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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가장 먼저 재래시장으로 찾아온다
저만치 들녘 곳곳에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데불고
아낙네들 장바구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봄은
떡방앗간 앞에서 슬며시 발걸음을 멈춘다
봄은 향긋한 쑥내음으로 다가온다
산골짝 양지 바른 곳에 쑥쑥 돋아난 쑥 데불고
조선 토종 단호박과 알밤이 놓인 시장 한 귀퉁이 멈춰 선 봄은
하얀 멥쌀가루 위에 연초록 쑥을 한 짐 부려놓는다
나는 지금 봄을 맞으러 떡집으로 간다
알록달록 어지러운 서양 케이크 훠이훠이 쫓아낸 봄이
생일날 새벽 예쁘게 빚은 쑥단호박떡 나눠먹으면
니가 내가 되고 내가 니가 된다
너는
봄이 왜 우리 살 속을 은근슬쩍 파고드는지
사랑이 왜 우리 맘을 그리도 아프게 뒤흔드는지
아느냐
- 이소리, '봄날, 쑥단호박떡을 먹으며' 모두
지금 마산 어시장 떡집 골목은 봄떡 빚는 소리로 가득
봄이 다가오는 길목에도 가파른 언덕이 있고 아스라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나 보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오월 중순의 기온을 웃돌며 갖가지 봄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던 봄이 갑자기 몰아친 비바람에 꼬리를 슬며시 감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기온이 영하로 뚝뚝 떨어진다. 이른바 꽃샘추위다.
@BRI@하지만 저만치 뒤돌아보며 가는 늦겨울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다가오는 봄을 어찌하겠는가. 이미 아지랑이 가물가물 일렁이는 봄은 어느새 산과 들녘을 지나 경남 마산 어시장 떡집 골목에까지 속속들이 들어와 있는데. 떡방앗간 곳곳에 향긋한 쑥으로 빚어내는 달콤한 떡내음이 봄을 빚고 있는데.
3월에 접어들면서 마산 어시장 떡집 골목이 술렁이고 있다. 떡방앗간 곳곳에서는 들녘에서 갓 캐낸 봄 쑥을 멥쌀가루에 버무려 연초록빛 떡가루를 뽑아내고 있는 소리로 가득하다. 파릇파릇한 봄 쑥 내음 싸하게 풍기는 고운 떡가루를 시루에 차곡차곡 담는 떡집 아낙네들의 손길도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2월 중순께부터 도심으로 천천히 내려온 봄은 이제 재래시장 떡집까지 내려와 지나치는 사람들의 입맛을 톡톡 건드리고 있다. 이른 새벽 산자락을 휘어 감고 있는 봄 안개 같은 허연 김을 무럭무럭 피워올리며 향긋하고도 달착지근한 내음으로 익어가고 있는 떡시루만 보아도 마음이 더없이 포근하고 넉넉해진다.
향긋하고도 달착지근한 봄 내음 풍기는 떡방앗간
"선생님! 오늘 시간이 좀 어때요?"
"아니, 왜?"
"쑥단호박떡 찌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면 해서요. 때마침 오늘이 제 생일이어서 마산 어시장에 있는 떡집에 쑥단호박떡 케이크를 주문해놨거든요."
"쑥단호박떡 케이크? 그런 것도 있나?"
"저는 생일 때마다 서양 케이크 대신 우리 전통 떡인 쑥단호박떡 케이크를 시켜 먹거든요. 서양 케이크는 쑥단호박떡 케이크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정도로 맛있습니다."
지난 1일(수) 오후 3시. 그날이 생일이라는 여행작가 김정수씨와 함께 마산 어시장 떡집골목에 들어서자 갖가지 아름다운 빛깔을 띤 떡들이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한꺼번에 사로잡는다. 이리 보아도 떡, 저리 보아도 떡뿐이다. 떡의 생김새도 여러 가지다. 이 세상에 있는 삼라만상이 모두 우리의 전통 떡으로 맛깔스럽게 빚어져 있는 듯하다.
흔히, '어시장'하면 바다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생선과 김, 미역 따위의 해산물을 파는 곳을 말한다. 하지만 마산 어시장에 가면 생선뿐만 아니라 산과 들, 강에서 나는 곡식과 과일, 채소 등을 파는 가게, 반찬집, 육고기집, 떡집, 한약재상, 칼 갈아주는 가게, 그릇점, 비닐 앞치마와 장갑을 파는 가게 등 먹을거리와 볼거리로 넘쳐난다.
