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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하드라마 <주몽>이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6년 5월 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당초 예정이었던 60회를 훌쩍 넘겨 2007년 3월 6일 81회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까지 무려 약 10개월간의 대장정이었다.

매주 월-화요일만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주몽 폐인’들의,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하는’ 한숨이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 <주몽>은 끝났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주몽>은 향후 한국 드라마 계보에서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

잊혀진 민족사 복원한 걸작 VS 고구려에서 안드로메다로 간 판타지 무협극?

@BRI@아마도 <주몽>만큼 작품의 가치평가에 관한 논란이 엇갈리는 드라마도 드물 것이다. 상업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주몽>은 분명 성공작이다. <허준>, <대장금>, <첫사랑>, <내 이름은 김삼순> 등 소위 ‘대박 작품’에만 해당하는 꿈의 시청률 50% 고지를 넘어서며 ‘국민 드라마’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무수한 스타들을 배출해냈으며, 드라마와 관련된 엄청난 규모의 사회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해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잊혀진 우리의 고대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주몽>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주몽이나 소서노 같은 우리 역사의 실존인물들은 고사하고, 건국신화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젊은 세대에게 역사인식과 민족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 점은 어떤 가치로도 환산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몽>은, 유감스럽게도 ‘시청률 지상주의’에 의존한 상업 드라마의 온갖 폐단을 모두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시대를 고증할만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대를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이 보여준 육체적, 정신적 노력, 배우들의 호연과 높은 시청률 등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적 완성도에서 <주몽>을 그리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시대극에서 ‘역사적 사실’과 ‘극적 상상력’ 간의 균형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는 고민거리지만, <주몽>은 정도가 지나쳤다. ‘퓨전 사극’을 표방한 <주몽>은 극 초반부터 시대의 문화와 복색, 주요 등장인물들의 관계도와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하여 드라마적 구성을 명분으로 사실상 고증을 무시한 채 자의적인 역사 해석을 남발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우리 민족사의 재발견이라는 명분으로 출발했던 <주몽>이 오히려 역사왜곡을 부추기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주몽>은 역사 드라마라기보다는 사실상 고구려 시대와 실존인물의 캐릭터만을 차용하여 만든 판타지 무협극에 더 가까웠다.

시청자를 위한 연장? VS 시청자를 볼모로 한 ‘고무줄 편성’?

우리 방송가의 고질적인 관행중 하나가 시청률에 따른 ‘고무줄 편성’이다. <주몽>은 중반부를 넘어서며 높은 인기를 끌자 노골적으로 연장방송을 염두에 둔 시간 끌기로 일관했다. 별다른 타당성 없는 에피소드로 스토리는 산만하게 늘어졌고, 제작비와 예산 부족으로 드라마의 스케일이나 완성도는 현격히 떨어지며 빈축을 샀다.

드라마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몇 차례나 ‘주몽특집’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방영분의 하이라이트 장면 짜깁기로 일관한 프로그램들이 반복 재탕됐다. 방송사의 회당 방영분 ‘신사협정’을 무시한 장시간 편성은 가뜩이나 <주몽>의 독과점에 피해를 본 경쟁사 드라마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명분 없는 연장에 대한 여론의 비판적인 시각, 주연배우와 작가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MBC는 ‘완성도 개선’과 ‘고구려 건국 이후’까지의 방대한 스토리를 다룬다는 핑계로 회사 고위층까지 나서서 연장방송을 강행했지만 실상 연장 후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여전히 좀처럼 진전되지 않던 스토리는 최종 1~2주를 남겨두고서야 비로소 ‘벼락치기’식으로 급속하게 정리되었고, 내내 대립하던 인물들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화합의 대반전을 맞는다. 당초 연장의 명분 중 하나였던 주몽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갈등구도나 백제 건국으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시간에 쫓겨 엉성하게 마무리됐다.

좋은 기획의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때 시청률 정상을 호령하다가 용두사미로 무너져 내렸던 <여인천하>, <야인시대>같은 작품에 비하여 마지막까지 라이벌 없이 절대강자를 호령했던 <주몽>은 행복한 작품이다. <주몽>하나로 10개월간 달콤한 과실을 맛본 MBC 역시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의 사랑을 볼모로 한 각종 반칙 편성과 언페어 플레이를 남발한 <주몽>은 ‘행복한’ 작품일지언정, (드라마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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