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안 공청회를 강행했다.
복지부는 15일 오후 2시 서울 불광동 보건사회연구원 대강당에서 법학교수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열어 의견수렴 절차를 마쳤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대한의사협회와 치과의사협회 대표들이 참석하지 않아 복지부 공청회는 사실상 '반쪽'으로 치러졌다.
같은 시각 서울시의사회와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간호조무사회 등 4개 단체회원 300여명은 공청회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대신 공청회장 안팎에서는 의료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의료인들의 요란한 구호소리가 울려 퍼져 복잡한 이해관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복잡한 공청회장 안팎
전국적인 보건의료단체인 의료연대회의는 공청회 시작 직전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공청회는 입법절차를 위한 요식행위"라고 비판한 뒤 "의료공공성을 파괴하고 영리추구를 허용하는 독소조항을 철회하고 국민건강권과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연대회의는 "현재 의료법 개정안은 일종의 '법률적 쿠데타'로, 병원의 영리추구를 부추겨 의료비를 올리는 등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서울시의사회와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간호조무사회도 보건사회연구원 밖 도로에서 "기형적인 악법 만든 복지부는 할복하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경만호 서울시의사회장은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유시민에 의한, 유시민을 위한 개정안"이라며 "오만방자한 유시민을 반드시 퇴진시키자"고 성토하기도 했다.
공청회장에서도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장동익 의협회장 등 의료단체 대표들은 공청회 시작 직전 '공청회 불참 이유'를 밝힌 성명서를 낭독하려 했지만 주최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신 장 회장은 좌장을 맡은 이윤성(서울대 의대) 교수에게 성명서를 전달하고 공청회장을 나갔다.
안팎에서 반대구호가 요란했지만 공청회는 원만하게 진행됐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법률개정에서의 중요한 고비를 별탈없이 넘긴 셈이다.
'10만 궐기' 천명했지만, 의료단체 미묘한 입장차
이제 의료법 개정안 입법예고 마감시한은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 작업은 착착 진행되는 중이다.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안을 그런대로 무난히 처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 4단체가 오는 21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1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준비하고 있어 또 한 차례 충돌 가능성이 남아있다. 의료계는 21일 궐기대회를 통해 복지부의 의료법 개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21일 의사들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감수하며 집단 휴진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의료단체는 15일 공청회 반대 집회에도 약 1500여명의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참가자는 5분의 1(약 30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평일인 21일 전국 의사들이 과천으로 모이는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더구나 복지부는 벌써 21일 이후 의사들의 집단 휴진 사태가 벌어진다면 관련법에 따라 업무개시명령과 고발 등 '초강수'로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 4단체 내부의 미묘한 입장 차이도 '세 과시'를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다.
대한의사협회와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는 이날 공청회를 '보이콧'하기로 했지만, 뒤늦게 한의사협회 대표가 슬그머니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때문에 방청석에 있던 의협 관계자들은 "(의료 4단체) 공조를 깨는 행위 아니냐" "끌어내려야 한다"고 흥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각 단체마다 조금씩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