그중 봄을 맞아 가장 시끌벅적한 곳이 바로 고소하고도 달착지근한 내음을 풍기는 떡집 골목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막 떡방앗간에서 뽑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보랏빛 시루떡을 비롯해 노란 콩고물이 묻은 찰떡, 갖가지 콩으로 빚은 콩떡, 진초록빛의 쑥떡, 하얀 가래떡, 갖가지 무늬가 수놓아진 떡케이크 등이 빼곡하다.
'쑥단호박떡 케이크'는 쑥, 단호박, 밤, 멥쌀가루, 까만 돈부콩으로 만든다
마산 어시장 떡집 골목에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떡집은 우리 전통 떡을 이용, 서양 케이크 대신 '쑥단호박떡 케이크'를 아름답게 빚어내는 집이다. '쑥단호박떡 케이크'란 이른 봄철에 나는 쑥과 단호박, 밤, 멥쌀가루, 까만 돈부콩을 재료로 삼아 서양의 케이크 모양으로 만든 떡.
이 집 방앗간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커다란 고무 대야에 하얀 멥쌀가루와 함께 담긴 연초록빛 봄 쑥이다. 그 곁에는 송송 썬 단호박과 삶은 밤, 돈부콩 등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마치 이 재료들이 여행작가 김정수씨가 미리 주문한 '쑥단호박떡 케이크'를 빚을 준비를 모두 끝냈다는 투다.
나그네가 가까이 다가서자 멥쌀가루와 쑥을 버무리고 있던 이 집 주인이 멥쌀가루와 버무린 쑥을 방아에 넣는다. 이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초록빛 떡가루가 쏟아지면서 방앗간 가득 향긋한 쑥 내음이 가득하다. 방아 저편에서는 단호박 가루가 쏟아지고 있고, 저만치 도마 위에서는 삶은 밤을 잘게 두드리는 안주인의 칼솜씨가 날렵하다.
이어 동그란 시루에 밤가루와 돈부콩을 깔고 그 위에 단호박가루, 쑥떡가루가 차례대로 깔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시루가 떡가마에 올려진다. 이윽고 시루에서 향긋한 쑥 내음과 함께 달착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내음을 풍기는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안주인이 시루를 떡가마에서 내려 순식간에 뒤집어엎는다.
예술품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우리 전통 떡 '쑥단호박떡 케이크'
주인의 재빠른 손놀림에 따라 이내 동그란 케이크 모양의 쑥단호박떡 케이크가 예쁜 속내를 금빛 받침대 위에 드러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 주인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진다. 납작하게 편 찰진 흰떡과 초록떡, 연분홍떡을 쟁반 위에 올려 예쁜 매화꽃을 찍어내고, 남은 떡을 가위로 잘게 잘라 매화나무 가지와 잎사귀를 만든다.
더불어 연초록빛 떡이 매화나무의 몸통과 가지, 잎사귀가 되어 쑥단호박떡 위에 올려지고, 가지마다 하양, 초록, 분홍빛을 띤 매화꽃 모양의 떡이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예술품보다 더 곱고 아름답다. 그래. 누가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라고 했는가. 혹 그 말은 바로 이 쑥단호박떡을 보고 내뱉은 말은 아닐는지.
"쑥단호박떡 케이크 위에 올리는 꽃장식은 늘상 매화꽃만 씁니까?"
"지금이 매화가 피는 봄 아입니꺼. 4월에는 진달래꽃 모양, 오월에는 장미꽃 모양, 이런 식으로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을 소재로 삼지예."
"이거 보기보다 손이 참 많이 가네요?"
"뭘 만들든지 정성이 안 들어가모 되겠습니꺼?"
쑥단호박떡 케이크는 쫄깃쫄깃 향긋하게 씹히는 깊은 맛도 그만이다.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밤맛과 달착지근하게 감도는 단호박의 맛 속으로 쫄깃하게 씹히는 봄쑥떡의 향긋한 봄맛! 그래. 올봄에는 생일이 아니어도 '쑥단호박떡 케이크'를 먹으며 새로운 봄 향기도 맡고, 우리 전통의 떡맛에 폭 젖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