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이면 누구나 군대를 가야 한다"는 말은 아주 쉽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게다가 이 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매우 다양한 이유로 현역병 이외의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흔하게는 공익근무요원부터 올림픽 메달리스트, 의대생들의 공중보건의 제도라던지 말이다.
하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아니고, 의대생도 아니며, 신체검사에서 4급 이하 판정을 받지도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통해 공식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역시나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이 방법을 택하기엔, 부담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나 징병제 폐지 등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논할 거리가 많지만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군대의 장점에 대해서다.
군대 안 가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면
그렇다고 나를 '군대 마니아' 내지 '전쟁 신봉자' 쯤으로 결론내리면 곤란하다. 나는 누구보다 전쟁을 혐오하고 한국 사병의 손에 들린 총부리의 방향에 마음 아파한다. 군대의 장점이라고 이야기한 건 사병된 입장에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때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보편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군대란 조직은 매우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리의 온상이다. 나는 사병 생활을 대도시의 한 복판에 위치한 비 전투부대에서 운전병으로, 그것도 승용차만을 운전하는 소대에 배치받았다. 속된말로 '땡 보직'이다. 나는 보병출신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놀림을 받으며 생활했다.
입대 전, 대학교 안에서 여러 학생활동 등으로 대인관계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입대 후에도 그렇게 고참들과 생활을 잘 할 수 있으려니 생각했고 잘 해낼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등병은 그렇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생활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지옥과도 같았던, 참담한 이등병 생활과 일병의 절반을 끝내고 나자 그때서야 숨통이 약간 트이면서 '나'란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여러 생각을 할 시간이 생겼다. 군대에서 주 업무가 힘들면 내무실 생활이 편하고, 업무가 편하면 내무생활이 힘들다는 사실을 2년2개월간 몸소 체험하며 제대했다.
그 뒤 복학 이후 학내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여러 학생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저렇게 자신있게 행동하지도 못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있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 젊은이들에게는 다양한 격려와-물론 비난도 함께-이목이 집중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그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개인적 경험을 크게 세 부분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험 하나] 별의별 사람들, 군대니까 만나본다
나는 대인관계가 좋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짬밥이 안될 때에는 개성 표출이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의 개성 역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초중고 시절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나며 비슷한 친구들과 사귀다가 대학에 들어와 아주 약간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군대에서는? 이건 그야말로 팔도 각지에서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모인다.
다리에 커다란 문신을 새긴 사람, 호스트바에서 일하다 온 사람, 전문대를 다니다 온 사람, 명문대를 다니다 온 사람, 개그맨 지망생, 이벤트 사회자…. 일생을 살며 어떤 사회생활을 하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위로 100명, 제대할 때 아래로 100명. 2년여의 시간 동안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군대에서는 만날 수 있다. 물론 대부분 제대 후 연락을 끊고 살지만 2년간 그들과 생활하며 그들에게서 들은 삶의 이야기와 개개인의 성격 등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후의 생활에 크고 작게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경험 둘] 여기도 아예 못 게길 곳은 아니구나
신기하게도 필자가 입대한 후 적당히 적응한 후 생활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기무대 에서 나로 추정되는 사병을 관심사병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제대할 무렵이 되어서야 소속중대의 행정보급관이 개인적으로 불러내 "네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저런 활동들 해서 군생활 잘 할까 많이 걱정했는데 별 문제없이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서 '내가 관심사병이긴 한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후에 생각해 보니 내 신상에 대해 그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간부들이 상병시절에 있었던 병사-간부간 간담회 자리에서 필자에게 중대 대표로 발제문을 작성하고 직접 발제까지 지시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발제 내용은 "간부들이 사병들간의 관계에 간섭을 많이 하는데, 내가 보기엔 간부들 역시 사병들과 마찬가지 문제들이 많은 것 같다"는 식의, 어찌 보면 발칙한 내용이었다. 웬일인지 중대장님은 발제를 수락했고 대대장을 비롯해 전 중대장 및 사병과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제를 마친 후 토론까지는 아니었지만 대대장과 몇 마디 진지한 이야기도 나눴다.
필자의 발제가 무슨 엄청난 반향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군대가 그렇게 꽉 막히기만 한 조직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단지 지레 겁먹고 간부에게 지적도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경험 셋] 말도 안 되는 규칙, 직접 개혁해보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내무생활에는 여러 원칙들이 존재하며 이것은 그 내무실 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중대임에도 불구하고 내무실에 따라 규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흔히 고참이 되어서도 이등병 시절 경험한 불합리한 원칙들(일어나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 양말 신을 때 엉덩이를 바닥에 대면 안 된다, 걸레를 짤 때에는 물방울이 단 한 방울도 짜지지 않을 때까지 짜야만 한다, 내무실 내에서는 편지 읽으면 안 된다 등)에 대해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나 여러 관행들을 없애는 것은 고참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병은 누구나 진급을 하고 누구나 고참이 되므로, 내무실 안에 그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기회는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고 변화를 지시할 위치에 올라 전 내무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아주 개혁적인! 변화를 가져온 적이 있으며 이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우쭐한' 기억 중의 하나다.
죽은 시간으로 보내기엔 2년, 너무 아깝다
물론 이런 말 몇 마디 듣는다고 갑자기 군대가 마구 가고 싶어질 리 만무하겠지만(그래서도 곤란하고), 또한 군대를 꼭 가야만 한다고 종용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군생활이라면,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적었다. '2년 동안 죽었다 셈 치고 살다 나오자'는 생각을 가지고 군 생활을 한다면, 그 억압적인 생활에 자신의 몸도 생각도 물들고 말게 된다. 남게 되는 건 악이고, 면제된 자들에 대한 고까운 시선뿐이다.
어차피 군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다. 사회는 변하기 마련이며 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몫이며 권리다. 막상 군생활을 해보니 체질적으로 너무 맞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겠으나, 그게 아닌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과 권리를 찾아보자. 군생활이 아주 조금은 보람차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