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변호사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보다는 불쾌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들을 좋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판사나 변호사, 또는 검사를 잘 알고 있거나 자기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이를 대놓고 들먹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사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변호사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다.
여동생의 딸인 내 조카도 법조인이 되겠다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시험에 합격하였을 때는 명절 때 모인 가족들이 당사자에게 언제 판사 하느냐고 격려성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보고 판사나 변호사가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의 문제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ㅇ대학교 법학과를 1학년도 다 다니지 않고 그만두고는 재수를 하여 법조계 인맥이 좋다는 ㄱ대 법학과를 갈 때부터 이미 법조인 줄서기를 하는 것으로 보여 딱했었다. 더구나 동아리 활동이니 농촌봉사활동이니 하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휴학을 반복하며 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걱정스럽지만 차마 그런 내색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내 걱정은 별것 아니다. 삶을 제대로 배우고, 사람에 대한 건강한 이해가 밑바탕이 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심판하고 남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싶어서였다.
@BRI@<피고인에게 술을 먹여라>는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공부만 해서 판사가 된 책을 쓴이인 서태영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책을 쓰게 된 동기에는 약간의 허영심도 있었다는 점을 털어놓고 있는데, 현직 변호사의 고백치고는 뜻밖으로 들린다.
60여 꼭지 글로 구성된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피고인에게 술을 먹여라'는 글에서는 실정법 적용의 법 현실을 재미있게 드러내고 있어 일종의 법 상식을 익히는 재미까지 있다.
같은 범법행위라 해도 술을 먹었을 때와 맨 정신일 때는 엄청난 양형상의 차이가 있어서 판사마저도 상황을 감안해 형을 줄이려고 "혹시 그때 술 먹지 않았느냐"며 물어도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피고가 도리어 불리할까 봐 절대 술을 먹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이야기이다.
소송중독이라고 할 만한 소송만능주의자들의 이야기는 역시 법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인 변호사가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여 책에 더 끌리게 된다.
지은이 서태영의 교양과 안목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오는데 '법무법인이라는 대형마트'라는 부분이다. 대형마트는 환경파괴적인 운송체제와 지역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각성한 지역 주민들이 퇴출운동까지 벌이는 현실임을 서태영이 잘 알고 있는 듯하여 반갑다.
더구나 '김앤장'이라는 한국 최대의 법무법인을 예로 들며 변호사업계의 초대형마트인 법무법인에 대한 서태영의 판단과 우려는 귀 기울일 만하다.
뒤에서 법조인을 함부로 욕하면서 특히 변호사를 선임할 때는 '변호사님만 믿는다'고 갖은 아양을 다 떨다가 재판결과만을 놓고 돌변하여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소송의뢰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보기도 한다. 다짜고짜 "빼낼 수 있느냐"며 이를 사전에 확인받으려 한다거나, "실형만은 면하게 해 달라"며 수임료를 더 내는 사람들의 법(또는 변호사)을 대하는 태도를 읽다 보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1985년 이른바 사법 파동이 있을 당시 서태영이 이를 비판했다가 좌천당하는 이야기가 '[인사유감] 필화'라는 꼭지다. 여기서 당시 나를 재판했던 박시환 판사 이야기가 나온다. 박시환 판사가 시위사건에 대해 지극히 합리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 화가 되어 지방으로 좌천되었을 그때, 바로 서태영이 <법률신문>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싣는데, 그 앞뒤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별거 아니지만 개인적 연고가 닿아있어 관심이 더 가는 대목이었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전두환 정권 시절 우리나라 사법부가 어떤 몰골이었는지 단적으로 나오는 일화들이다. '전장군, 전장군' 하는 판사들의 행태들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법조인들의 보통의 생활이 어떠한지 알게 되는 재미가 있고 그 속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보는 것은 삶의 보편적 이해를 넓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글쓴이는 책 속에서 오래전 이야기를 하면서도 특정 당사자를 쉽게 몰아세우거나 사태를 편 가르기 식으로 보지 않고 편안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 읽는이도 편하게 해 주고 있다.
그동안 인권변호사만 보아오다가 평범한(?) 변호사인 서태영의 글을 보고는 '변호사는 합법적인 도둑놈'이라는 속설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피고인에게 술을 먹여라> 모멘토.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