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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의 소박한 풍경.
개심사의 소박한 풍경. ⓒ 김연옥

봄날을 재촉하는 듯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24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충남 서산 나들이를 했다. 통영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건선 선생님,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지도하는 조수미씨와 창원에 살고 있는 김동혁씨 가족이 그날 일행이었다. 그리고 먼 길에도 일곱 살, 네 살 꼬마들이 징징거리지도 않고 함께한 일이 또 다른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여행이었다.

우리 일행이 마산을 출발한 시간은 아침 6시 45분께. 그날 빗길에 여행을 떠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비가 내리면서 오히려 덤으로 맛보게 된 멋진 구름의 풍경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호남고속도로 주암휴게소로 가는 길에는 산과 마을로 낮게 내려앉은 구름들로 인해 마치 우리가 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것 같은 신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휴게소를 지나자 잿빛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가로지르며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갔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어떤 질서에 의해 움직이기에 저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천주교인들을 처형한 해미읍성과 호야나무

서산 해미읍성은 조선 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한다.
서산 해미읍성은 조선 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한다. ⓒ 김연옥

낮 12시 30분이 넘어서야 조선 시대에 축성된 읍성 가운데 가장 그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는 해미읍성(사적 제116호,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도착했다.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왜구에 대한 방비책으로 조선 태종 17년(1417)부터 세종 3년(1421) 사이에 축성된 해미읍성은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 후에 호서좌영으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적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게 성 둘레에 탱자나무를 심어 탱자성이라 부르기도 했던 해미읍성(海美邑城)의 첫인상은 성벽 높이 4.9m, 성곽 길이 1800m나 되는 큰 규모의 읍성이라는 거였다. 우리는 그 규모를 몸으로 느끼고 싶어 그곳에 있는 세 개의 문들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시대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진남루 위로 올라가 성벽을 따라 걸어 보기도 했다.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의 회화나무. 고종 3년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그 나무에 철사로 매달려 잔혹하게 처형을 당했다.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의 회화나무. 고종 3년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그 나무에 철사로 매달려 잔혹하게 처형을 당했다. ⓒ 김연옥

해미읍성은 고종 3년(1866)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읍성 안에 들어서면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한(恨)을 품은 나무라서 그런지 매우 처연하면서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당시 그 나무에 천주교인들을 철사로 매달아 잔혹하게 죽인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지금도 그 흔적으로 철사가 박혀 있다.

우리는 아직도 복원 공사가 계속 진행 중인 해미읍성을 뒤로 하고 자동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이미 점심 먹을 시간이 넘었지만 김해에 사는 조수미씨가 표고버섯, 당근, 치자단무지 등을 넣어 정성껏 만들어 온 주먹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못내 안타까웠던 백제의 미소

'백제의 미소'로 통하는 서산마애삼존불상. 인간미 넘치는 부드러운 미소로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러 가는 내 가슴은 자꾸 콩닥콩닥 뛰었다. 고풍저수지를 지나 가야산의 용현계곡을 따라 들어가자 한쪽 벼랑에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구슬을 손에 쥐고 있는 보살과 반가상의 미륵보살이 협시로 새겨져 있었다.

'백제의 미소'로 통하는 서산마애삼존불상.
'백제의 미소'로 통하는 서산마애삼존불상. ⓒ 김연옥

그러나 보호각이 설치되어 있는데다 고정 상태의 조명이 내리비추고 있어 햇빛의 흐름에 따라 마애불의 미소가 달리 느껴지는 감동을 맛볼 수는 없었다. 주위 환경, 빛과 온도에 따라 몸 색깔이 바뀌는 카멜레온처럼 그 신비한 미소의 변화를 무척이나 기대했는데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당당한 위엄이 서려 있는 본존불의 미소에서 힘든 중생을 안아 주는 듯한 넉넉함이 느껴지고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상에서는 세련된 조형 감각도 돋보여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서산마애삼존불에 대해 통영여고 김건선 선생은 "그곳 위치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이라 당시 중국과의 활발한 문화 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서산 곳곳에는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등 문화 유적지의 훼손을 막기 위해 가야산 송전철탑 공사와 순환도로 건설 계획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선조가 물려 준 문화유산 하나 제대로 지켜 나갈 줄 모르는 우리가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보원사의 옛터를 거쳐 자연스러움이 돋보인 개심사까지

