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이시여! 요한의 머리를 베어 제게 주옵소서!"
순간 연회장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헤롯 안티파스를 향했다. 헤롯은 커다란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순간적인 현기증을 느꼈다.
이날은 이 지역을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왕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이었다. 연회장은 조금 전까지 질펀한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헤롯의 의붓딸 살로메의 춤은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현란한 춤사위가 보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정신을 송두리째 빼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작심이라도 하고 나온 것이었을까. 그녀는 매우 격정적인 춤사위로 연회장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옷차림도 육감적인 몸매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배꼽을 드러낸 야한 옷을 걸친 그녀는 베일에 살짝 가린 얼굴가득 미소를 흘리고 있었는데 특히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뇌쇄적인 눈길과 한 번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모두를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살로메의 요염한 자태와 춤사위는 연회장에 있는 모든 남성들의 넋을 홀랑 빼놓고 있었는데, 명색이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요 의붓아버지인 헤롯의 눈길마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렇게 격정적인 춤사위를 끝낸 살로메가 춤을 끝내고 헤롯의 앞에 살짝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을 때는 연회장이 박수갈채로 떠나갈 것 같았다.
"살로메! 참으로 멋진 춤이었다. 네 너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구나, 말해보아라.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줄 것이다. 이 나라의 반이라도 말이다."
헤롯은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런 의붓딸 살로메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주고 싶었다.
그러나 살로메는 그 즉석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 헤르디아에게로 돌아갔다. 딸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던 헤르디아가 그녀를 손짓으로 불렀다.
"살로메야! 대왕에게 요한의 머리를 베어 선물로 달라고 그래라. 알았지, 꼭이다."
그녀는 어머니 헤르디아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한 후 다시 헤롯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머니 헤르디아가 지시한대로 요한의 머리를 베어 선물로 줄 것을 청한 것이다.
헤롯은 난감했다. 요한이 누군가. 그는 지금 온 백성들이 따르고 떠받드는 예수라는 사람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푼 자가 아니던가. 당대의 선지자이고 의인이며 그만큼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운 자였다.
그런데 그 요한이 자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었다. 어떻게 이복형제의 아내와 결혼을 했느냐는 것이다. 유대인의 율법과 윤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독설을 들으며 헤롯은 자책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었다.
헤롯은 이웃나라인 바위협곡의 동굴도시 나바테이안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었다. 그런데 이복형제의 부인이었던 지금의 아내 헤르디아를 다시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그러자 헤롯과 헤르디아를 향한 요한의 비난이 시작된 것이다.
요한의 가시 돋친 비난의 독설에 몹시 당황하고 화가 난 사람은 헤르디아였다. 감히 왕과 왕비에 관한 일 아닌가. 어찌 감히 독설을 퍼부을 수 있단 말인가. 헤르디아는 요한을 죽일 궁리를 했다. 이 눈치를 알아차린 헤롯은 요한을 붙잡아 이곳 지하 감옥에 감금을 해버렸다.
백성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그를 왕비 헤르디아가 해치기라도 한다면 세상이 시끄러워 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만 것이다. 의붓딸 살로메의 요염한 춤사위에 정신을 놓고 무엇이라도 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설마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할 줄이야 어찌 예상 할 수 있었겠는가.
"살로메야! 그것은 안 된다. 더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 다른 것을 말해 보아라." 그러나 살로메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약속은 천금보다 더 중합니다. 무엇이나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요한의 목을 주십시오, 소녀는 요한의 머리를 원하나이다."
헤롯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사실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곧 근위병들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요한의 목은 그들에 의하여 베어져 은쟁반에 담겨져 살로메의 손으로 넘겨졌다. 선지자 세례요한은 그렇게 죽은 것이다.
성경에는 요한의 죽음이 자신들에게 비난의 독설을 퍼부은 헤롯 안티파스와 왕비 헤르디아의 앙심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주장은 요한의 죽음이 요한을 짝사랑했던 살로메가 이루지 못한 짝사랑에 대한 애증의 복수라는 설이다. 그러나 진실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아르논 강을 출발하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고원지대의 평지를 달리던 버스는 다시 완만한 산악지대의 오르막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 주변의 풍경은 띄엄띄엄 마을들이 바라보이고 올리브나무들이 불규칙하게 서 있는 고원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평평한 산마루 주차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마케루스 산입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별궁 터이고 세례요한이 죽임을 당한 곳이지요." 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마케루스 산은 끝이 뭉툭한 삼각형의 바위산이었다.
