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의원이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노동당 후보로는 처음이다. 심 의원은 7일 문래동 당사에서 회견을 갖고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이뤄내겠다"고 선언했다. 심 의원은 "한나라당의 정권교체는 냉전의 부활, 신자유주의 강화를 의미한다"며 'IMF 금융위기 10년'에 대한 심판을 주장했다.
국회 재경경제위원회에서 '주류 경제의 송곳' 역할을 해온 심 의원은 진보정당의 경제교과서를 새로 쓰겠다는 포부다. 그가 본 한국경제의 핵심적 문제는 외국자본과 재벌기업이다. 대안으로 ▲국내에는 서민경제론 ▲한반도에는 평화경제론 ▲동아시아에는 호혜경제론을 묶어 '세 박자 경제론'을 내놨다.
우선 서민경제론의 핵심은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 관료-금융감독기관의 개혁을 바탕으로 금융, 기간산업, 교육, 주거, 의료 분야의 '자산 재분배'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생각이다.
한반도 평화경제론은 개성공단과 같은 거점도시를 확대하고, 북한의 경제 인프라 구축을 위해 남북협력은행와 같은 사회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형 FTA' 전략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은 사회문화적 연대를 통해 북한, 몽골 등 낙후지역에 대한 공동개발, 달러 대신 아시아 통화체제를 구축하는 내용이다.
정운찬과 각별한 인연 김상조 "심상정 지지"
심 의원은 지난 4년간 의정활동을 통해 쌓은 '경제 전문성'을 내세워 철저하게 '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다. "진보는 이미지나 선언이 아니"라며 "실력 있는 진보" "강한 진보정당"을 표방했다.
눈에 띄는 것은 경제자문단이다. 진보진영 사회ㆍ경제 분야 실력자들이 모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경제자문역을 맡아온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캠프에 합류한 데 이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과 노동사회 분야 전문가인 임영일 영남노동연구소장이 참여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한미FTA 협상과 관련 정부와 청와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사회적 논쟁의 불씨를 제공한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왔으나 "재경부 관료들과 그에 포위된 청와대 386"이라는 인식 아래, 이 정부의 경제정책의 한계를 지적해 왔다.
정 전 비서관은 "내가 청와대 4년 동안 있으면서 경제 관료들의 '벽'에 부딪쳐 좌절된 정책들만 가져와도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정 전 비서관은 심상정의 세박자 경제론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부문을 담당하며, 특히 한미FTA 협상 문제를 요리할 예정이다.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동당 한미FTA 특위위원장이자 국회 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상조 소장은 '삼성 저격수'로 통한다. 이건희 회장 등을 상대로 에버랜드 편법상속과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삼성의 사과와 8천억 사회 환원을 이끌어낸 장본인. 김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캠프에 결합해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는 안되지만 경제개혁연대의 작업 성과가 심상정 후보의 정책개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개인 차원의 자문역은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김 소장이 여권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뒤로 하고 '심상정 지지'를 선언한 것은 흥미롭다. 김 소장은 "정 전 총장은 대학 은사고, 각별하지만 대선에서 지지할 생각은 없다"며 "심상정 의원을 지지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쪽에서 '러브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피했다. 김 소장은 심상정의 서민경제론에서 재벌과 금융 분야 자문역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임영일 소장은 노동, 사회 분야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전노협 쟁의국장을 거쳐 민주노총의 대공장 조합원들을 상대해 온 심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정당이 되어야 한다"며 '800만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에 애착을 드러냈다. 임 소장은 민주노총이 기업별 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데 기여한 현장 연구자다. 임 소장은 지난해 20년 동안 몸 담아온 경남대 교수(사회학)직을 버리고 현장 지식인으로 돌아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심상정의 남자들... 홍세화ㆍ단병호ㆍ임종인 등
오늘 기자회견장에는 "심상정이 사람을 다 데려갔다"라는 말이 새나올 정도로 심상정 캠프의 면면은 화려했다. 후원회장은 맡고 있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재경위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며 "치열한 리더십으로 진보의 진정성을 보여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동료 의원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임종인 의원은 "심 의원이 낸 정책 자료집을 모두 읽었다, 경제를 배웠다"며 "작년 재경위에 가서 심 의원을 보필할 작정이었지만 열린우리당이 강제로 법사위에 배치해 좌절되었다"고 말해 장내 웃음이 터졌다.
노동운동 선배인 단병호 의원도 "심상정 지지"를 선언했다. 출마채비를 하고 있는 노회찬, 권영길 의원을 의식, 그의 공개 지지는 망설임 끝에 내려진 결심이었다. 단 의원은 "심 의원에게 후보로 나서기를 주문했던 당사자로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이십대인 심 의원이 긴 생머리를 땋고 다닐 적부터 만났다, 참 똑똑하다 당찬 여장부"라고 추켜세웠다. 아울러 심 의원이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맡고 있을 때 대공장 남성 조합원들 사이에서 돌던 "아름다운 마귀"라는 별명을 소개하며 "현장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간부들을 채근하며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견장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신영복 선생이 직접 써준 것이라고 한다.
남편인 이승배(51)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동문 선배로 '노동운동 20년'을 함께 해 왔다. 집회나 행사장에선 자주 만나지만 "심상정을 위한 행사로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심 의원은 말했다. 그리고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 우균(15)이 있다.
전문가 "실천력, 능력, 컨텐츠 겸비... 이미지 미성형"
한편 민주노동당이 작년 당 대선전략 관련 전문가 상대 심층면접 조사결과에 따르면, 심 의원은 "실천력, 능력, 컨텐츠를 겸비한 진보정치의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살아온 이력, 신념, 정책면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와 한번 붙어볼만 하다"는 평가와 "메이저 정당의 후보가 남성이면 더 주목을 받고 성과를 낼 것"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다만 "대중적 이미지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약점이 지적됐다.
권영길 의원에 대해선 "국민적 인지도와 안정감 확보하고 있으나 '대권 삼수 올드 보이'"라는 점이, 노회찬 의원에 대해선 "대중적 인지도 높은 진보세력의 훌륭한 자산이나 '만담'만으로 정치할 수는 없어, 컨텐츠 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심상정 의원에게 이사를 권유한 사람은? 경찰이었다. 반지하에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와 “반지하는 경호가 어렵다”며 이사를 권유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이후 심 의원은 4천만원 대출을 받아 현재 용인에 1억5백 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심 의원은 “살고 있는 아파트가 60%가 올랐다”며 “내년이 전세 만기인데 전세 값도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도 주택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과 분양원가 공시를 핵심으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알려졌다시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월급은 180만원. 국회의원의 월평균 수입은 이 보다 서너배 가량 되지만 당에 헌납하고 일부를 돌려받는 식이다. 현금 자산이라도 공개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심 의원은 “특별히 공개할 게 없다”며 “바로바로 써버리기 때문에 통장 잔고랄 게 없다”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