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비딤 골짜기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시나이 산을 향했다. 태양은 어느새 기울어 석양빛이다. 버스 창 밖으로는 사막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변의 바위산 색깔이 수시로 달라지고 있었다. 햇빛을 받는 면과 그늘진 면의 색깔이 달랐고 바위산 자체의 색깔들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숙소인 시나이 산 아래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곧바로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지배인들과 종업원들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맞아준다. 그들은 우리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다. 갑자기 "꼬레아 넘버원!"이라고 외친 지배인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다른 종업원들이 일제히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이어 "짝짝짝 짝짝"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터져 나온 큰 소리에 놀랐던 우리 일행들과 다른 한국인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한다. 순식간에 이집트 식당 실내가 한국의 월드컵 응원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식당 안에는 우리 일행들 외에도 또 한 무리의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그리고 중국인들과 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러시아인들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다른 외국인들은 종업원들과 한국인들이 합세하여 연호하고 박수치는 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차린 듯 약간은 황당하고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어쨌거나 예기치 않았던 이집트 식당 종업원들의 환대로 우리들은 기분 좋은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환대한 이집트 종업원들의 속셈은 곧 드러났다. 그들은 우리 일행들과 다른 한국인들을 찾아다니며 볼펜이 있으면 달라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까짓 볼펜 우리나라에선 얼마나 흔한 물건인가. 기분이 좋아진 몇 사람이 가지고 있던 볼펜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저녁을 먹은 우리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 30분부터 시나이 산 등정 길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잠깐 눈을 붙인 우리 일행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산 바로 아래 지역까지 이동하여 예정대로 시나이 산 등산길에 나섰다.
등산로 입구에는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잠깐 올라가자 길가 이곳저곳에 낙타를 끌고 나온 현지인들이 호객을 하고 있다. 호객하는 언어도 다양하다. "카멜! 카멜!" 하고 외치는 낙타꾼들이 있는가 하면 "낙타 타세요" 또는 "꼬레아 낙타" 하는 말도 들린다.
우리 일행들 중에서 낙타를 타기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들은 낙타를 타고 다른 사람들은 걸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한밤중이어서 산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다만 손에 모두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앞사람을 따라 걷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 저 하늘 좀 보세요? 별들이 저렇게 밝고 총총할 수가…."
여성 한 명이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구불구불 이어져 오르고 있는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손전등 불빛만 바라보며 걷다가 모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별들이 저렇게 많을 수가 있나. 꼭 옛날 어렸을 때 시골에서 바라본 밤하늘과 똑 같은데요."
옆에서 걷고 있던 일행이 덩달아 감탄사를 터뜨린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하늘에 크고 작은 구슬이라도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 누구라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등산객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다. 가끔씩 걷는 사람들을 추월하여 올라가는 낙타들은 야행성이어서 사람을 등에 태우고도 빠른 속도로 걸어 올라간다. 그렇게 1시간쯤 걸어 올라갔을까.
"앗 깜짝이야! 에취. 퉤! 퉤!"
누군가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물러선다. 우리들의 동행인 여행사 인솔자였다. 그 뒤로 키가 커다란 낙타가 올라온다. 옆에서 걷던 키가 작은 편인 젊은 인솔자가 무슨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다가 가까이 뒤따르던 낙타와 키스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우하하하!"
옆에 있던 일행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장 선생! 오늘 재수 좋겠는데. 예쁜 낙타와 뽀뽀를 했으니 우히히히."
등산로가 제법 넓은 편이었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모두 손전등을 들고 있어서 불빛이 없는 곳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등산로는 수많은 낙타들이 배설한 배설물 냄새가 가득했다. 어떤 사람은 그 배설물을 밟고 질색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낙타들의 종점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길이 좁고 경사가 급하여 낙타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곳이었다.
길가에는 몇 개의 가게가 있어서 커피 등 음료수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낙타를 타고 올라온 일행들과 합류하여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계단 길이다. 경사가 급한 돌계단에 폭도 좁아서 조심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는 75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오르던 일행 몇 사람이 힘이 드는지 속도를 늦춘다. 정상에 거의 올랐을 때 또 몇 개의 가게들이 나타났다. 가게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서 있었다.
외국인들은 커피나 음료수, 빵 같은 간식을 들고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배낭에 짊어지고 올라온 컵라면을 먹는 것이었다. 우리들도 라면을 꺼냈다. 가게에서는 끓인 물을 팔고 있었다. 컵라면 1개당 1달러씩이었다.
별빛 고운 한밤중에 이국의 높은 산 위에서 먹는 라면 맛이라니, 이건 정말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평소에 라면을 잘 먹지 않던 나는 여행을 떠날 때 라면을 준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행 중에 라면을 더 준비한 사람이 있어서 나도 컵라면을 먹게 된 것인데 그 맛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날이 밝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곳까지 오른 시간이 3시간 정도가 걸렸으니 동트는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컵라면과 음료수를 느긋하게 먹으며 쉬었다가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보니 인산인해다. 정상은 제법 넓은 편이었지만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자리가 필요했다.
"어디 좋은 자리 없을까?"
모두들 좋은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좋은 자리는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등 뒤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태양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리도 아프고 지루한지 몇 사람이 자리를 뜬다. 마침 내 앞에 서 있던 러시아 여성도 나를 돌아보며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라고 눈짓을 한 후 자리를 떴다.
좋은 자리를 기대했던 나는 감지덕지 재빨리 그 자리를 잡았다. 잠시 더 기다리자 드디어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보다도 더 늦게 온 사람들이 있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자리 탐이 보통이 아니었다. 마땅한 자리가 없자 상당히 위험해 보인 뾰족한 철제 울타리를 넘어 바위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바위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젊은이 한 사람이 먼저 올라가자 뒤이어 남녀 10여명이 위험한 바위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자 주변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우와! 드디어 해가 떠오르네. 그런데 태양이 왜 두 개로 보이지."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내게 조용하게 속삭인다. 정말 순간적으로 해가 두 개로 보인다. 착시현상이겠지. 얼마나 기다리던 일출인가. 정상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잠시 술렁이는가 싶더니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런데 동쪽 멀리 산 위로 머리를 내미는 가 했던 태양이 점프라도 하듯 불쑥 솟아올랐다.
"와아!"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정상 뒤쪽의 서쪽 산들이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난다. 역시 햇빛을 받은 곳과 그늘진 곳은 빛깔이 대조적이다. 내가 서 있는 시나이 산은 해발 2285미터, 저 뒤쪽의 더 높은 세르발 산은 2637미터다.
주변에 솟아 있는 2천미터 급의 풀 한포기 없는 붉은 바위산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물든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그 모습을 보려고 밤새워 올라온 수많은 관광객들과 성지순례객들의 눈이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들이다.
호렙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시나이산 정상 한 쪽에 작은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4세기경에 세워졌던 조그만 교회 자리에 1934년에 다시 세운 성삼위일체 교회로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
멀고 가까운 주변경치에 취해 있을 때 일행 중 누군가가 내려가기를 재촉한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바윗길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내려가고 있었다. 해는 어느새 한 뼘이나 올라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