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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큼매큼 무쳐낸 간재미무침, 잃었던 식욕도 금세 되찾는다.
새큼매큼 무쳐낸 간재미무침, 잃었던 식욕도 금세 되찾는다. ⓒ 맛객
수족관에서 건져 낸 간재미, 싱싱하기가 말도 못한다. 파르르 춤추는 지느러미 짓이 하늘도 날 기세다. 어쩌면 곧 새큼매큼 무쳐질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는지도. 소멸하기 전 가장 화려한 불꽃처럼 생동감의 절정이지만, 맛있는 놈을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앞에 부질없단 생각마저 든다.

전국 음식기행을 떠난 맛객, 목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완도로 간다. 이때만 해도 완연한 봄. 그렇게 계절은 가고 다음 계절이 왔나 싶었는데, 요 며칠 꽃샘추위는 계절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놓는다.

봄에 찾아오는 추위는 자연의 섭리이다. 하지만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낸 탓에 기상이변이란 생각이 앞선다.

반지르르 윤기나는 싱싱한 간재미, 간재미는 양식이 없다.
반지르르 윤기나는 싱싱한 간재미, 간재미는 양식이 없다. ⓒ 맛객
어둑해진 시간에 완도에 내렸다. 낯선 곳에 선 이방인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는 건 지역의 음식 맛 아니겠는가. 김을 제치고 완도의 대표 특산물이 된 전복, 하지만 이날 맛볼 음식은 전복이 아니다. 파닥파닥 춤추는 간재미라오.

간재미, '간자미'가 표준어라지만 맛객은 간재미가 더 익숙하다. 표준어와 실생활 언어의 괴리감은 미각까지 떨어뜨리는데, 그게 어디 간자미뿐이랴. 자장면에서는 어떠한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비로소 죽었던 미각이 되살아난다.

이맘때 간재미는 계절의 별미에서 진미가 된다. 간재미 맛의 황금기이기 때문이다. 살이 올라 고소하고 달며 오돌돌 씹히는 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춤형 식감이라 해도 손색없다. 일찍이 서남해안 사람들은 그 맛을 알고, 겨울과 봄철이면 간재미무침으로 잃었던 입맛을 되찾았다.

홍어 본고장 남도에서도 홍어무침보다 더 즐기는 게 간재미무침이다. 애당초 홍어무침은 도시 사람들 입맛 길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다. 홍어라면 손을 내젓는 사람도 무침은 어느 정도 소화시키고 있으니 전략은 성공했다. 반대로 톡 쏘는 맛과 암모니아 향미로 먹는 홍어, 새큼달큼한 무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미각쟁이들은 홍어무침을 높게 쳐주지 않는다.

완도에서 손맛 하나로 지역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아시나요식당. 최근엔 전복회덮밥을 개발해 완도를 찾는 관광객이나 전국의 미식가들에게도 꽤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집이다. 자연에서 난 재료를 고집하는 탓에 대부분의 식재료는 재배나 양식을 찾기가 힘들다.

노지에서 난 파는 하우스 파에 비해 맛과 향이 진하다.
노지에서 난 파는 하우스 파에 비해 맛과 향이 진하다. ⓒ 맛객
파김치 하나만 해도 노지에서 난 것이라 매운맛이 마늘에 가깝고, 향미는 코에서 입으로 입에서 코로 휘감고 지나간다. 주인과 안면 좀 튼 단골손님 중에는 입구에 있는 수족관에서 낙지 한 마리를 꺼내 통째로 물면서 들어온다고도 한다. 그래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웃음으로 넘긴다고 하니 주인과 손님의 살가운 관계가 맛객은 부럽기만 하다.

싱싱한 간재미, 회무침에는 날개살만

무침에는 지느러미(날개)살과 코만 사용하고 몸통과 꼬리는 버린다.
무침에는 지느러미(날개)살과 코만 사용하고 몸통과 꼬리는 버린다. ⓒ 맛객
음식기행 길에 완도를 찾은 것은 이 집의 손맛을 보기 위함이고, 이 집을 찾은 것은 간재미무침을 맛보기 위함이다. 수족관에서 건진 간재미를 보니 손바닥 두 개 크기다.

회 무침에는 네 마리 정도 들어가는데 꼬리와 몸통을 버리고 날개살만 이용한다. 이윤만을 생각한다면 양을 늘리기 위해 몸통까지 무쳐도 그만이겠지만, 손님상에 그렇게까지 해서 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문득, 어렸을 적 먹었던 간재미무침이 생각난다. 그땐, 내장을 제외하고 버리는 것 없이 무쳐냈다. 몸통살의 좀 억센 연골 뼈가 싫어 살점이 많은 날개살만 골라 먹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어떤 걸 집어도 날개 살이라는 얘기가 된다. 골라 먹는 재미 한 가지를 빼앗겼다면 배부른 자의 투정이라고 할까나.

혀에 착 안기는 양념과 오돌돌 씹히는 육질의 조화가 입맛 당기게 한다.
혀에 착 안기는 양념과 오돌돌 씹히는 육질의 조화가 입맛 당기게 한다. ⓒ 맛객
먹어도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 신선하고 상큼하다. 막걸리와도 잘 어울린다.
먹어도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 신선하고 상큼하다. 막걸리와도 잘 어울린다. ⓒ 맛객
좀 전까지 날갯짓을 열심히 하던 귀여운 고 녀석이 빨간 회무침으로 변신해 상 위에 올려졌다. 한 점 집자 젓가락을 통해 탱글함과 신선함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양념이 너무 달지도 너무 신맛도 아닌데 혀에 찰싹 달라붙는다. 육질의 부족한 식감은 연골 뼈가 보완해주면서 그래 이 맛이야!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간재미의 일미(一味)라 할 수 있는 코, 씹으면 흘러 나오는 육즙이 혀를 간지럽힌다.
간재미의 일미(一味)라 할 수 있는 코, 씹으면 흘러 나오는 육즙이 혀를 간지럽힌다. ⓒ 맛객
입안에 감도는 매큼함은 침샘을 자극하면서 젓가락질에 쉼 없게 만든다. 간재미무침을 먹을 때 특히 집중해서 음미해야 할 부위가 있다. 간재미 대가리 끝쯤 되는 코 부위다. 씹으면 물컹 나오는 육즙, 그 맛은 진미임이 분명해서 오묘한 맛이기도 하다. 무침 한 접시에 네 점뿐이니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

들에서 자연적으로 난 갓으로 담근 김치, 겨울을 품은 맛이라 좀 억세지만 맛은 온실의 것과 비할 바 못 된다.
들에서 자연적으로 난 갓으로 담근 김치, 겨울을 품은 맛이라 좀 억세지만 맛은 온실의 것과 비할 바 못 된다. ⓒ 맛객
시원한 맥주로 입안을 개운하게 하면서 먹다 보니 무침 한 접시가 다 비워진다. 혼자 먹기 꽤 많은 양인데도 마지막까지 즐거운 맛이 될 수 있었던 건, 신선한 재료와 손맛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지금은 봄 아닌가. 간재미가 맛있다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2.13~3.7일까지 전국 음식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업소 정보는 blog.daum.net/cartoonist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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