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일 탈당을 공식 선언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일 오전 국립현충원을 참배한뒤 4.19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19일 탈당을 공식 선언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일 오전 국립현충원을 참배한뒤 4.19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손학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의 탈당 선언이 있은 이후 범여권은 적극적인 환영과 기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동참하기 위한 놀랍고도 어려운 결단을 존중하며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해 큰 길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역사적 책임을 다해나갈 것을 당부한다."(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

"손 전 지사가 종국에는 중도개혁정당이라는 '빅텐트'로 와야한다."(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

"손 전 지사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통합신당추진모임 양형일 대변인)

"현명하고 용기있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한다."(민생정치모임 정성호 대변인)


범여권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왜 안 그러하겠는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통합신당 추진이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범여권의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한 후보 선출이 흥행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범여권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소식일 것이다.

정당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 손학규 탈당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범여권이 기쁜 표정으로 만세만 부르고 있으면 되는 일인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손익계산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그래도 정치개혁을 말해왔던 정치세력이라면 최소한 표정관리는 해야하는 것 아닐까.

신당을 만들겠다는 범여권 세력이 기쁨에 젖어있는 사이, 노무현 대통령이 일갈하고 나섰다. "보따리장수같이 정치를 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 "선거를 앞두고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특정 주자에 대한 비판을 하고 나서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말 자체는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다. 신당을 말했던 사람들이 정작 하나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범여권의 정치인들이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무조건 환영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정당민주주의의 룰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수구성'을 문제삼으려 했다면 진작에 했어야 했다. 그가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를 지냈던 지난 14년 동안 한나라당의 보수적 정체성의 문제는 훨씬 심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를 이유로 손 전 지사가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접한 바가 없었다.

지난 14년의 세월 동안은 한나라당의 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손 전 지사가, 왜 하필이면 대선후보 경선의 윤곽이 드러난 지금에 와서야 탈당을 선택하는 행동에 나선 것일까. 아무리 선의로 해석을 하려 해도, 결국 경선에 불리해지니까 탈당을 하게 된 것 아니냐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필자는 어제(19일) 손 전 지사의 탈당 가능성이 점쳐지던 상황에서, 그가 탈당을 하려면 대선불출마 선언을 함께 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그래야 범여권의 대선후보 자리 욕심을 위한 '때늦은 탈당'이 아닌, 새로운 정치질서의 밀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손 전 지사는 물론 그의 주변 어디에서도 그같은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손 전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말을 되풀이 했지만. 그가 말한 기득권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공허하기만 했다. 현재로서는, 그의 목표가 범여권의 대선후보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가장 큰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을 벌이다가, 그것이 여의치않자 정반대 쪽에 있는 정치세력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나선 모습. 이 같은 모습을 부정하지 못하고 환영하고 있는 범여권 정치세력의 모습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정파적 이해관계 이전에 정당정치의 원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통합신당 하나면 모든 것이 용서되나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씨는 4·25 재보선을 앞두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였던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예비후보등록 절차를 마쳤다. 무소속으로 등록을 마친 김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씨는 4·25 재보선을 앞두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였던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예비후보등록 절차를 마쳤다. 무소속으로 등록을 마친 김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짚자. 최근 김홍업씨의 무안·신안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 범여권 세력들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에 대해서이다.

김홍업씨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대통령 재임시절에 기업체들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 실형까지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법적으로야 사면복권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그렇게 빨리 소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치의 윤리가 무엇인지 아는 정치인들이라면, 그의 출마가 아직 너무 이르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서는 김홍업 단일후보를 염두에 둔 연합공천을 거론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김홍업씨 전략공천을 거론하고 있다. 전남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부적격자로 출마를 반대하고 있는 인사가 범여권 대통합의 연결고리로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 김홍업씨 출마에 대한 범여권 세력들의 태도를 보면 통합신당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다 용서된다는 식으로 비친다. 과연 그러한가. 무엇을 위한 통합신당인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지 못한 채 구태정치를 떠받드는 신당이라면, 그런 신당은 만들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범여권 세력이 보여주고 있는 작금의 모습을 보면 신당 하나에 목을 맨 채 다른 문제는 접어두기로 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범여권 세력은 신당을 말하기 이전에 무엇을 위한 신당인지부터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손학규#범여권#탈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