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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묵은 사연은 아직 봄볕에 그대로인데 산수유 꽃은 살며시 봄기운만 뿌려놓고 사라지려 하나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산수유 꽃망울을 본 것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수원에서 음력 정월에 산수유가 피어나기는 드문 일이다.
봄은 저렇게 고비를 넘기며 오는 모양이다. 설레는 봄날, 더욱 소중하게 맞이하라고….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산수유는 그 꽃이 피기 전에 열매가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꽃이 아무리 잎을 만나고 싶어도, 열매가 아무리 꽃을 그리워하여도 결국은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불합리한 공존은 잠시 뿐….
오래된 아파트는 사계절 모두 자연과 함께 한다. 이 아파트가 요즘 재건축후보지에 올랐다며 부녀회를 들썩인다. 하지만 나는 봄꽃과 무성한 나무들과 풍성한 낙엽의 오래된 혜택이 더 좋다.
대형마트는 한겨울에도 봄기운이지만 서민들의 장터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봄! 햇볕 아래서는 뼈가 녹을 듯이 따뜻하지만 응달에서는 겨울옷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하다. 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봄이지만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추운 겨울일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
갈수록 삶의 터전이 좁아지는 서민들에게도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다. 부자와 빈자는 꽃과 열매처럼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자연의 법칙 아래 계절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라 하겠지만, 같은 땅 위에서 같은 계절 속에서 함께 숨쉬는 사람들도 같은 햇살을 누리는 편차가 갈수록 심해진다.
정월한파 눈보라에도 노란 산수유 꽃이 봄을 피우듯… 떠오르는 태양이여!
그대가 비추는 모든 땅과 물과 공기를 만인에 평등하게 내려주소서!
모진 고난과 힘겨움을 양분삼아 더욱 튼실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힘겹게 핀 봄꽃이 서럽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