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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인들이 책을 읽으면서 곤혹을 겪는 것 중 하나가 '영어 단어 네이션(nation)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흔히 "네이션은 국가로도 번역될 수 있고 민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는 모호하고 부정확한 말로 곤란에서 벗어나곤 한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므로, 네이션을 국가로도 번역하고 민족으로도 번역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 곤란의 책임을 영어권 지식인들에게 돌리고 있지만, 한국보다 더 논리적인 영어권 지식인들이 네이션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갖고 전혀 다른 차원의 두 관념을 연상한다는 것도 어딘가 납득하기 힘든 말이다. 문제는 영어권 지식인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네이션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한국 지식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사소한 번역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네이션을 정확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한국인의 인식세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한국인들의 지적 관심이 국가나 민족이라는 공동체에 집중되어 있고 또 한국인들이 네이션에 관한 영어권 서적을 근거로 국가나 민족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항상 부딪히는 관념이 바로 이 네이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어의 네이션은 한국어의 민족으로 번역될 수 없는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을 얻기 위하여, 서양 지식인들이 네이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사점을 던지는 책이 바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원문 제목은 Imagined Communities)다.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Reflection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이라는 부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경계하기 위하여 자주 인용하는 서적이기도 하다.
2002년에 번역된 한국어판에서는 네이션을 일관되게 '민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기 위하여 뉴욕에서 발행된 1991년 개정 영문판을 열어보기로 한다.
영문판 5~6쪽에서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의 개념을 "그것은 정치적 공동체로 상상되며 또한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것"(it is an imagined political community-and imagined as both inherently limited and sovereign)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그는 네이션을 '제한적이고 주권적인 정치적 공동체'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네이션의 한 가지 특성은 주권을 가진 것(sovereign)이라는 점이다. 주권을 가진 공동체라는 것은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민족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상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의 통념 속에서는 민족은 정치적 주권과 무관하게 주로 혈통이나 언어 혹은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별개의 주권 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같은 민족의 범주에서 이해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각기 다른 주권 하에 있는 재일·재중·재미·재러 동포들도 역시 한민족의 범주에서 이해하고 있다.
네이션 스테이트는 국민국가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처럼 앤더슨을 포함한 영어권 지식인들이 말하는 네이션은 개념적으로 볼 때에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족과 일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번역자들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유형(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한 책)의 책을 읽다가 '과연 이런 측면이 민족에게 해당될 수 있을까?'라며 '어딘가 이상하다'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번역상의 오류 때문이다.
그럼, 네이션은 무엇으로 번역되어야 할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의 시대적 등장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이션 스테이트는 본래 서양 근대사회에서 왕조국가(dynasty state)에 대한 대항으로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네이션 스테이트의 본질은 왕조국가와의 대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왕조국가는 본래 국가권력의 정통성을 신과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왕실에 두고 있다. 이 점은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에 반해, 네이션 스테이트는 국가의 정통성을 국민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네이션 스테이트는 국민주권을 근본이념으로 갖고 있는 공동체인 것이다.
오늘날 일부 한국 지식인들은 네이션 스테이트를 민족국가로 번역하고 있지만, 위와 같이 네이션 스테이트는 본래 국민주권을 이념으로 하는 국민국가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이션 스테이트는 국민국가로 번역되어야 하고, 네이션 역시 국민 혹은 국민국가로 번역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럼, 일부 서양 지식인들이 네이션 스테이트 즉, 국민국가를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국민국가가 표방하는 국민주권의 허위성 때문이다. 국가 지배 권력이 허위의 국민주권론을 설파하면서 국민을 통합해 가는 그 허위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소수의 지배 권력이 국가를 통치하면서도 대중에게는 마치 대중 스스로가 국가 권력의 원천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도록 하는 그 '비열한 정치조작'을 비판하는 것이다.
영어실력 부족인가 정치적 조작능력인가
그런데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이 점에 대한 성찰 없이 네이션을 일관되게 민족으로 번역한 뒤에, 서양의 네이션 이론을 이용하여 한국 내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에는 민족감정 혹은 민족의식만 있을 뿐 민족주의라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데, 일부 지식인들은 서양의 네이션 이론을 이용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 민족주의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들은 한국내 민족주의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의 적'을 상대로 엉뚱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위와 같이, 영어의 네이션은 한국어의 민족과 등치될 수 없는 말이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족 개념은 서양인들의 관념 속에서는 종족이나 인종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다. 네이션은 국민이나 국민국가의 의미로 번역되어야 마땅한 개념이다.
서양의 네이션이 민족으로 번역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민족으로 번역한 뒤에 한국인들의 민족감정을 비판하는 데에 이용하는 것은,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해프닝이 될 수도 있다.
자신들은 네이션을 국민국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부 한국 지식인들이 이를 이용하여 민족국가를 비판하는 모습을 본다면, 서양 지식인들은 아마도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을 의심하거나 혹은 일부 한국 지식인들의 '정치적 조작능력'에 대해 탄성을 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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