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 Mnet의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이하 '아찔소')은 기본적으로 미국 Mtv의 <넥스트! 마음에 들 때까지>(이하 '넥스트', 케이블 채널 리얼티비 방영 중)의 형식을 빌려온 남녀간의 만남 주선 프로그램이다. 어찌나 비슷한지 요즘은 이렇게 그대로 가져다 만들어도 아무 문제없는가 하는 우문을 던지게 될 정도다.
<넥스트>는 남자 혹은 여자 한 명의 선택을 받기 위해 후보들 5명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순서대로 데이트를 한다. 이른바 폭탄은 넥스트를 시키고, 탈락한 후보들은 데이트한 시간에 비례한 돈을 받는다. 최종적으로 선택 받은 사람은 돈과 상대와의 두 번째 만남 중에서 선택을 한다. <아찔소>는 기본적인 데이트와 선택의 과정은 같다. 다만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킹카와 퀸카라고 해서 특별한 지위를 준다. 그리고 진행자를 두어서 데이트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는 점이 다르다.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지상파에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로 결혼을 염두에 둔 나이대의 사람들이 신중하게 서로를 탐색하며 자기에게 적절한 상대를 찾는 과정이었다. <아찔소>는 그에 비해 연령대가 현저하게 내려가면서 만남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었다.
예전 프로그램들이 일단 만나서 질문 대답 하고 서로에게 내보일 거 최대한 보여주다가 최종적으로 마음을 결정하는, 말하자면 소개팅 세대의 맞선이라고 한다면, <아찔소>는 부팅 세대의 연애게임으로 볼 수 있다. 이름을 물어보기도 전에 외모나 패션이 내 타입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무례하거나 건방진 것이 아니라 게임의 룰이다.
그리고 그(그녀)의 최종적인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은 마음이 아니라 돈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남녀의 만남-사랑-결혼의 공식을 매뉴얼로 하는 진부한 윤리 관념을 가뿐히 뛰어넘는다(<넥스트>는 남녀간의 만남만 주선하지 않는다. 게이들을 위한 버전도 있는데 이때 버스 안에서 후보자들 사이에 서로 눈이 맞기도 하는 것이 재미있다. <아찔소>는 남녀간의 만남만을 설정하고 있다).
자신의 권력적 위치를 찾는 <아찔소>
<아찔소>는 사랑을 찾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킹카나 퀸카는 자신의 권력적 위치를 만끽한다. 그(그녀)가 원하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겨드랑이 털을 보여줘야 하고 쫄쫄이 무용복으로 갈아입어야 하고 킹카의 외국인 친구들 앞에서 영어를 못해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또 퀸카가 낸 퀴즈에 답을 못해 비웃음 속에서 물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들(퀸카·킹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가차 없이 버스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쪽팔려 울고 악담을 할지언정 그(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BRI@<아찔소>가 인터넷 미디어를 달구게 된 화제는 바로 이런 요구들이 지나치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찔소>는 연예인들의 기획된 전략이거나 연기가 아니라 연애 게임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못된' 등장인물의 행태들이 모여 프로그램의 기초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못된 캐릭터들은 킹카와 퀸카 뿐만 아니라 후보자들 중에서 나오기도 한다.
퀸카에게 콩알탄을 던진 후보자의 미니홈피에는 네티즌들의 악플이 쏟아지고 출연자들이 방송에서 하지 않은 험담들이 방영 후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면서 화제를 만들어냈다. 이제 화제만발의 프로그램이 된 <아찔소>는 시즌1의 마지막에 유난히 화제가 되었던 출연자들을 재출연시키는 빅매치를 진행함으로써 못된 캐릭터들이 프로그램의 일등 공신임을 인정했다.
