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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BC
TV 프로그램 기사와 모니터와 비평은 목적과 동기에 따라 'TV 안 세계'와 'TV 밖 세계'로 나눌 수 있다.

'TV 안 세계'는 볼만했거나 볼품없거나, 재미있다 또는 재미없다로, '잘 만들었네' 아니면 '못 만들었군' 등 감각적인 반응에서 다소 분명하게 갈린다. 'TV 밖 세계'는 사회나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 윤리나 심리나 소비나 정치나 문화 등의 영역에 얽혀드는 현상을 갑론을박의 필요와 주장으로 다룬다.

그러나 방송사는 시청률을 잣대로 삼고 시청자는 에누리가 없어서, 이를테면 '재미는 떨어지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좋았다'거나 '좀 못 만들었으나 교육적으로 필요했다'는 말은 거의 힘을 얻지 못한다.

특히 TV 드라마의 경우 볼 맛 안 나고 시청률이 바닥을 치는데도 'TV 밖 세계'를 통해 주목을 끌고 박수를 받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TV 드라마는 써도 먹는 보약이 아니다. 영양가는 높으나 맛없는 드라마는 'TV 안 세계' 무대에서 낙후된다. 그런 드라마를 'TV 밖 세계'에서 애써 살려놓아도 그 밥상에 수저 들고 적극 참여하는 이는 소수다.

해서 'TV 밖 세계'는 'TV 안 세계'의 경쟁을 통과한 프로그램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이때 'TV 밖 세계'는, 특히 평론가나 기자는 대체로 속 좁게 굴고 짜게 놀고 야박하게 째려본다. 시청자의 인기로 존재를 증명했으니, 칭찬하려면 더한 이유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 저건 바로 나"... 장준혁과 김삼순

MBC 월화드라마 <주몽>을 보자. 이 드라마는 TV 안에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고 TV 밖에서 '고구려를 살려냈다'는 역사적 명분까지 취했다. 하지만 연장 방영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세트와 스케일과 극 전개에서 '엉성한 사극'의 면모를 고루 드러낸 채 종영했다.

초기 <주몽>은 TV 안과 밖에서 모두 점수를 땄으나, 후기 <주몽>은 'TV 밖 세계'로까지 확장된 초기의 호감을 믿고 'TV 안 세계'의 결함을 너무 방치했다. 수목드라마 <궁S>의 경우는 초반부터 싸늘한 시청률에 TV 밖 눈길도 전작의 신선함 밑으로 맴돌아 줄곧 시들하다. <궁S>는 TV 안과 밖 어느 이야기로도 흡인력이 미미한 상태다.

이 점에서 같은 MBC의 주말드라마 <하얀거탑>은 종영된 후에도 여전히 돋보인다. <궁S>보다 훨씬 높은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했을 뿐 아니라,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주몽>처럼 오락가락하지 않고 시종일관 볼 맛났다. 한 마디로 'TV 안 세계'에서 일정한 격조를 지켰고 거의 극찬 속에서 막을 내렸다.

또한 <하얀거탑>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 태도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유혹을 입증했고, <대장금>이 보여준 '직업 드라마'의 가능성과 견줄 만한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TV 밖 세계'에서도 세간의 화제 수준을 꽤나 다른 지평으로 옮겨놓았다.

<하얀거탑>은 문제의 인물 장준혁의 드라마였다. 장준혁에 의한, 장준혁을 위한, 장준혁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시청자·네티즌·기자의 반응은 대략 이런 등급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1단계, 장준혁 그를 미워할 수 없다. 2단계, 장준혁 너를 이해한다. 3단계, 나도 장준혁이다. TV 드라마의 주인공에 대해 '좋아요'나 '멋져요'나 '훌륭해요'가 아니라 '결코 미워할 수 없다'고 보호하는 태도는 굴절된 감정 이입이자 복잡한 동일시다. <하얀거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주인공을 동경하거나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게' 하고 아예 자신도 장준혁과 마찬가지였노라 '고백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과 대조적인 캐릭터다. 살찐 몸매와 뚱한 성격의 김삼순은 여성(남성)에게 이상형 캐릭터는 아니다. 김삼순에 몰입하는 것은 비록 자신은 미친 듯이 다이어트에 연연해도 드라마의 그처럼 있는 그대로 자기를 긍정하는 발랄함과 가벼움과 솔직함이 보기 좋아서다.