주차장에서 잠깐 내려가자 마케루스 산으로 가는 길이 제법 넓다. 양쪽에는 돌로 쌓은 난간까지 만들어진 길은 그 옛날 헤롯이 마차를 타고 오르내리던 길이었으리라. 산 주변은 돌투성이의 사막산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황량한 산지에 사람들과 짐승들이 살고 있었다. 저 아래 구불구불한 산길 위의 경사진 비탈면에 동굴이 몇 개 보였다. 그리고 그 동굴 앞에는 이부자리로 보이는 빨래가 널려 있는 모습도 보인다. 베두인들의 동굴 거주지가 분명했다. 돌아올 때 살펴보기로 하고 헤롯의 궁전 터였던 산꼭대기로 향했다.
"산꼭대기로 가시기 전에 이쪽으로 먼저 오십시오. 이곳이 바로 요한이 갇혀있던 지하 감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가이드 안 선생이 안내한 곳은 산 중턱에 있는 바위굴이었다. 그런데 천연동굴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했던 것이 분명한 흔적이었다. 입구에는 돌로 쌓은 출입문의 흔적과 함께 내부에도 두 개로 나누어진 방이 주거흔적을 분명히 남기고 있었다. 이 동굴이 바로 요한이 2년여를 갇혀 지냈던 동굴감옥이라는 것이었다.
요한의 동굴감옥을 둘러보고 다시 산 위로 올랐다. 역시 넓은 마차 길을 걸어 올라가자 옛 별궁 터가 나타났다. 별궁 터는 상당히 넓고 평평했는데 돌을 다듬어 깐 바닥과 주춧돌 위에 세워져 있는 둥글고 커다란 돌기둥들이 서 있는 모습이 그 시절 호화로웠던 별궁 터를 실감케 하고 있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마케루스(Machaerus)별궁은 로마의 알렉산더 안네우스(BC 103-76 )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그 후 건축 광으로 알려진 헤롯 대왕에 의하여 그의 여름 궁전으로 재건되었고, 뒤를 이은 그의 아들이 이 지역을 통치하던 시기에도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역시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별궁 터는 AD 66~73년에 일어난 1차 유대인 반란으로 무너졌다. 반란은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반란군들의 은신처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별궁 터였기 때문이다. 반란군들이 은신하고 있던 이 별궁은 로마군의 진압과정에서 철저하게 초토화 된 후 재건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주춧돌과 일부 벽체, 그리고 덩그렇게 서 잇는 기둥들뿐이었다.
"자! 이곳을 보십시오. 이곳이 별궁안의 우물이었는데 일설에는 요한이 이곳에 갇혀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우물은 깊고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황량한 사막의 산위에 세워졌던 호화찬란했던 별궁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빈터만 남았구먼." 누군가 세상사의 무상함을 탄식하듯 혀를 찬다.
"어머! 저쪽을 보세요? 저기 바다일까요? 호수일까요?" 정말 산 아래 쪽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곳에 바다인지 호수인지 넓은 물이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저게 바로 사해바다입니다. 이 산이 이 지역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어서 주변지역이 대부분 바라보일 것입니다."
사해바다라, 죽음의 바다가 아닌가. 일반 바다표면보다 깊숙이 밑에 내려앉아 있는 죽음의 바다, 그 바다에 비친 석양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별궁 터를 떠나 다시 주차장으로 오는 길 가까이에는 아래쪽의 동굴에서 사는 베두인 목동이 수백 마리의 염소 떼를 몰고 있었다.
뜯어 먹을 풀이 별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 곳에서 그래도 무엇인가를 뜯어먹는 염소들이 신기해 보인다. 어떤 녀석들은 사람 키보다도 약간 큰 나무줄기에 뛰어 오르며 잎을 뜯어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가이드가 우리 예비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베두인 목동에게 그들의 동굴 거주지를 잠깐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을 해 보았지만 남자들이 집을 비우고 있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거절을 한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했던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염소들과 잠시 어울려 놀다가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그 때쯤 사해 위에서 밝게 빛나던 태양도 사해너머 구름위에서 아름다운 노을로 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