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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 미국 메릴랜드 주에 사는 이미진 제자와 자녀들.
ⓒ 박도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 행복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음은 어렸을 때 한학을 전수해주시던 외삼촌이 내가 대학 시험에 합격하자 들려준 얘기다.

평생을 구중궁궐에서 사신 한 임금님이 보통 사람의 행복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 어느 날 조회시간에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마다 그 답이 구구하였는데, 임금님이 무릎을 칠 만한 명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한 눈치 빠른 신하가 긴급 제안을 했다. 올 과거시험의 과제로 내보자고.

그래, 그 해 과거시험 문제는 '행복에 대하여 논하라'였단다. 전국방방곡곡에서 모인 유생들의 답안지 가운데 장원으로 뽑힌 것은 '사희(四喜)'라는 글제의 답안지인데, 인생의 네 가지 기쁨을 다음과 같이 칠언절구로 썼다.

천리 타향에서 고향사람을 만났을 때(千里他鄕逢故人)
칠년의 큰 가뭄에 단비가 내릴 때(七年大旱逢甘雨)
혼례를 치른 신랑신부가 맞이하는 첫날밤 달조차 없을 때(華燭洞房無月夜)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그 이름이 홍문관에 붙을 때(少年玉堂揭名時)


누군가 지어낸 얘기겠지만 명답안으로 여겨져 여태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천리 타향에서 뜻밖에 고향사람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실로 크다. 1999년 여름,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동북지방 최고의 순결한 파르티잔 '허형식(許亨植)'이란 인물을 만나고는 그분이 바로 내 고향 구미사람으로,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당질이라는 데 얼마나 반갑고 놀랐던가. 그 이후 줄곧 우둔한 내가 항일문제에 천착한 것도 아마 그때의 기쁨 때문이리라.

뜻밖의 메일

▲ 옛 담임선생을 위해 차려놓은 만찬상.
ⓒ 박도
나는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2일까지 두 주 동안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일하고 돌아왔다.

이번 미국행은 세 번째인데다가 그 목적이 한국전쟁 사진자료 수집에 있기에 조용히 다녀올 심산이었다. 항공료라도 아낀다고 값싼 비행기표를 샀더니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무려 20시간만에 워싱턴 달라스 공항에 닿았다.

그동안 두 차례나 도와주신 재미동포 박유종(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 손자) 선생이 이번 길에도 헌신적으로 도와주셨다. 한국도 꽃샘추위가 매서웠지만 그곳에도 진눈개비가 내리는 무척 쌀쌀한 날씨였다. 숙소도 지난 번에 묵던 메릴랜드 대학촌의 한 값싼 모텔이었다.

여장을 풀고 인터넷을 연결하는데 그새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뀌었다. 한국이라면 아들에게 물어 쉽게 해결하련만 어찌할 수 없어서 인터넷 연결을 포기해 버렸다(며칠 후 옆 방에 묵고 있는 부산대학교에서 메릴랜드대학에 단기 연수온 학생의 도움으로 연결했음) .

이튿날 저녁 일을 마치자 시간이 많았다. 나도 그새 인터넷 중독증에 걸렸는지 좀이 쑤셨다. 한인 식당 종업원에게 한글 PC방을 묻자 가까운 거리인 대학촌 곁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산책을 겸해 그곳에 가서 48시간만에 메일 함을 열자 모두 6통이 도착해 있었다. 그 가운데 뜻밖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미진이에요. 이곳에 오신다는 소식을 동창 이종호에게 듣고 연락드리는데 혹시 저를 기억 못하시진 않으실까 염려도 되네요.(^^) 저는 메릴랜드에 살고 있어요. 제 셀폰 번호는 240-620-**** 예요.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그럼 조심해서 오세요. 미진 올림

이렇게 일이 벌어진 것은 출국 전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물어오던 한 제자에게 무심코 방미 일정을 얘기한 게 빌미가 된 셈이었다.

이미진, 기억에 또렷한 제자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이얼을 누르자 반가운 음성이 흘렀다. 1980년 이대부고 2학년 2반 담임 반이었던 그를 내가 어제 있었던 일처럼, 너는 예뻤고, 글씨도 아담하고, 글도 잘 써서 교내 문예현상모집 산문부분 당선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재생하자 그의 기우는 곧 감탄으로 변했다.

