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들이닥친 IMF로 한국은 지금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고 스스로 목숨까지 버려야 했던가?
39개국이 미국과의 협상 중에 중단하거나, 협상을 마친 상황에서 FTA 체결을 보류하고 있다. 미국정부가 한미FTA하자고 사정해도 "임기가 끝나가니 다음 대통령이 할 일"이라고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미루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것만은 꼭 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한국정부.
39개국의 정부가 왜 협상을 중단했는지, 나프타 이후 멕시코와 캐나다가 어떻게 경제파탄의 길을 가고 있는지. 10년을 준비해도 부족한데 고작 1년을 준비하고 협상에 임할 수 있는지. 땅을 치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의 서두른 OECD 가입 IMF를 낳았다
@BRI@김영삼 전 대통령은 업적주의에 빠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서둘러 가입했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신중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OECD 가입을 강행했다. 그 결과, IMF가 고통의 쓰나미로 물려왔다.
99년 2월 뉴욕타임즈의 '세계적 전염'이라는 기사에서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가경제회의(NEC)의 초대의장 로버트 루빈의 주특기인 금융자유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적이 있었다.
이 기구의 논의를 거쳐 미국정부는 "금융자유화 요구에 응하면 OECD 가입을 허용한다"는 매력적인 미끼를 내걸었다. 김영삼 정부는 그것이 뜨거운 감자인 줄도 모르고 덥석 물었고, 그 때 헐은 입안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이 신문은 또한 "OECD 가입을 위해 한국정부는 애초 계획보다 서둘러 시장 자유화에 합의했다"는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너무 빨리 개방하면 많은 금융기관이 적응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 OECD를 이용했으며, 그것은 미국 은행과 투자가를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1996년 미국 재무부의 내부 비망록에 보면 "외국인이 한국의 국내채권을 매입하도록 하고, 한국 기업에 단기 및 장기 외자도입을 허용하며, 외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의 주식을 더 쉽게 구입하도록 한다"는 보고하고 있다.
이 신문은 "그런 조치들이 한국 기업으로 하여금 외국인 자본과 투자에 더 쉽게 다가가도록 하겠지만, 1997년 말에 일어난 바와 같은 자본유출 패닉에 더 쉽게 무너지도록 한다"라고 평가했다.
예측대로 한국경제는 IMF를 당했다. 경제청문회까지 열렸지만 당사자인 김영삼 김현철 부자는 출석도 하지 않았다.
무역대표를 역임한 캔터는 현대적 금융기법과 법적 장치가 없는 금융자유화를 '기초 없이 마천루를 짓는 것'에 비유했다. 전직 상무부 국제무역담당 차관 가튼도 재직 때의 자유화 강요에 대해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지나쳤고, 상당한 오만이 곁따랐다"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충격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다.
한미FTA의 파급효과는 IMF의 10배라는데
금융시장 개방만으로도 우리 경제는 무너졌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알짜 기업들이 여전히 초국적 자본의 손에 있다. 수많은 사람이 실직되었다. 경제파산자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사회에서 도태되었다. 절망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한미 FTA는 IMF의 수준이 아니다. 상당수의 경제전문가들이 한미 FTA의 파급효과를 IMF의 10배에 달한다고까지 말한다.
게다가 FTA는 IMF와 달리 금융시장만 개방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를 개방하는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헌법의 기초를 흔드는 투자자 정부 제소권까지 보장하고 있다. 스스로 미국의 경제식민지가 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13년 전 미국과 나프타를 체결한 멕시코와 캐나다를 보자.
멕시코 1억400만명 인구 중 600만명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이가 12만명에 달한다. 멕시코시티에만 노점장사를 하는 농민과 실직자들이 6만명에 이른다. 130만명의 농민이 봉기자(사파티스)가 되었다. 주식인 옥수수 또르띠아는 1㎏당 1페소였던 것이 6페소50센트로 7배나 뛰어올랐다.
나프타협정을 상징하는 산업단지 마킬라도라는 4배 이상 수출이 증가했지만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1% 밖에 오르지 않았고,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다. 대부분의 이윤이 미국의 초국적 기업으로 돌아갔다는 증거다. 각계각층의 충고를 듣지 않은 살리나스 정부의 결정이 국민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인 캐나다의 상황 역시 개발도상국인 멕시코와 별반 다르지 않다.최근 3년 사이 밴쿠버의 노숙자는 2배가 늘었다. 5만명의 예비노숙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은 5%에서 11%로 늘어났고 실업자 고용보험 혜택도 50% 대로 떨어졌다. 5가구 중 3가구가 실질수입이 줄었고, 상위 20%가 캐나다 수익의 절반을 가져가고 있다. 특히 한인들의 주업종인 컨비니언스(동네 슈퍼마켓)는 월마트 등의 초대형마트에 밀려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고, 문닫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노무현의 업적 위해 국민 모두 죽을 순 없다
그런데도 참여정부는 왜 전력질주를 하는 것일까? 한 자릿수의 지지율과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는 노무현 정부의 강박관념, 2005년 2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발표한 '동반성장 보고서'가 화근이 되었다.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면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이 동시에 이루어져 사회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은 세계1위의 경제부국이다. 서비스 산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초국적 자본, 인적자본과 오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멕시코처럼 비정규직만 양산되고, 사회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무수한 보고서가 나왔다. 세계 2~3위의 일본과 독일은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서비스업의 고용창출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800만 인구가 서비스업에만 종사해서 살 수 없다. 미국처럼 서비스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영국이 제조업의 몰락으로 인해 유럽의 종이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서비스업은 석유나 가스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하거나 1·2차 산업이 건강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상태로 한미FTA 협정이 체결된다면 선진국 문턱도 밟지 못하고 추락할 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정부의 헌법이 미국의 초국적 기업에 좌지우지될 전망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와 스위스처럼 협정을 중단하거나 보류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이 거세다면 국민투표에 붙이면 된다. 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할 협정을 대통령과 협상단 일부만 밀실에서 추진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협정 최종안을 공개해야 하고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 협정을 미룰수록 국가적으로 이익인데 왜 바짓가랑이를 잡고 목을 매는가.
김영삼 정부의 무리한 OECD 가입이 IMF를 몰고 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전력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13년 전의 나프타보다 훨씬 강력한 'FTA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FTA를 허겁지겁 체결했을 때 IMF 고통의 5배가 될지 10배가 될지 모른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과 함께 결정할 일이다. 무리한 OECD 가입을 막지 못한 IMF의 고통은 OECD를 추진한 김영삼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의 몫이 아니었다. 한미FTA의 고통도 대다수 국민(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4800만 국민의 생존권을 개인의 업적주의와 맞바꿀 수는 없다. 업적주의에 빠진 노무현 정부에 한미FTA를 중단하거나 국민투표에 붙이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기본 권리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당연한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