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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자의 봄' 극 중 패러디
ⓒ kbs
이혼녀들의 봄날이 간다. KBS 수목 드라마 <달자의 봄>이 이번 주 막 내린다. 초반엔 SBS <외과의사 봉달희>와 동시간대 채널 잡기 혈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작품의 개성'이 빛을 발하며 자릴 잡기 시작했다. 방영 중반 이후로는 시청률 장사도 10%대 후반으로 솔솔 했다.

방송 초반 '채림, 이혜영이란 이혼녀들을 데려와 <장밋빛 인생> 최진실처럼 시청률을 높이려 함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눈 흘김이 많았던 게 사실. 그러나 드라마는 홀로 남겨진 이혼녀들을 가십거리로만 이용하지 않았다. <달자의 봄>은 어느 드라마보다 여성주의적 따뜻함으로 극 중 캐릭터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적 따뜻함이 TV를 데우다

"운명의 남자 같은 건 없다. 곤경에 처한 나를 구해주기 위해 달려와주는 왕자님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니까 달자야, 너 스스로 일어 설 수밖에 없는거야."

극중 오달자의 화장실 독백 씬. 노처녀 '오달자'와 이혼녀 '위선주'는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백마 탄 왕자를 꿈꾸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단 '위기의 현실'을 온 몸으로 맞는다. 문제 해결에 있어 언제나 타자화 되었던 여성(그것도 노처녀, 이혼녀)이 주체화 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 순간만큼 그녀와 그는 더 이상 나의 적이 아니었다. 나의 동료였다." (위선주, 신세도의 대답에 대한 오달자의 독백)

이 드라마의 여성주의적 미덕은 단순히 '주체화'로 끝나지 않는다. 남자들이 서른 넘어 직장에 잔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서른 넘은 노처녀 혹은 이혼녀가 회사를 잘리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다 '그녀들에겐 독한 무언가가 있다'로 흔히 귀결된다. 이런 사회적 통념이 드라마 속 직장에 남아 있는 노처녀, 이혼녀의 캐릭터에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입혀온 것이다.

이런 '위험한 여자들'은 일터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대상화한다. 하지만 그 대결의 상대는 남자보다 여자가 주를 차지한다. 남자들은 어쩔 수 없는 기득권층이기에 그들은 경쟁상대에서 배제된다. 이에 여자들의 '공공의 적'은 여자라는 구도를 답습했다.

그러나 <달자의 봄>은 여성 캐릭터간의 연대로 끈끈하다. 직장동료 오달자와 위선주는 일터라는 자신의 영역 사수를 위한 날섬으로 아귀다툼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에 대한 상대방의 진정성, 사적인 생채기 등을 확인하고 가슴으로 연대한다. 오달자의 직장 상사 강신자 팀장(양희경)도 오달자, 위선주가 가진 일의 능력을 인정하며 '신뢰'로써 연합한다.

'독백', 그 은밀한 달콤함으로 시청자와 관계 맺다

<달자의 봄>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드라마의 구조 변동을 압축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 변동의 중심엔 극중 캐릭터의 '독백'이 있다. 이전 드라마들이 캐릭터간 갈등, 사건에 대한 극 중 인물의 생각을 모두 '대화'의 방법으로 풀어낸다면 <달자의 봄>은 사건 정리를 '독백'으로 한다.

극중 상황에 대한 서술이 인물간 대화로만 이루어지거나 그 대화의 밀도가 너무 빽빽하면 시청자는 그 대화 내용 속으로 좀처럼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다. 그 대화 내용을 드라마 흐름을 좇기 위한 '정보'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후자는 시청자들과 극중 캐릭터만 알 수 있는 머릿속 독백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적 이입'을 유도한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극중 캐릭터의 생각에 자신을 앉힘으로 몰입해 가는 것이다. 극중 캐릭터의 이야기이지만 '내 얘기'로 승화해 감정적 리얼리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독백' 내러티브 전개의 진원지는 김도우 작가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그 후 <여우야 뭐하니>,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 박연선 작가의 <연애시대> 같은 20~30대층을 타깃으로 한 멜로드라마에서 두드러졌다.

이런 드라마의 주 소비층인 20~30대는 '독백'에 익숙하다. 그들이 주로 칩거하는 블로그나 싸이월드는 대화형의 매체가 아니라 독백성의 매체 성격이 짙다. 블로그나 싸이월드 등에 올리는 일기 식의 '혼잣말'에 수년간 단련되어 왔던 터라 드라마의 독백식의 커뮤니케이션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꿈꾸는 드라마, <달자의 봄>

마지막으로 '달자의 봄'은 구조상 평면적이지 않다.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복합적 구성으로 재미를 더한다. 그 대표적 방법은 '패러디'. 김도우 작가가 <내이름은 김삼순>과 <여우야 뭐하니>에서 기존 인기 드라마의 명대사 혹은 현실적인 다른 방법으로 드라마의 '만약'을 구성했다면. 강은경 작가는 보다 적극적이다. 오달자와 위선주의 영화 <킬빌> 패러디(1회), 오달자와 강태봉(8회)의 드라마 <황진이> 패러디가 감칠맛을 더한다.

장준혁이 죽었다. 그리고 <하얀거탑>이 끝났다. 평소 눈맛 까다로운 시청자들과 드라마 잘 안 보는 남자 직장인들은 '나도 드라마 본다'고 커밍아웃 중이다. 너도 나도 현실의 '거탑'을 증명하며 <하얀거탑>의 승리를 자축하고 '드라마가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변한 건 <하얀 거탑> 만이 아니다. <하얀거탑>만한 강진은 아니지만, 잔잔한 미진은 언젠가부터 20~30대 멜로드라마를 관통했다. 그리고 그 긍정적 변화의 시작점에 <달자의 봄>이 있다.

덧붙이는 글 | tv 리뷰 시민 기자단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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