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웃다가, 울다가, 시베리아로... 19일 기자회견에서 탈당을 선언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손 전 지사는 밝은 모습으로 회견장에 들어왔다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기자회견 시작부터 회견장을 떠날 때까지 손 전 지사의 다양한 얼굴 표정(윗줄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의외다. 여론이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

몇몇 언론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에 대한 국민 평가를 묻는 조사였다. 결과는 이랬다.

<국민일보> 잘못했다 35.5% - 잘했다 31.9% - 잘 모르겠다 32.6%
<조선일보> 반대한다 34.9% - 찬성한다 30.1% - 모르겠다·무응답 35%
< SBS > 잘못한 선택 39.6% - 잘한 선택 41.9%
<중앙일보> 잘못한 일 46.9% - 잘한 일 33.2% - 모름·무응답 19.9%


언론은 "철새행각" - 여론은 "글쎄..."

편차는 있지만 추세는 비슷하다. 찬성과 반대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예상 밖의 결과다.

비교대상이 있다. 언론의 평가다. 세세하게 나눠 짚을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언론이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배신과 배반, '철새'와 낡은 정치라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동원하며 비판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손 전 지사를 도매금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다. 국민 여론에 어떤 뜻이 숨어있는 걸까? 단서가 있다.

영남은 탈당을 비판한 반면 호남과 충청은 호평했다. 호남은 탈당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서너 배 많았다. 충청에서도 10%포인트 이상 찬성 여론이 많은 것으로 나왔다.

주지의 사실이 있다. 범여권이 두 지역을 통합의 거점으로 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두 지역이 반한나라당 투표성향을 보였다는 것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런 두 지역이 손 전 지사의 탈당에 찬성을 표하고 '잘한 일'이라고 호평을 하고 나섰다.

조심스럽게 추론을 할 수 있다.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이 옳건 그르건, 그것이 한나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 것이라고 기대하는 심리가 여론조사 결과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손학규 탈당에 관대한 호남과 충청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있다. SBS의 여론조사 결과다.

국민의 41.9%가 그의 탈당에 대해 '잘한 선택'이라고 응답하면서도, 그의 탈당 명분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51.1%(공감한다는 33.9%)였다. 국민이 당위와 전략, 명분과 현실을 따로 보고 있음을 알려주는 조사 결과다.

이런 추론은 다른 전망을 낳는다. 살 길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손 전 지사 스스로 탈당을 "죽음의 길"로 묘사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연유는 이렇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선언은 포기 선언과 같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후원과 지지를 포기한다는 선언과 진배없다. 따라서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의 여론은 변수가 되지 못한다.

관건은 반한나라당 세력의 반응이다. 최악의 상황은 반한나라당 세력조차 그의 '철새 행각'을 곱지 않게 보는 경우다. 이러면 "죽음의 길", 그것도 '얼어죽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추세까지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 조사결과 그의 지지율은 2.3%포인트 올랐다. 지난 3일 조사에선 5.9%였지만 어제 조사에선 8.5%였다

<국민일보> 조사에선 더 뛰었다. 지난달 21일 조사에선 4.4%였지만 어제는 9.6%로 두배 이상 뛴 것으로 나왔다.

밑지기는커녕 오히려 남는 장사를 했다. 그것도 '폭리' 수준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

그래도 속단은 금물이다. 하루 이틀 장사하고 말 게 아니다. 하루 매상에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다. 탈당 이벤트에 따른 반짝 효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남과 충청에서 비교적 후한 평가가 나왔다고 해서 손 전 지사를 범여권의 '메시아'로 여긴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현재로선 손 전 지사의 탈당이 한나라당 견제심리와 맞아떨어졌다고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

탈당으로 마의 '5%'대 넘어... 관건은 '반(反)한층'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조사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하지만 최대 30%에 달하는 '입장 유보' 층이 어떤 태도를 정할지가 미지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탈당 비판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추상적인 가능성이 아니다. 수도권 민심은 비판적이다. <국민일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선 탈당에 부정적인 견해가 44.2%로 '잘했다'는 응답 30.5%보다 많았다. 인천의 경우는 더 심하다. 42.9% 대 22.8%였다. <조선일보> 조사결과도 마찬가지다. 탈당에 반대하는 의견이 10~20%포인트 더 높게 나왔다.

수도권 민심이 풍향계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역공에 언론의 '상식적인' 비판이 더해질 경우 수도권에서 부정적인 민심이 세를 확대하고 이것이 다른 지역과 입장 유보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손 전 지사가 행보를 빨리 가져가면서 국민의 '태도'를 '관심'으로 돌려야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동조 탈당 가능성이 없다고 못박은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다. 두 신문의 진단대로 동조 탈당이 없을 경우 손 전 지사의 탈당 이벤트는 급속히 관심 밖으로 밀릴 수 있다.

손 전 지사가 동조 탈당과는 무관하게 탈당 이후 행보를 가속화하면 될 법도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손 전 지사는 어제 탈당을 선언하면서 한나라당과 여권을 싸잡아 비난했다. 당분간은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혈혈단신' 손학규, 탈당 이후가 문제

이게 족쇄가 될 수 있다. 배신과 철새의 이미지를 최대한 걷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독자적인 길을 가려면 세를 모아야 하고 조직을 꾸려야 하며 돈을 그러모아야 한다. 아무래도 무대 위보다는 무대 뒤에서 움직일 일이 더 많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안에서 '보수 속의 개혁' 노선을 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 환경에 놓이게 된다. 손 전 지사가 그간 쏟아낸 말과 정책은 차별성이 있었다.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당원이, 한나라당 안에서, 한나라당 노선과는 다른 말을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탈당 이후는 다르다. 한나라당과 다를 뿐 아니라 여권과도 다른 정책과 노선을 내놔야 한다. 탈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독자노선의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업은 필수다. 필수일 뿐만 아니라 절박하기까지 하다.

40대 연령층의 동향을 보면 그렇다. <조선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40대의 탈당 찬반 입장은 아주 팽팽하다. 찬성 32.7%, 반대 37.7%였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이후'를 주시하겠다는 뜻이 강하게 깔려있다.

40대가 누구인가? 정당 충성도가 낮고, 정책 민감도가 높은 층이다. 이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론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층이다. 이런 40대의 요구에 기민하게 부응하지 못하면, 그래서 40대가 수도권 민심과 결합하면 손 전 지사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손 전 지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속도전을 벌이지 않으면 그의 정치적 생사가 조기에 판명날 수도 있다.

#손학규#탈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