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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
<나도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책으로 사회의 질타를 받아 본의 아니게 삶의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던 서갑숙을 오랫만에 만났을 때, 그는 향수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집에 여러 가지 아로마 엑기스를 준비해 두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아로마테라피스트의 면모를 보인 그는 <추파>라는 책에서 아로마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연애인으로 바쁜 생활을 영위했던 그를 사회가 내쳤을 때, 몹시도 고독한 한기를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이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상대방의 관심을 끌려는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향수 사용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 역시 발정기나 특정 시기에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특별한 향을 발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향기만을 사용한다. 끊임없이 상대의 사랑과 관심을 자아내려는 인간만은 다른 향기까지 취해 어찌하든 상대방을 유혹하거나 자신이 매력을 더하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향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유럽의 향수의 역사는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파리 시내 역시 온갖 오물이 떠다니고 악취가 풍겨나는 곳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아무런 냄새가 없이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냄새의 천재가 저지르는 살인과 향기에 대한 집착이 이해되기도 한다.

내가 <향수>를 처음 읽은 것은 초판본으로 <향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것이었다. 책을 읽은 느낌은 역겨움과 구토 비슷한 상당히 불쾌한 것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책을 읽은 후 여운은 상당히 오래 갔던 기억으로 미루어 충격이 내게 미친 영향은 의외로 컸던 것 같다.

아스름하게 기억이 잊혀질 무렵부터 사람들은 <향수>라고 번역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에 다시금 열광하기 시작해 내 기억 창고를 헤집어 놓았다. 난 그 뒤로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다소 기괴함이 서린 글들을 몇 편 더 읽었으니 그의 글이 지닌 매력 또한 그 나름의 향기가 아닐까.

똑같은 인식의 방법은 아니지만 동양도 사람의 몸 냄새, 즉 체취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계를 설명할 때조차 그 사람은 사람 냄새가 난다느니,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아 정이 가질 않는다느니 하는 것을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냄새에 이끌려 인간들이친분 관계를 쌓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상큼한 풀잎 향이나 장미향, 방금 볶아 낸 듯한 커피향기라도 스며들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냄새의 출처나 주인공을 찾게 되고 기분이 새로워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냄새, 즉 향기라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향수>는 냄새가 전혀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냄새를 식별하는데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천재 살인마의 향기에 대한 집착을 다룬 이야기다.

이미 네 명의 영아를 유기 살해한 살인마인 어미로부터 버려진 장 그르누이는 한 신부의 손에 길러진다. 그리고 타고난 후각을 활용하여 가지가지 향기를 분석해내고 조합하면서 최고의 향기를 낼 수 있는 향수에의 집착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긴다.

"향수에게는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가 있었다. 그 세 단계마다 언제나 똑같이 쾌적한 향기를 풍길 때에만 비로소 그것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혼합물이 처음 만들었을 때는 정말로 상큼한 향기가 났으나 금방 썩은 과일 냄새가 나다가 결국에는 지나치게 들어간 사향으로 인해 메스꺼운 냄새로 변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치 사람의 생을 향기에 비유해 묘사한 듯한 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에게 향기 나는 아름답고 환한 존재로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또는 사랑받고 싶은 상대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추해지고 악취가 나는데 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더한다는 사실 때문에 때론 나무의 생이 부럽기조차 했다.

향수의 재료는 다양해서 동물성, 식물성, 광물성, 화학성분까지 다양하고 작가는 향수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작품에 녹여 내 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진정 다루고 싶어 했던 주제는 최고의 향기를 발하는 향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욕망과 인간 자신이 품어내는 향기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아무도 그걸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세상에 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정체가 향기라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존재지만 그 자신은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의 향기에 도취되지 않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자신이 세상과 상대방을 향해 사랑이 아닌, 무관심과 증오만을 내뿜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꽃보다 진한 향기를 내뿜어서가 아니라, 꽃보다 진한 소통의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모든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사람에게서 향기를 맡을 수는 없을 테니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가 아닌,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재로 세상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그르누이와 다르지 않은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새삼스럽게 <향수>에서 구토와 메스꺼움이 아니라, 살인자 그르누이의 고독과 절망이 읽혀졌다는 것은 내 자신의 향기와 관계망이 그만큼 퇴색되었다는 의미일까?

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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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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