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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대학교 교정엔 활기가 넘친다. 새내기들과 재학생들이 어울려 학교 한 귀퉁이의 잔디밭에 둘러앉아 낮이면 도시락이나 자장면을 먹고, 밤이면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자기 소개를 하며 필살의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같은 활기참을 뒤로한 채 도서관으로 향하던 복학생의 눈에 자기소개를 어정쩡한 서울말로 구사(?)하는 한 새내기의 모습이 들어왔다.
별 새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나와 동향 출신으로 보이는 그 새내기의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투와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자신감 없는 표정….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딱 5년 전 내 말투이고, 내 표정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 풍경을 두고 한참이나 서서 새내기를 바라보고 또 5년 전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BRI@서울의 대학교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쓰는 말이 사투리인지 알지 못했다.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과 다르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20년간 사용하던 나의 표준어를, 우리 지방의 표준어를 한순간에 바꿔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당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대학교 입학 전 정체성이란 말의 의미를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 표준어라고 불리는 서울말 때문에 나는 "이런 게 정체성의 혼란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고향 친구나 부모님한테 전화가 오면 나는 나의 말을 쓴다. 그러다 옆의 서울 친구가 말을 걸면 또 다른 나의 말을 써야 한다. 이러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서울말을 쓰니 것이 대세고, 또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서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갑작스레 돌변한 나의 말투가 들통 날까 몰래 고향 사람들의 전화를 받았고, 반대로 고향사람들과 있을 때는 역시 몰래 서울 친구들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인간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그깟 말투 하나 땜에 왜 그러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나의 말이 서울말도 고향의 말도 아니었듯이, 나란 사람도 서울 오기 전의 경상도 사람도, 그 후의 서울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도 안 되게 무서웠다. 외국인이 나한테 다가외서 길을 물어보는 것보다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게 더 무서웠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국가가 가정에서 나름의 준비과정을 거치게 해줬다. 그러나 서울말은 처음부터 혼자서 배워야 했다.
우리 지방의 표준어와 너무 다른 살짝 끝을 올리는 억양, '~어?, ~냐?'로 끝나는 너무 생소한 종결어미, 이제는 사용 못하는 '짭다, 껜또' 등의 정겨운(?) 말들…. 나는 아직도 내 주의의 고향 사람들이 내가 이런 말을 못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사투리를 쓰지마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무도 없긴 하다.
ㅇㅇ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바짝 긴장을 했다. 점원이 잘 못 알아듣거나 피식 웃는다. 그래서 햄버거 하나 주문하면서 기업체 입사시의 면접관을 만난 것처럼 군다.
정말 말도 안 된다. 서울의 사람들도 한국말을 쓰고 지방의 사람들도 한국말을 쓴다. 그런데 마법에 걸린 듯 약 2시간 이상의 지역 이동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서울말을 쓴다. 아니 노력한다. 신기하다. 사투리를 써도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사투리 쓰는 내가 개그맨이 되고, "깬다"라는 말을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 아니다. 이러면 주위에서 "너 A형 이자나!" 하며 자동으로 대한민국만의 혈액형 공격이 들어올 거다. 나는 할 말이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25%를 소심한 A형이라 가정한다면, 무려 우리 국민의 25%나 되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거나 겪었다는 말이 된다. 그저 슬프다.
당일 생활권으로 묶여있는 이 좁은 땅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역감정이란 말이 떠오른다. 아직도 어른들은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결혼하는 것을 꺼려한다.
아니 적어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미팅을 나가면 서울의 아가씨(?)들은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남자를 역시 좋아하지는 않는다.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상대방이 그렇든 그렇지 않든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회 분위기다.
아직도 한나라당에 가면 경상도 말을 쓰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열린우리당에 가면 전라도 말을 쓰는 분들이 대부분이란다. 2시간만 달리면 서로의 지역구에 갈 수 있고, 20분만 달리면 서로의 당사에 갈 수 있고 2분이면 서로의 입장도 생각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말로만, 플래카드에만 지역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말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서로의 생각도 서로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올해의 새내기들은 내가 겪은 말도 안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게 서로를 자연스레 인정하는 소통의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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