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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뿐인 윤리강령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두산공업 주주총회에서 주주 대리인으로 참석한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들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문제를 제기하며 두산중공업 윤리강령과 윤리규칙을 인쇄한 현수막을 들고 질의하고 있다.
구호뿐인 윤리강령 16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두산공업 주주총회에서 주주 대리인으로 참석한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들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문제를 제기하며 두산중공업 윤리강령과 윤리규칙을 인쇄한 현수막을 들고 질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총수일가 경영복귀 성공 순간 한 대주주의 대리인이 박용성, 박용만씨 등 사내이사 후보에 대한 투표에서 찬성란에 표기를 하고 있다.
총수일가 경영복귀 성공 순간 한 대주주의 대리인이 박용성, 박용만씨 등 사내이사 후보에 대한 투표에서 찬성란에 표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의성실을 바탕으로, 법령을 준수한다는 두산중공업 윤리강령을 위반하면, 회사에서 징계해야 하지 않는가."(김석연 변호사)
"플래카드 내리세요. 뭐, 대단한 것이라고…."(이남두 두산중공업 사장)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빨리 치워!"(주주)
"놔둬!. 다 봐야지, 왜 그래."(주주)


16일 낮 12시40분께 서울 서초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 두산중공업 주주총회장. 행사장 뒤쪽에 있는 경제개혁연대쪽 주주 대리인의 발언과 함께 2장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두산중공업 윤리강령'과 '법원 판결문'이었다.

김석연 변호사는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로 물러난 사람들이 아무런 반성이나 개선의 시간도 없이, '책임경영' 운운하며 회사로 복귀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내려고 하자, 주총장은 순식간에 '집어치워', '그만해' 등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 회사쪽 진행요원이 '플래카드'를 강압적으로 끄집어 내리면서, 개혁연대쪽 주주 대리인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주총 진행을 맡은 이남두 두산중공업 사장은 "진행요원은 물러나라"면서 "장내가 소란한 관계로 정회를 선포한다"며 행사장을 나섰다. 주총 시작한 지 3시간 30분 만에 주총이 중단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들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법원 판결문을 인쇄한 현수막을 들고 질문하자 진행요원들이 뺏으려 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들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법원 판결문을 인쇄한 현수막을 들고 질문하자 진행요원들이 뺏으려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김상조 교수, 30분 동안 지배구조 후진성 질타

@BRI@두산중공업 주총은 애초 예상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박용성 전 회장이 지난달 사면복권되자마자 경영복귀를 선언하자, 경제개혁연대는 "두산 지배구조 개선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주총 참석을 공식 선언했다.

아침 9시께 이남두 사장은 인사말에서 "경제개혁연대가 참석해 감사하다"면서도 "주총의 질서유지를 위해 의장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곧이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한성대 교수)이 의사진행발언을 요청하자, 이 사장은 총회 보고를 마치고 질문권을 주겠다고 막아섰다.

회사쪽 주총 보고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넘겨받은 김 소장은 30여분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가며 두산 지배구조의 부당성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이번 주총에 참석하면서 몇 가지 섭섭한 것이 있다"면서 "경영상황에 대한 기본자료 요청에 대해 회사쪽에서 매우 불성실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박용성, 박용만 두 이사후보의 문제가 없었더라면 경제개혁연대가 주총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99년 두산 총수일가의 특혜성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과정, 2005년 형제의 난을 거치면서 밝혀진 두산그룹의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횡령, 분식회계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30억원의 횡령과 2800억원의 분식회계로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도 불구속으로 단 하루의 형도 살지 않았다"면서 "지배총수의 법률적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요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알려달라"고 물었다. 이에 이남두 사장은 "이사회 중심으로 모든 중요한 사안을 심의하고 토론하고 있다"면서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대주주 압력을 배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질문하는 가운데 한 주주가 피곤한 듯 얼굴을 부비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질문하는 가운데 한 주주가 피곤한 듯 얼굴을 부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관개정 수정안 첫 표결...이사 선임 안건 놓고 치열한 공방

오전 10시께, 본격적인 안건 심의에 들어가자 경제개혁연대와 회사쪽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우선 회사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보고가 끝난 후 정관개정 문제가 논란이 됐다.

경제개혁연대쪽 김석연 변호사는 "회사쪽의 정관 15, 16조의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서 '기타 경영상의 필요로'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제3자 배정을 명시하라는 상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거 두산이 특혜성 BW를 발행해 총수일가에게 헐값으로 지분이 넘어간 사례가 있다"면서 "이번 정관 변경을 통해 지배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사장은 "회사쪽에 이미 있는 정관 내용 가운데 주식 발행의 근거를 좀 더 명확히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쪽에선 '기타' 부분을 뺀 새로운 정관개정 수정동의안을 내놓고 표결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회사쪽 주주들은 "전형적인 시간끌기"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수정동의안은 거수표결로 부결됐고, 회사쪽 안대로 통과됐다.