반면 장준혁에 대한 몰입은 남성(여성)에게 각자 은폐하고 부인해온 자신의 속내를 슬쩍 꺼내놓고 '나도 그렇다' 혹은 '너는 더 불쌍해' 하는 심정에서 비롯된다. 시청자인 나는 안 해도 드라마의 너는 하고 있으니 속 시원한 캐릭터가 아니라, 보는 이의 자기 연민이 투영되어 더 보기 안쓰러운 미묘한 캐릭터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 끝나도 여전히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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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안 세계'에서 발휘된 <하얀거탑>의 솜씨는 'TV 밖 세계'로 나와서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거탑'과 장준혁은 모순에 찬 한국 사회를 여러 각도에서 돌아보는 적절한 빌미로 양껏 쓰였다.

마피아 시스템과 인맥 만들기 전쟁으로 '장준혁 현상'을 살피고(<한국일보>, 강준만), 황우석 박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한국적 시청 상황'이 가세했다고 읽고(<한겨레>, 남은주), '장준혁 공감 최도영 답답'의 연출을 아쉬워하며 현실의 악인들은 장준혁만한 실력과 프로의식조차 없다고 경계하고(<오마이뉴스>, 이종필), '개천의 용'조차 '따 시키는' 우리 사회의 한층 모질어진 '신분주의 장벽'을 살짝 환기시키는(<문화일보>, 방승배) 것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시선들조차 공통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직장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샐러리맨의 서글픈 자화상"(<헤럴드경제>, 서병기)이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조선일보>, 이지훈)이다.

다양한 사회문화적 해석에 문을 열어두고도 보편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킨 것은 <하얀거탑>이 'TV 안 세계'에서 이뤄낸 드문 성과에 빚지고 있다. 이는 원작, 각색, 연출, 배우, 제작, 자본 등에서 어느 한 편의 힘에 이끌려 끌어올린 성적이 아니라, 그 여러 요소들을 최적으로 조합하고 하나로 통합한 솜씨가 거둔 결실로 보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시청자는 '직업 드라마'와 열애 중

아쉬운 점은 <하얀거탑>을 빗대어 앞으로 어떤 콘셉트의 TV 드라마가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 촉진하는 리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혜린 기자(<스포츠월드>)가 쓴 <세계일보> 기사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소중하다.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직업이다. 성인들이 하루 10시간 이상을 몸담고 있는 직업에 대한 고찰이 이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시작됐다."

사견을 덧붙이면 근래에 대박이 났던 한국 TV 드라마 중에서 '직업 드라마'의 신호탄을 꼽으라면 <대장금>이 아닐까 싶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면 추억의 <수사반장> 정도가 있지 싶다.

이 기준은 예컨대 SBS의 <올인>에는 카지노의 딜러가 나오고 <내 이름은 김삼순>에는 파티셰(제과제빵 전문가)라는 직업이 등장하나 눈요기에 머물러서 '직업 드라마'의 면모를 담았다고 보지 않는 식이다.

<대장금> 요리사나 <하얀거탑> 의사들이 속한 정도의 직업 세계는 되어야 한다. 경찰 직업을 다루는 KBS 2TV <일단 뛰어>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소위 '국민 드라마' 소리를 듣는 최고 시청률은 당분간 <주몽> 같은 사극에서 나오거나 가끔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명랑 드라마가 차지하겠지만, 점점 더 많은 시청자들이 < CSI >처럼 잘 만든 '직업 드라마'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드라마#하얀거탑#프로그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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