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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을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할머니들의 설움을 누가 달랠 수 있을까.
70~80년을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할머니들의 설움을 누가 달랠 수 있을까. ⓒ 최종수

26일 새벽 1시, 잘못 결려온 전화에 잠을 깼다. 눈을 감자 별 하나가 떠올랐다. '대추리 마지막 미사'라는 별,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샛별이었다. 아니, 대추리와 함께 했던 날들이 무수한 별들의 은하수처럼 빛을 발했던 것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방문한 사람도 이렇듯 밤잠을 설치는데, 80~90년 동안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심정을 어떠할까?

오후 2시경 동료 사제와 정안 휴게소를 지나자 잿빛 하늘이 천둥번개를 치며 장대비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대추리 공소의 마지막 미사를 하늘도 안 것일까. 평택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대성통곡 뒤에 잦아드는 흐느낌처럼 하늘은 이슬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널따란 들판을 가로지르자 황새울에 버티고 있는 미군기지에 들어섰다. 반세기 동안 한 번도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철조망도 흐느끼는 이슬비의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있다. 철조망에 갇혀있지만 산과 밭이었던 기지의 땅에서는 본능처럼 파릇파릇 싹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황새울 들판도 우산이 젖혀질 만큼의 비바람으로 울고 있다. 평화공원의 파랑새도 제 몸 안으로 바람을 통과시키며 아픈 휘파람을 불고 있다. 한동안 뵙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을 잡자 이내 눈물을 글썽이고 만다.

미사 전에 시작된 십자가의 길, 일본군의 침략과 미군의 주둔으로 얼룩진 황새울 들판의 애환을 지고가는 평화의 기도였다. 그 십자가의 길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가로질러온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한을 승화시키는 희망의 길이기도 했다.

오후 3시 마지막 미사가 봉헌된다. 사제단 대표 신부(전종훈)가 오지 않기를 바랐던 마지막 미사에서 각혈하듯 말문을 열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935일 동안 밝혀온 촛불, 그것은 자주와 통일, 정의와 평화의 횃불로 기억될 것이다. 그 촛불은 꺼졌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 옮겨붙은 세상의 빛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는 꺾이지 않는다. 우리가 백번 천번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간다면 말이다."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와 총무 김인국 신부.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와 총무 김인국 신부. ⓒ 최종수
사제단 총무(김인국) 신부의 푸른 희망의 강론이 이어졌다.

"비통하고 괴로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둘 것이다. 이 노래를 먼저 불렀던 역사의 이웃들이 있다. 땅은 마음이 온유한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는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것은 단순히 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를 살리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주와 통일, 정의와 평화의 몸부림이었다.

조상님의 묘를 불도저가 밀고 갔지만 조상들의 피와 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를 고향에서 쫓아내지만 우리 조상들과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했던 투쟁의 역사는 쫓아낼 수 없다. 우리가 흘렸던 서러운 눈물을 심고 간다. 빼앗길 수 없다는 우리의 한을 심고 간다. 그 설움과 한이 무성한 숲이 되는 날, 더러운 전쟁의 기운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이 땅을 되찾을 것이다. 미군이 없는 나라, 통일된 세상은 기필코 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땅을 사랑했던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하겠다."

미사 중에 나누는 평화의 친교, 모든 사람이 동그란 원을 만들고 돌아가며 나눈 평화의 인사. 그만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는 할머니들과 할아버지, 신부들과 신자들, 그리고 평화지킴이들.

눈송이 하나가 굴러 만들어가는 눈덩이처럼 한 사람 두 사람 나누는 평화의 인사는 이별의 슬픔을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게 했다. 눈망울마다 맺힌 눈물방울들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시내가 흐르더니 어느새 강이 되고 거센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가 되고 말았다. 부둥켜안은 가슴들이 어느새 통곡의 바다를 이룬 것이다. 여기저기서 화산처럼 분출하는 '어허허! 어허허!' 대성통곡….

누가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피눈물을 강요하는가
누가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피눈물을 강요하는가 ⓒ 최종수
미사 공지사항 시간에 수원교구 사제대표(이상헌)가 인사말을 한다.