이어 이날 주총의 핵심안건인 박용성, 박용만 등 지배주주를 포함한 이사선임 안건이 올라왔다. 곧 두산중공업 노동조합 관계자들의 발언신청이 이어졌다. 박종욱 두산중공업 노동조합 지회장은 "지난 2005년 11월 박용성 전 회장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투명경영 약속과 함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면서 "과연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부당노동행위를 해고됐던 노동자들은 아직 복직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불법을 저지른 경영진은 여전히 살아 남았다"면서 "법 앞에 모든 종업원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회사가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질문을 이어가자 한 주주가 일어나 빨리 끝내라며 삿대질을 하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질문을 이어가자 한 주주가 일어나 빨리 끝내라며 삿대질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본인 스스로 사퇴해야"- "여기가 청문회장이야?"

자신의 이름을 김창근이라고 밝힌 주주도 "박용성씨 등은 회사에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확정판결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경영에 들어온다는 것이 책임지는 태도인가"라며 "본인 스스로 이사회에 빠지는 것이 옳다"고 충고했다.

김상조 소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는 "박용성 후보에 대한 반대토론을 하겠다"면서 "일문일답 형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사장은 "질의를 다 받고 (답변)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박용성, 박용만 후보가 대주주라고 하지만 두산중공업 주식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맞나"라고 되물었다.

이 사장이 다시 "말씀 계속하라"고 말하자, 총회장이 순식간에 일부 주주들의 맞고함이 이어졌다. '주주가 묻는데, 의장이 답변해야 하지, 뭐하나', '지금 장난하나, 여기가 무슨 청문회장인가'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이 사장이 "일문일답은 받지 않겠다"고 한 후에도 10여분에 걸쳐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경제개혁연대쪽은 최대한 묶어서 질문을 하기로 하고, 박용성 회장 등의 이사선임 반대를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김 소장은 "두산중공업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박용성 회장은 대주주도, 소액주주도, 주주도 아니다"면서 "전체 그룹 자본총액의 0.2% 주식, 박씨 일가 모두가 합해도 3.24%를 가지고 어떻게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한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박 전 회장이 대주주로서 지급보증을 설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박 전 회장 스스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때문에 7월까지는 국내에 있기도 어렵다고 했다면서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을 사람이 어떻게 이사로서 성실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또 박용만 전 부회장에 대해선 과거 이사회의 참석률이 10%도 채 되지 않는 점을 들고 나왔다. 이어 "지배주주들의 경우 회사의 주요 현안이 걸린 이사회에 고의적으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법원에서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경향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사장은 "책임경영을 위해 이사들이 이사회에 최대한 참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반대토론이 이어지자, 일부 기관투자자와 주주들은 "주총장에서 마치 대학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다"면서 "개혁연대의 주장은 '과유불급'"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주는 "더 이상의 토론은 무의미하며, 빨리 표결을 진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7시간 만에 끝난 주총, 총수일가 경영 복귀했지만...

주주들이 박용성, 박용만씨 등 사내이사 후보에 대한 투표를 하고 있다.
주주들이 박용성, 박용만씨 등 사내이사 후보에 대한 투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밖에 경제개혁연대 소속 대리인들은 박용성 전 회장 이외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서도 이사선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영희 대리인을 비롯해, 장영화, 최한수 대리인 등 은 두산산업개발의 분식회계를 주도했던 이성희 두산중공업 부사장에 대해 "오직 총수에게 충성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잘못된 보상제도를 심어준다"고 비판했다.

박정규 변호사의 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에 대해서도, 독립성이 의심스럽다면서 반대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박 변호사의 경우 박용성 전 회장의 형사사건 변호를 맡았던 김앤장 소속의 변호사"라면서 "오너의 소송을 맡았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독립성이 요구되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자리로 어떻게 올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남두 사장은 "이성희 후보의 경우 이미 작년에 특별 사면됐고, 그동안 회사의 재무담당으로서 기업가치를 올린 인물"이라며 "박정규 변호사와 김앤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두산중공업은 (김앤장과)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오후 2시께, 이사선임을 둘러싼 찬반토론의 진행에 불만을 품은 일부 주주들이 잇달아 표결요청발언이 이어졌고, 결국 찬반 표결에 부쳐졌다. 표결 결과는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나오면서 회사쪽 이사 선임안이 통과됐다.

이후 경제개혁연대쪽은 나머지 박정규 변호사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대해선 별도의 표결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하자, 회사쪽 주주들은 "잘했어"라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후 안건들은 곧바로 박수로 가결되면서, 7시간에 걸친 두산 총수일가의 경영복귀 주총은 막을 내렸다.

지난 98년 참여연대가 제일은행 주총장에서 6시간에 걸쳐 소액주주 입장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한 대기업 주총 현장에서 무려 7시간 동안 공방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산 입장에선 박씨 일가의 경영복귀가 이뤄지기 했지만, 다시 한번 재벌 총수 중심의 왜곡된 기업 내부구조와 지배체제를 그대로 드러내 향후 이들 총수일가의 행보도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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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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