벌써 27년 전 일이지만 나는 그때 72명(문과반이라 몰린 탓으로)이나 되는 학급 학생들을 여태 죄다 기억하고 있다. 몇 해 전 걔네 동기 입학 20주년 모임에 초대받아 가서 한 20분간 동기생 하나하나의 추억담, 아무개 녀석이 슬리퍼 신고 설악산에 오른 얘기까지 하자 제자들이 탁자를 치며 좋아했다.

나는 33년 교직에 머물다가 정년을 5년 남기고 퇴직했는데, 초기 10여 년 가르쳤던 학생들에 대한 추억들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이 또렷하다. 그런데 그 이후 학생들은 시간적으로는 가까운데 오히려 기억이 희미하다.

그것은 세월이 갈수록 내 순수성에 때가 묻었고,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특기적성교육 등 이런 것들이 극성을 부렸기에, 그런 일에 빠진 탓으로 정작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그들의 적성을 길러주고, 그들을 보담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처럼 예쁜 집

그는 메릴랜드 주 락빌(Rockville)에 살고 있다는데, 공교롭게도 박유종 선생이 사는 마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선뜻 그의 초대에 응했다. 나는 주말로, 바깥 한식집에서 만나기를 원했지만 그는 굳이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금요일, 약속시간 그의 집에 이르자 세 식구가 반갑게 맞았다. 하필이면 원자력 회사에 다니는 그의 남편 백주석씨가 한국 한전에 출장 중이라면서 그와 아들 준희, 딸 지혜가 우리말로 반갑게 맞았다. 그의 집은 조용한 주택가 3층집으로 그림처럼 예뻤다. 아침이면 사슴이 물을 달라고 찾아온다고 할 만큼 언저리는 온통 숲이었다.

식탁에는 고국에서 온 골동품 와룡선생을 위해 한국요리가 깨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온갖 나물이며 된장찌개, 구절판, 깻잎절임에 후식 인절미 등으로 별 볼 일 없는 구닥다리 선생을 마치 혼인잔치에 상객처럼 접대했다. 그리고는 그는 밥상머리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쉴 새 없이 풀어놓았다.

재학 시절 수학시험을 0점 받은 친구가 남학생에게 자기 점수가 공개될까봐 일부러 결석까지 했는데, 굳이 면도날 수학 선생님이 "걔 내일 나오거든 '빵점'이라고 전해 주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소문이 났다는 얘기, 졸업생 240명 가운데 미국에만 10여 명이 산다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소식을 전해 주기도 하고, 전화와 메일의 발달로 국내 친구 소식까지 마치 종달새가 노래하듯 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즉석에서 전화로 연결하여 졸업 후 처음으로 통화하는 기쁨도, 자기 고1때 담임의 근황을 묻기에 천안 근교에 산다고 했더니, 바로 고국에 전화를 연결하여 그동안 쌓인 사제의 회포를 풀기도 했다.

남편은 회사에 나가고, 자기는 교회일과 피아노 개인교습 일, 그리고 장애인 돌보는 봉사 일을 하면서, 취미가 요리인 까닭에 자주 이웃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다고 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과 같은 경쾌한 그의 이야기에 나도 20여 전으로 돌아가 그들의 젊은 광장에 파묻혔다.

▲ 떠나올 때 받은 쇼핑 백 속에 담긴 카드.
ⓒ 박도
다음날, 그에게 감사의 전화를 하자 "선생님을 만난 어제가 행복한 날이었다고, 이웃사람들도, 교회 친구들도, 모두 고국에서 고2 때 담임선생이 간밤에 다녀갔다고 하자 매우 부러워해서 정말 행복했다"고 다음에 올 때도 꼭 찾아달라고 거듭 거듭 간청했다.

"미진씨, 행복하게 사는 모습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행복이란 놈은 몹시 심술궂어서 자칫 놓치기 쉽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사시고, 지금 사는 방식대로 불우한 이웃과 장애인을 더욱 열심히 도우면 행복은 늘 그대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고국에서 온 강원 산골의 늙다리 옛 담임선생을 잊지 않고 초대해 줘서 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웠습니다. 나 또한 그날이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네 식구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곳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도 일일이 안부 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사랑, 눈을 감을 때까지 간직하겠습니다. 모두 안녕!!!

옛 담임 박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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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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