폐사가 된 보원사의 옛터에는 왠지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보원사지오층석탑이 보인다.
폐사가 된 보원사의 옛터에는 왠지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보원사지오층석탑이 보인다. ⓒ 김연옥

서산 마애불에서 자동차로 5분 남짓 걸리는 위치에 보원사지(사적 제316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가 있다. 백제 때 세워진 보원사에 대한 역사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남아 있는 유물들을 보면 상당히 큰 규모의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먼저 위로 갈수록 폭이 조금씩 좁아지면서 하늘로 상승하는 느낌을 주는 보원사지 당간지주(普願寺址幢竿支柱, 보물 제103호)가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다슬기가 살고 있던 맑은 개울을 건너자 고려 초기의 오층석탑(보물 제104호)이 점차 그 윤곽을 드러냈다.

그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탑 꼭대기에 찰주가 남아 있고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아래 기단에 새겨진 사자상들을 눈여겨보았는데, 비록 선명하지는 않아도 사자상 하나하나마다 몸짓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 ⓒ 김연옥

보원사지는 2017년까지 발굴 조사가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둔 곳이 많다. 그렇지만 보원사의 옛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길을 잘 만들어 두어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보원사의 옛터에는 신라 말과 고려 초의 고승인 법인국사 탄문(坦文)의 사리를 모신 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과 보승탑비(보물 제106호)도 있다. 법인국사의 부도와 비는 모두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거대하고 웅장해진 반면 예술적 가치와 정교한 기법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소박한 맛이 있어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보원사지석조에 대한 김건선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
보원사지석조에 대한 김건선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 ⓒ 김연옥

우리는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인 보원사지 석조(普願寺址石槽, 보물 제102호)를 구경했다. 화강석의 통돌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의 그 석조 크기에서도 보원사의 규모를 또 한번 짐작할 수 있었다.

서산 개심사의 운치 있는 풍경.
서산 개심사의 운치 있는 풍경. ⓒ 김연옥

마애삼존불 부근에 있는 음식점에 들러 된장찌개로 맛있는 점심을 하고 우리는 개심사(開心寺,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를 향했다. 누군가가 백제 의자왕 때 혜감국사가 세운 개심사의 인상을 내게 말해 보라 하면 운치 있는 풍경과 자연스러움 그대로 건물을 지어 품격이 있으면서도 소탈한 멋을 들고 싶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린 개심사의 심검당.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린 개심사의 심검당. ⓒ 김연옥

ⓒ 김연옥

나는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린 해탈문 기둥뿐만 아니라 심검당(尋劍堂, 문화재자료 제358호), 종루의 기둥과 해우소(解憂所)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개심사의 넉넉함이 참 좋았다.

수화(手話) 햇빛에게!
어디든지 낯익은 곳에
햇빛 많은 역에 닿으리라.
장애로 남은 발목으로 풀들은
절룩거리며 맴돈다.

그새 황사바람이 지나갔는지
쌀겨처럼 보얗게 시간을 뒤집어썼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들린다.
시멘트 벽에 기대어 근육위축증으로
몸을 뒤트는 봄풀들의
관절 풀리는 소리.

(노향림의 '낯익은 봄' 일부)


서산 나들이를 끝내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벌써 깊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3m 앞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안개를 뚫고 달려가기도 했다. 한동안 내 머릿속에는 개심사에서 처음 본 백동백이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화려한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휘파람 소리처럼 경쾌하게 들리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경남 마산에서 충남 서산까지 먼길을 혼자 운전하고 우리 역사 이야기도 멋들어지게 곁들여 준 통영여고 김건선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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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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