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하얀거탑>은 일본에서와 같이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일본에서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의 동명소설 <하얀거탑>을 드라마로 옮겼을 때도 한국과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일본판이든 한국판이든 <하얀거탑>은 권력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못하는 의사의 모습을 그려 기존 휴머니즘을 겨냥한 메디컬드라마와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간대 사극 <대조영>으로 인해 시청률 1위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이 드라마가 가져온 생생한 충격은 후에 회자되고도 남을 일이다.
@BRI@먼저 독특한 촬영기법은 이 드라마만의 긴장감을 조성했다. <하얀거탑>은 한국 드라마에서 <여인천하> 이후로 잘 볼 수 없었던 클로즈업 화면을 사용하여 인물의 미묘한 표정을 전달하는 데 힘쓴 모습이다.
대사로는 잘 전달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이나 기쁨을 감추는 상황에서 이 클로즈업 기법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완성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목소리의 크고 작음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가까이에서 촬영함으로써 속삭이는 듯 은밀한 분위기가 연출하기도 하며, 머리 바로 위 조명과 배우의 모습을 함께 잡아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새로운 촬영기법만으로 목적한 바 큰 실효를 얻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자신을 둘러싼 상하관계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커져만 가는 야망을 주체 못하는 외과 과장 장준혁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끌려간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되었다.
이선균(최도영 역)의 자리잡지 못한 주연 연기도 큰 아쉬움이다. 대결구도를 설정하기 위해 배치한 주연급 배우 이선균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이 드라마의 큰 손실이다. 애초 장준혁의 야망에 불씨를 당기는 역할로 특별출연한 노민국 역의 차인표는 선악의 대결구도에서 선의 역할인 최도영 역의 이선균을 조연급으로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카리스마 있는 두 배우가 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일련의 굵직한 에피소드들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크게 높여놓았다. 하지만 이는 이선균을 그저 소신은 있지만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 승승장구하는 친구 장준혁에 비해 무능력하게까지 보이는 착한 친구 역할에 머물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총 20회에 걸쳐 숨가쁘게 달려온 <하얀거탑>에 종지부를 찍는 장준혁 과장의 죽음은 시청자들에게는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18회까지 의료 소송으로 긴박함을 최고조로 조성한 이 드라마는 항소에서 패배한 장준혁의 갑작스런 병세로 2회만에 죽음으로 급격히 막을 내렸다. 일본판 드라마나 원작소설에 정보를 두지 않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는 급한 결말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회에 병으로 죽어가는 장준혁이 외과의로서 수술장에서 자신의 집도 모습을 끊임없이 회상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안쓰러움을 자극했다. 덧붙여 자신의 시신을 기증해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이는 같은 병의 환자보다 급격히 빨리 진행된 자신의 병세를 의심하며 의사로서의 마지막 도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야망을 쫓는 의사의 종말이라 하기엔 너무나 동정심을 일으키고 마치 짜여진 것처럼 의사로서 죽는 방법을 제시하는 방식의 결말이었다.
결국 또 인생무상의 결론인가
<하얀거탑>은 끊임없는 도덕적 질문을 던졌다. 신념에 관해서, 양심에 관해서, 자신의 철학을 돌이켜보라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등장 인물이 양심상 갈등할 때 흐르는 배경음악 '소나무야'는 언제나 푸르게 사는 소나무를 연상시키며 꼭 그같은 모습으로 살 것을 떠민다.
이 드라마는 애초 "의학계 이면을 현미경처럼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 또 궁극적으로 보는 이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획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는 단순히 인생무상이라는 씁쓸함을 담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