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 이중 잣대, 뉴라이트 강연은 되고 진보 강연은 안 되고?"
진보 강연회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고려대 진보 학생단체와 학교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7월 뉴라이트 계열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는 고려대에서 강연회를 개최했다.
반면, 지난달 28일 대학생 반전·반자본주의 단체 '다함께'는 오는 10~11일 주최하려던 강연회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장소 대여 불허' 통보를 받았다. 앞서 지난달 8일 장소 사용 신청서를 내고 20여일 동안 강연회 홍보를 해온 터였다.
주최 측 학생들이 이를 두고 '이중 잣대'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또한 '학교 측에서 처음엔 허가해놓고, 강연을 열흘 정도 앞두고 돌연 허가 취소 방침을 통보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신청서를 받아두기만 했을 뿐, 허가해준 적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함께' 고려대 모임과 경영대·문과대 학생회 등 '고려대 제 민주단체' 소속 학생 20여명은 6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경영본관 앞에서 '진보 강연회를 불허하는 고려대 당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식적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또 학교 측이 불허해도, 예정된 장소에서 그대로 강연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학생 측 "강연회 주최는 고대생" vs 학교 측 "외부 단체 '다함께'가 주최"
'다함께'와 '다함께' 고려대 모임, 경영대 학생회는 오는 10~11일 교내 경영대 학우강당에서 진보 인사들을 초청해 '진보적 대학생이 꼭 알아야 할 9가지 주제'라는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버지니아 로디노 미국 '평화정의연합' 국제연대위원 등 국내외 진보 인사 9명을 초청해 미국의 이라크 침략 4년, 이주노동자의 현실, 비정규직, 한미FTA, 신자유주의와 대학 등 사회 쟁점을 진보적 시각으로 다뤄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학교 측은 "주관하는 단체가 '경영대 학생회'가 아닌, 외부 단체인 '다함께'이기 때문에 강연을 허가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경영대 학생회도 주최 측의 일부"라도 맞서고 있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에서 "강연회가 열릴 경영대 학우강당에선 오는 6~7일 엄연한 외부행사인 두 차례의 기업 설명회가 예정돼 있다"고 밝히고 "강연회 불허는 고려대가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으로 대학생들의 진보적 활동을 탄압하려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증거"라고 규탄했다.
이어 "학교 당국은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박사학위 수여 항의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징계를 시도했고, 지난해에는 이 회장 학위 수여에 반대하고 보건대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반대했던 학생들을 출교시켰다"고 주장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강연회에는 6일 현재까지 150명의 고려대 학생들과 100여명의 타 학교 대학생들이 참가신청서를 냈다.
이들은 "많은 학생들이 공식 수업 외에 다양한 지적 욕구에 목말라 있다"고 밝히고 "대학은 특정 재단이나 운영진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공헌해야 할 공공 자산이므로 공공문제에 대한 폭넓은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인권위 "학내 정치활동 금지는 기본권 제한 행위"
'다함께' 고려대 모임 회원 김영익씨는 "고대생 모임도 분명 주최단체인데도 학교에서는 이를 '외부인'이라고 하는데, 대체 외부인과 내부인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학내 진보 단체 '유쾌한 정치' 회원 조정식씨는 "기업들의 취업설명회 장소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이 경영대"라고 말하고 "이들 기업이야말로 외부단체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강용구 경영대 학사지원부 과장은 "'타 학과 및 외부단체의 사용신청은 불허한다'는 학내 규정에 따랐다"면서 "보수·진보에 따라 장소 사용 여부를 가리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어 "기업 취업설명회의 경우 교내 '취업지원부'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함께'가 주최 단체이면서 장소 신청서엔 경영대 학생회라고 '허위 기재'했다"며 학생들을 겨냥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6일 "전국 68개 대학(고려대 포함)이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교내 집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학교 측의 허가를 받게 하는 등 학생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히고 "정치활동 금지 학칙은 헌법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과 양심·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해당학교 및 교육인적자원부에 학칙 시정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