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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그릇에 국 한 사발도 마음 따라 수랏상이다.
밥 한그릇에 국 한 사발도 마음 따라 수랏상이다. ⓒ 황종원
내 생일이다. 환갑이다. 살 만큼 살았구나. '축하한다'는 말은 내가 곁에 있어 조금은 의지가지가 되는 아내가 독창으로 돌려준다.

원주 못 미쳐 문막의 이차선 도로 옆 숲속에 있는 숯가마에 모인 처가 식구들이 함께 깔깔대고 생일 축하를 한다. 숯가마 속은 마치 우리의 삶처럼 치열하다.

불꽃을 들여다보면 마치 달구어진 바늘인 듯, 가마 속에 들어가면 덮어쓴 거적에서 탄내를 내며 타들어간다. 그래도 열기를 참아야 하듯이 나는 살아온 세월 동안 불운에도 굴하지 않았다. 불운 뒤에는 행운이 온다고 믿기 보다 당당하게 살았다. 행운에 흥분하지 않았다. 으레 온듯이 가기에.

지난 삼년 동안 우리 내외는 치도곤을 당했다. 흔히 말하는 팔자소관이나 운수소관을 따지면서 나는 내게 오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 연연하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참 힘들었다.

지난 여름 아내가 집안 목욕탕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부러져 인공관절로 바꾸는 수술을 했다. 지난 10월에는 내가 건강보험료 환급 사기를 당해 몇 백만 원을 날렸다. 사업합네 집 담보로 '억'을 투자하곤, 억 소리 나게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아들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내서 상대방 차를 전복을 시키더니 이년 뒤 이번에는 교통사고를 내서 아직 월부금을 붓고 있는 새 차를 몇 백만 원이 드는 수리비가 들 정도로 망가트렸다.

팔자를 따지지도 운수대통을 꿈꾸지 않아도 인생살이를 여유작작하게 연습 삼아 살자 해도 인생은 결코 연습이 아니기에 지치고 힘들다.

같이 힘든 아내가 비록 남편의 환갑이라 하여도 일가 친척에게 말도 말며 집에서 국도 끓이지 말란다. 오는 듯 가는 듯 모른 체 보내자고 한다. 오가는 사람이 길을 오가다가 다칠 수도 있고, 음식 차리기 힘들며 음식점에서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일 형편도 아니다.

아내가 우리 부부와 아들까지 삼재라 그런가 보다고 할 정도다. 잦은 매에 이길 장사 없다. 운명론자가 아니며 사주팔자를 보지 않고 역경에도 당당한 아내다. 이 시람 역시 세월의 나이만큼 힘이 드나 보다. 몸이 불편한 아내가 남편 환갑입네 사람 모아 감당하기엔 이제 지칠 나이다.

그냥 보내기 섭섭한지 아내는 자기 친정 식구에게 입소문을 냈다. 그래서 처가 식구들과 숯가마에서 모였다. 숯가마 찜질에다 점심까지는 단 돈 사천 원이다. 점심 한 그릇 값으로 온종일 뒹굴 수 있다.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어디 상을 보자. 밥과 미역국에다가 신김치뿐. 숯가마 입장료에 포함된 밥과 국이니 오죽 하랴. 땀 빼고 먹는 미역국이 맛있다고 저마다 주방 아줌마에게 빈 국그릇을 내민다.

예전의 환갑잔치는 풍악 울리고 지화자 소리에 자손들이 절하면서 축하주가 어른에게 올려졌다. 요즘 시절 그런 풍악에 권주가 올리는 환갑 잔치가 몇이나 있으랴. 상차림이야 거지의 생일상이나, 마음은 임금님의 수랏상을 받는 듯하다.

아내가 절뚝절뚝하여도 부축을 받기는 하나 조금 회복하여 내게는 환갑 선물이 따로 없다. 힘든 취직 시험을 통과하여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합격해 독일로 떠난 딸아이가 이별의 슬픔에 지지 않는 더 큰 선물을 주었으니 그게 바로 환갑 선물이다. 남들은 힘들다 하나 직장생활 꾸준한 아들 역시 환갑선물이다.

아내는 점심상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저녁에는 음식점에 가서 돌솥밥을 먹을 테니 점심은 이것으로 참아줘요. "

누가 뭐랬나.

"이제 바로 임금님 수랏상인데 무슨 또 상을 차려주시겠다고 하시나."

결혼식 때 주례사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30년 세월을 살았다. 곁에 아내가 있어 내게는 큰 축복이다. 행복한데 무엇을 더 바라랴. 환갑의 나이에 다투지 않고 알콩 달콩 사는 하루하루가 잔칫날이 날인데 무엇을 더 바라랴. 그러면서 밥 말은 국에 짠맛이 돈다. 수랏상의 국에 간이 더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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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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