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새벽 안개가 채 가시지 앉은 초입에서 부부 장승이 찾아오는 길손을 반갑게 맞이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라고, 그리고 쌓였던 먼지들을 훌훌 털고 오라고. 아마도 하산 길에는 내 몸속 구석구석에서 약간은 푸른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은류폭포가 보이는 산언저리쯤에서 한숨 한 번 돌리고, 한 계단 두 계단 정처 없이 오르다보면 깎아지른 절벽으로 우리 산하에서 보기 힘든 수십 장의 폭포가 흘러내린다. 여름철 장마 때라도 올라치면 그 기세가 온 산을 울리고도 남는다. 이곳은 수락폭포의 고결한 물처럼 살다간 조선시대의 선비, 매월당 김시습의 아픈 기억이 서려있다.
내린 봄비 속에 물은 수십 장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고, 넓다란 바위 위에 삼삼오오 앉아 막걸리 한 사발에 땀을 식히다 옆을 보니, 폭포 바로 위에 금류동천(金流東川)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곳 수락산에은 은류폭포, 금류폭포가 사이좋은 부부처럼 흐른다. 달빛 좋은 날 먼발치에서 은류폭포를 바라보거나, 얼음장 얼어붙은 겨울날 바라보는 것도 가히 장관이다. 이곳 수락산은 그 이름처럼 물이 아주 풍부하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명산이다. 여름날 계곡 이슥한 곳으로 내려가 수락산 맨발과 목욕이라도 한 번 하고 나면, 이 세상의 어떤 삶도 부럽지도 않다.
바로 그 위는 내원사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서 조선 정조대왕 때 이곳에서 300일을 기도하여 조선 23대 순조가 탄생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불경 소리 귓전으로 시원하게 들으면 절 마당에 들어서니, 울퉁불퉁한 탑신 위에 동전들이 잔뜩 쌓여 있다. 100짜리, 500짜리, 어떤 이는 아예 잔돈을 다 털었나보다. 백 원짜리가 사이좋게 가지런히 누워있다. 노자돈 떨어진 길손이 주어가도 하루치 양식은 충분할 듯하다.
수락산 정상은 638미터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 산장과 약수터가 있다. 이곳의 물은 사철 마르지 않는다.
달디 단 물을 한 사발 들이키는데, 어디서 기타 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린다. 이미 산행의 흥이 오른 등산객들과 산장 주인 털보 아저씨가 마주앉아 7080노래가 한창이다.
산장 아줌마는 6개월 전부터 기타를 배웠다고 한다. 그것도 털보님이 막무가내로 접수를 시켰다는데, 이제는 그 실력이 제법이다. 이미 기타의 재미에 흠뻑 빠진 모습이다.
행복하게 보이는 산장 부부, 그들의 언저리 뒤로 날빛이 많이 어두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