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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이다. 언젠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한참 동안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 있는데 시간의 차용과 축적에 대한 얘기였다. '시간의 차용과 축적'이라고 써 놓고 보니 그때 나눈 이야기가 상당히 차원 높은 주제처럼 보인다.

시간을 이야기할 때는 공간과 속도를 빼 놓을 수 없다.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존재 할 수 있으며 시간의 속도문제는 철학과 물리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아들이 꺼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알맞은 때에 알맞은 장소에서 한 것이 된다. 차를 몰고 고향에 가는 중이었는데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BRI@아이가 한 말은 이런 것이다. "오늘 낮 시간을 조금만 더 늘이면 안돼요?"라는 것이었다. 컴퓨터도 없고 친구도 없는 아버지의 고향은 아이에게 불편하고 답답한 곳이지 추억이나 향수가 있을 리 없다.

뒷간은 가기가 무섭고 모기떼는 극성인지라 털털 대는 트럭보다도 더 툴툴거리면서 말도 않고 자는 듯, 조는 듯 하던 아이가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문득 떠올린 생각이었나 보다. 아이는 내일 낮에 쓸 몇 시간을 빌려서 오늘 사용하면 어둡기 전에 시골에 도착할 것 아니냐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명절에 고향 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참 좋겠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발상이 재미있기도 하고 아들의 고양된 기분을 유지시켜야지 하는 속셈도 작용하여 장단을 맞춰가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서로 온갖 상상들을 동원해 가며 시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

물론 결론은 그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겨쓰는 대부분의 시간들은 쾌락 쪽으로 몰릴 것이고, 시간을 사고 파는 사람들도 생겨 가난한 사람들은 제 명까지 못 살고 부자는 오래 살 것 아니냐고 했다.

혼자에게만 해당되는 시간이면 모르지만 내 시간 조절이 다른 사람의 시간과 결부되어 있을 때는 합의도출을 위해 폭력 등 어떤 힘을 사용하는 일까지 생기고 보면 생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주로 내가 한 지적들이다.

이야기의 어떤 대목에서 내가 "너는 시간을 연장하고 싶을 때가 주로 언제냐?"고 물었더니 곰곰이 생각을 하던 아이의 대답이 의외였다. "불을 끄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는 잠이 막 들락 말락 할 때"라고 했던 것이다.

아이의 살아 있는 감성을 보게 된 것도 반갑거니와 평온하게 잠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 아니랄까봐 이때부터는 내가 엉뚱한 생각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아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면 나는 처음의 구상을 고치고 또 고쳤다. 아까랑 비교하면 마치 역할극을 하면서 배역을 바꾼 것처럼 되어버렸다.

아무리 바빠도 모든 자동차는 길마다 정해져 있는 규정 속도 이상을 달릴 수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가 한 첫 마디였다. 그러면 자동차 사고가 반으로 줄 것이라는 것이 내 덧붙인 내 예측이었다. 아이가 불자동차나 경찰차는 어떡할 거냐고 해서 몇몇 자동차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내가 양보했다.

연이어 나는 꿈같은 소리를 많이 했는데 최근 해외토픽을 보니 그때 내가 한 꿈같은 말이 실현 된 것이 있다. 술 마시고 운전을 하려고 하면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리는 것이 그것이다.

자동차가 중앙선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린다든가, 길거리에서 차 세워놓고 삿대질하고 싸우면 자동차 타이어 바람이 저절로 빠져 버리고, 어린애를 앞좌석에 태우면 자동차에서 비상벨이 울리는 등 내 상상이 종횡무진 할 때 아이가 불쑥 한 말이 있다.

"차를 안 타면 되잖아요."

자동차로 비롯되는 여러 불행들에 대한 유일한 처방을 어린 초등학생이 내 놓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고향에 거의 다다랐다. 이때 뜻밖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한참 올라가 있던 내 자동차 속도계의 바늘이 정상으로 내려와 등속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13년 된 고물트럭의 털털대는 소음도 들리지 않았고 장시간 운전의 피로도 전혀 없었다. 이미 어두워진 지방도로의 어둠도 못 느낀 채 우리는 '행복하게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북도의 진보시사지 <열린전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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