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라크 전쟁의 시작 2003년 3월 20일 컬프만에 있던 미군함에서 이라크를 향해 첫번째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라크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라크 전쟁의 시작 2003년 3월 20일 컬프만에 있던 미군함에서 이라크를 향해 첫번째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라크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AP/연합뉴스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 30분 미군은 이라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미군은 방독면을 꼭 챙겼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대량살상무기는커녕 재래식 포탄조차 변변히 날리지 못했다.

미군은 4월 10일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4월 14일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를 장악했다. 불과 28일 만에 사실상 끝난 이라크 전쟁은 파죽지세 그 자체였다. 미군 사망자는 117명에 불과했다.

그 해 5월 1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의 종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소형 전투기 부조종사 석에 직접 탑승해 마침 걸프 해역에서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착륙했다. TV로 생중계되는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는 해방됐다"고 선언했다.

이라크 전쟁에 미군이 붙인 작전명도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였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지난 19일(현지시각)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에서 이제 '승리'라는 말은 사라졌으며, 대신 미국민들에게 좀 더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 짐을 싸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짧은 기간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결국 미국 안보이익에 재앙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1240억 달러의 군사비 지출 승인을 내년 9월까지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와 연계시키는 법안을 고려중이다. 부시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정치적 타격은 크다. 지난 19일 미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들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도는 32%에 불과하다.

부시 대통령은 2만1500명의 미군을 증파할 계획이다. 미군 증파는 조금만 힘을 더 보태면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바로 철군하면 지난 1989년 소련군이 철수한 뒤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렸던 아프가니스탄 꼴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전쟁을 하자니 승리의 희망은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나오자니 패배로 기록되니 부시 대통령은 진퇴양난이다. 중동에 '친미 민주주의 국가'를 세워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는 애초 목표는 사라진지 오래다.

예상이 들어맞지 않은 이상한 전쟁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이라크 전쟁은 처음 몇 달 간을 제외하고 예상이 거의 들어맞지 않은 이상한 전쟁이다.

부시 행정부는 독재자를 축출한 미군을 이라크 국민들이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은 이라크 안정화에 40만~50만 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직업군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15만 명만 남겼다. 이 때문에 초기 치안 안정화와 경제 재건에 실패했다.

미국 ABC 방송과 USA투데이, 영국 BBC 방송 등이 올 2월 25일부터 3월 5일 사이에 이라크인 21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생활이 잘돼가고 있다고 생각한 비율은 39%, 전쟁 전에 비해 현재 상태가 낫다고 대답한 비율은 16%, 미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사실상 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6만 명에 이른다. 유엔고등난민판무관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전쟁 이후 이라크를 떠난 난민은 200만 명이다. 또 이라크 안에서 집을 잃고 떠돌이가 된 사람도 170만 명가량이다.

지난해 12월 30일 후세인의 처형은 이라크 전쟁의 마무리가 아니라 시아파에 의한 보복으로 비춰져 종파 갈등만 더 부채질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제까지 대 테러 전쟁 비용으로 5100억 달러를 썼는데 이 가운데 75%가 이라크 전쟁 비용이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전쟁 비용으로 매달 100억 달러씩 쓰고 있다.

지난 2003년 3월 20일~24일 이라크 전쟁 초기 CBS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들의 66%는 이 전쟁에서 미군 사망자가 1000명 미만일 것으로 생각했다. 16%는 1000~5000명, 6%는 그 이상일 것으로 봤다. 그런데 지난 18일 현재 미군 사망자 숫자는 3216명이다.

전쟁은 미국이, 실익은 이란이 챙겨

미 공화당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해 12년 만에 의회권력을 민주당에게 넘겨줬다. 부시 대통령 자신의 지지율은 30% 초반이다. 이대로 가면 미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들.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들. ⓒ AP=연합뉴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 커버 사진으로 미 보수진영의 우상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합성 사진을 실었다. 무모한 전쟁을 밀어붙였던 보수 진영이 그만큼 사면초가에 처했다는 말이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공화당의 '공'자만 들먹거려도 지지율이 떨어질 정도"라는 말까지 있다.

이 와중에 실속을 챙긴 것은 부시가 '악의 축'으로 불렀던 이란이었다.

이란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앙숙이었던 후세인을 제거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집중하는 동안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통해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라크 인구 2600만 명 가운데 65%가 시아파인데 이란 역시 시아파 국가다. 부시 대통령이 쉽사리 이라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란이 그 빈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서다.

부시 행정부에 가장 뼈아픈 실책은 대량살상무기도 없던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북핵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실제 임박한 위협이었던 북핵 문제 해결은 중국에 아웃 소싱 해 버렸고 결국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국제적 의견을 무시했고 결국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AFP통신은 "4년간의 재앙스러운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전 세계적 위상을 넝마로 만들어버렸다"면서 "이제야 부시 대통령은 남아있는 적인 북한·시리아·이란에게 좀 더 부드러운 접근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던 <중앙일보>는 20일 '이라크 전 4년의 교훈'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부시 대통령이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의 충격 속에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하고, 개전 명령을 내렸다. 유엔 안보리의 동의 절차도 생략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은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였지 상대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소프트파워는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보다는 외교력이 우선이라는 점은 이라크전 4년의 가장 큰 교훈이다. 외교의 실패에 따른 무력행사도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또 다른 교훈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적극 협상에 나서고, 이란·시리아와도 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 4년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숨쉬기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