어차피 "당신은 아니다"라고 면전에서 거절하는 일에 맞선의 예의를 요구할 수 없다. 정글같은 연애 전선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치르는 20대 초반의 서바이버들에게 숙고와 관조의 지혜를 요구할 수도 없다. 폭탄을 제거하는 일은 즉각적이고 직감적이다. 그들이 따지는 조건들이 일일이 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다수가 납득해야 할 것들이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코는 반드시 매부리코여야 된다고 해서 멋들어진 코들을 전부 1초 만에 탈락시킨들 그 취향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못된 행동들 중에서 대개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남을 지적하거나 (주로 외모에 대해) 혹은 후보자를 톡톡히 망신시킬 작정을 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것들이 집중적으로 네티즌들의 화를 돋는다.
더욱 강하고 공격적이 된 '발언들'
<넥스트>를 기본 틀로 했던 시즌1을 마무리한 후, 현재 방영되는 시즌2는 그 틀에 변화를 주었다. 퀸카 혹은 킹카는 처음부터 2명과 데이트를 하고 둘 중에서 한 명을 탈락시킨다. 그러면 다른 후보자가 등장하면서 1:2 구도를 유지한다. 이렇게 탐색의 과정에서 경쟁을 도입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은 후보는 돈이냐 만남이냐를 선택하는데, 시간에 비례하는 돈이 아니라 최대 100만원이 든 5개의 가방에서 한 개를 선택한다.
미국 NBC의 <러브 vs. 머니(1달러에서부터 백만 달러 사이에서 임의로 선택한다. 거금이지만 확률은 낮아지는 것이다)>를 참조한 듯 더욱 극적인 반전을 도입한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기만 하면 100만원을 얻을 가능성이 생기지만 1:1로 데이트하는 것이 아니라 1:2로 데이트하면서 고난도의 생존경쟁이 되었다.
1:2 데이트에서는 후보자들이 퀸카나 킹카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한다기보다는 같이 경쟁하는 후보를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나 취향 (어쩌면 경제적 수준) 등을 견주어보면서 데이트 상대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죽거나 혹은 살거나, 그리고 양자택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상황을 만듦으로써 배틀 필드의 치열함이 강화되었다.
단적으로 한 킹카는 2명의 후보자들에게 권투시합을 하게 했는데, 여기서 지지 않으려는 신경전이 주먹질을 가열했고 킹카는 재미있게 이 경기를 지켜보았다. 후보자들은 시즌1에서는 서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담소를 나누곤 했으나 시즌2에서는 직접적으로 맞붙어야 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스파링 파트너들을 경계하게 된다.
퀸카 혹은 킹카가 둘 중에 나를 택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가장 경계했던 다른 후보자의 등장에 당황하는 모습의 반복은 이미 시즌2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또 탈락된 후보가 퀸카 혹은 킹카에 던지는 발언의 강도는 더욱 강하고 공격적이 되었다. 최대한 순화해서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를 가지고 놀다니, 네가 잘난 줄 알아? 내가 참아준 것뿐이야." 굴욕과 모멸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누구도 게임의 승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부킹은 그냥 부킹으로 끝나야
제작진은 등장인물들의 못된 행동들과 캐릭터들이 프로그램의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잘 안다. 후보자들의 지갑을 사전에 검사했던 한 퀸카의 행동이 구설에 오르자 후에 지갑을 검사하던 당시의 촬영분을 편집하지 않고 내보내기도 하는 등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들에서 못된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는 시대다. 하지만 왜 <아찔소>의 못된 행동들은 특별한 성품 정도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난을 받을까? 그것은 그런 행동들이 상대방을 비하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다시 윤리의 문제이다. 명품을 좋아하거나 가는 다리를 좋아하는 취향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직접 당하는 사람은 불쾌의 정도가 아니라 깊은 모멸감이 될 수 있다) 만드는 것은 윤리의 문제이다. <아찔소>는 취향을 빌미로 인간관계의 윤리에서 아찔한 경계를 건드리고 있다.
혼자 남겨진 퀸카 혹은 킹카에게 진행자가 묻는다. 진심이 뭐냐고. 프로그램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질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부팅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서는 사람에게 너의 진심이 뭐냐고 묻는 셈이다. <아찔소>는 그런 만남에 무리하게 스토리를 만들어내려 하기 보다는 짧고 가볍게, 부팅에서 결혼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부팅은 부팅으로 끝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TV 리뷰 시민기자단 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