 화순군농민회 회장은 1980년 무렵부터 20여년 넘게 농민운동을 해왔다. 그가 처음 농민운동을 시작했을 당시는 가톨릭 농민회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화순에는 농민운동이란 것이 거의 전무하던 때였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박종섭 회장은 농민운동을 처음 접하게 된 때를 1980년 무렵 처가가 있는 나주에 가게 되면서였다고 말한다. 처가에 가다가 나주역 광장에서 소값 파동에 항의하며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농민집회를 목격했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정권을 향해 시위를 벌이는 농민들의 모습이 그에게는 충격이었다고 한다.

연이어 정부에서 잘못된 벼 종자를 보급해 일어난 노풍(신품종 벼) 피해 보상에 대한 시위가 일고 결국 농민들이 보상을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 농민운동에 결국 참가하게 됐다. 박종섭 회장은 당시 자신이 살던 화순군 북면에서 가톨릭 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던 몇몇 이들과 뜻을 모아 가톨릭 농민회 북면지회를 결성하고 1984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농민회 활동을 시작했다.

수세싸움, 고추싸움, 백아산살리기 잇단 성공

박종섭 회장은 고추싸움과 수세싸움에서의 승리를 농민운동의 성과중 하나로 꼽는다. 수세란 지금 한국농촌공사의 전신인 농지개량조합이 당시 '농업용수에 대한 사용료'라는 명목으로 거둬들이던 돈으로 농지개량조합은 300평당 1만5000원의 수세를 농민들에게 부과했다. 저수지 관리와 조합운영 등에 필요한 재원 등을 농민들에게 물세를 받아내 충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농민들의 거센 반발이 수세싸움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수세폐지로 이어졌던 것이다.

박종섭 前화순군농민회 회장.
박종섭 前화순군농민회 회장. ⓒ 박미경
고추싸움의 승리도 그가 농민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 1988년 무렵 양담배 수입이 늘면서 화순에서도 엽연초를 재배하던 농가들이 고추재배로 전환했고 결국 생산과잉으로 인해 고추가격이 생산원가 이하로 폭락했다. 고추를 사려는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농민들에게는 한해 살림이 달린 절체절명의 현실이었다.

고추싸움은 '농산물제값받기'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고 박 회장은 몇 안 되는 회원들과 함께 천막농성도 불사하며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역시 승리해 화순군과 농협이 고추를 수매하고 판매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 고추싸움과 수세싸움의 승리를 통해 그는 농민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순에서의 농민운동이 힘을 더하게 된 것은 북면 '백아산살리기 운동'의 성공이다. 백아산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석회석이 많은 곳이다. 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으로 산세가 험해 빨치산들이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며 지금도 빨치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곳 백아산에서 (주)고려시멘트가 1986년부터 1998년 4월까지 석회석을 채광하면서 백아산 곳곳이 훼손됐고 지역민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하지만 회사측이 사업을 계속할 의사를 보이자 결국 북면 농민회를 중심으로 1998년 '백아산 살리기 범 군민 위원회'가 결성되고 백아산 지키기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결국 고려시멘트는 백아산 채광을 포기했다.

백아산 살리기운동의 성과는 농민회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고 단순한 농민들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지역현안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농민 운동의 전환점이 됐다. 2005년 7월 화순군의회 의원들이 의장직을 놓고 거래를 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원들의 자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의장실을 점거하고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는 장기농성을 벌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농민운동은 농민뿐 아니라 지역민을 위한 것

@BRI@박종섭 회장은 지금까지 5년여간 화순군농민회를 이끌어 오면서 농민회 조직이 진보성향을 가진, 소위 운동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이끄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각자가 개성이 뚜렷하고 명분이 또렷하다보니 이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많이 힘들었다고. 하지만 농업과 농촌, 농민들의 이익을 위한다는 한 목적을 위해 일하다보니 일단 의견이 모아지면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된다고,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양심가들이라고 말한다.

혹자가 그에게 힘들고 고달픈 일을 왜 하냐고 물을 때 그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과 농촌, 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농민들을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나만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가 아직까지 농민운동을 하고 앞으로도 계속 하려는 이유다.

박종섭 회장은 농민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위의 시선이 안타깝다고 한다. 벼 전량 수매대책요구 등 농민들과 관련된 문제에 나서면 자기들의 잇속이나 챙기려한다고 비난하는 게 대표적. 또한 의장사퇴요구처럼 잘못된 문제에 아무도 나서지 않아 농민들이 이를 시정하라고 나서면 농민들과 관련된 일도 아닌데 농민회가 왜 나서냐고 비난한다고.

이들을 향해 그는 말한다. 농민회는 농민들이 활동하는 것이고 이는 나락값 몇 푼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사는 지역에 불합리한 문제가 생겨도 모두가 이를 외면하기에 그 땅을 지키는 농민들이 나선 것이라고. 농민들이 나서지 않을 수 있게 다른 이들이 먼저 나서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농민회는 농민들의 이익만을 위한 단체라는 편견을 버려달라고 말한다. 농민운동은 농민들이 하는 운동이지만 농민들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의 이익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박종섭 회장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민들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농민회가 그랬듯 화순에 있는 많은 단체들이 자기들의 이익뿐 아니라 지역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우리가 사는 화순을 더 좋은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나서 주기를 바라며 지난 28일자로 5년간 져온 회장직을 내놓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순군민뉴스(www.hwasun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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