"저희 집은 땅 한 평이 없었다. 사제가 되기 전까지 무허가 집에서 살았다. 저 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곳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과 좌절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클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었다. 나라의 주권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를 대신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불평등한 것에 맞서 싸웠다. 정의와 평화에 어긋나는 일을 바로 잡으려고 피눈물을 흘렸다. 그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마을 주민을 대표해서 김지태 위원장의 아버지(김석경)가 감사의 말을 이었다.

"저희는 마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무자비한 공권력에 논바닥에 처박히기도 했고 갈비뼈가 금이 가고 다리가 부러지고 정말 피눈물 나게 싸웠다.

1만명 2만명이 함께 모여 황새울을 평화의 들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미국과의 싸움은 할 수가 없었다. 전국 각지 해외에서까지 모여와서 촛불을 밝혔다. 너무도 많은 빚을 진 것 같다. 한 가족처럼 살았던 평화지킴이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대추리를 평화예술의 마을로 꾸며준 모든 작가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할 때가 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더 드릴 말이 없다."

김석경 할아버지와 문정현 신부가 마주보며 울음을 삼키고 있다.
김석경 할아버지와 문정현 신부가 마주보며 울음을 삼키고 있다. ⓒ 최종수
대추리 주민이 되어버린 문정현 신부가 울먹이며 감사의 말을 이었다.

"주민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촛불집회 때마다 별 짓을 다했다. 성서를 읽기도 하고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노래도 불러보고 춤도 추워보았지만 그것 또한 잠시의 위로였다. 그 어떤 말로도 행동으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 너무 가혹하다. 끝났다, 어디를 가도 '대추리 이제 끝난 것 아니냐' 묻는다. 무엇이 끝났다는 말인가. 신앙이 무엇인지, 내가 내 목숨을 끊는 것을 빼고는 다 해보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지금 무엇인가. 그냥 글로 말로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대추리에서 배웠다.

여기서 나간다는 자체가 불을 보듯 뻔한 삶인데 그것을 지켜만 본다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참 많이 울었다. 한 뼘 정도 자란 마늘을 단념하지 못한다. 당장 내일이면 마을 비워야 하는데, 저 마늘 먹고 가야 하는데 소리만 한다. 내 옆집도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다. 잠을 못 자는 것 같다. 나도 잠을 깨면 잠을 자지 못하는데, 대추리 밖은 너무도 평화롭다. 너무도 야속하다.

십자가의 길, 정의와 평화의 길을 대추리 주민들이 없었다면 갈 수 없었다. 땅을 지키기 위해 피눈물 나게 싸우는 주민들이 사제가 사제로 살 수 있도록 지켜준 사람들이다. 내 삶의 예언자들은 주민들이다. 그동안 억울하게 땅과 집, 고향과 일자리를 빼앗기는 주민들의 편에서 함께 한 사람들. 대추리 들녘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이 모든 분들이 평화의 파수꾼들이라 생각한다."

미사를 마친 사제와 신자들이 평화공원 파랑새 앞에 모였다.
미사를 마친 사제와 신자들이 평화공원 파랑새 앞에 모였다. ⓒ 최종수
미사가 끝났다. 서로 손을 잡고 놀 줄 모른다. 여전히 할머니들의 눈에선 강물이 흐리고 있었다. 파랑새도 모진 바람에 울고 있는 평화공원 앞에서 한 어르신이 손을 잡고 울먹인다. 눈물의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일까.

"신부님, 어떻게 산대요. 70년을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아요. 술로 살아요. 술에 취해서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잠이 오지 않아요. 다시 소주병을 들고 한숨을 안주삼아 마십니다. 알코올 중독되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민병대)"

손을 놓고 돌아서는 눈가에서 붉은 이슬을 훔치고 말았다. 여우도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로 머리를 돌린다는 수구초심이 떠올랐다. 고작 수명이 10년 정도인 여우도 그러한데 대대로 조상들이 살아온 고향에서 태어나 80~90년 동안 살아온 주민들에게 고향은 어떠하겠는가. 자기 발로 떠나는 고향이 아니지 않는가.

주민들의 고통은 오직 주민들 밖에 모른다. 그 고통을 모르면서 평화를 말할 수 없으며 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평화를 원하면서 대추리 주민들을 기억하지 않는 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화분을 만들어 대추리 주민들과 다시 찾아올 황새울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흙을 담는다.
화분을 만들어 대추리 주민들과 다시 찾아올 황새울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흙을 담는다. ⓒ 최종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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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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