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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협상,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만 남았다.
한미FTA 협상,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만 남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VIP (대통령) 결정만 남았다고 봐도 된다."

29일 정부 한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말을 꺼렸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진행상황에 묻자 "거의 정리돼 간다"고 답했다. 협상 결렬 가능성에 대해선 "글쎄…"라면서 "저쪽(미국)에서 이상한 것(쌀) 내놓지 않으면…"이라고 말해 타결쪽에 무게를 뒀다.

'국민에게 선물이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말에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뭔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해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1년여 끌어온 한미FTA가 종착점에 다다랐다. 29일 통상장관급 협상 나흘째인 서울 하얏트 호텔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호텔 주변을 둘러싼 경찰 병력의 경비는 더욱 강화됐다. 호텔 로비를 비롯해 협상장 곳곳은 정사복 경찰이 대거 들어와 있다.

협상시한(31일 오전 7시)까지 이틀이 채 남지 않은 29일, 한미 양쪽 통상장관의 마지막 '딜'이 시작됐다. 핵심 쟁점은 농업과 쇠고기, 자동차, 섬유, 무역구제 등 10여개다. 이들을 두고 막판 '주고받기'가 시도된다.

장관급에서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초민감 2~3개 분야는 한미 정상간 막판 담판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동을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오는 30일 오전 돌아온 뒤, 오후에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타결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99% 협상 끝... 김현종과 바티아의 담판

29일 협상엔 양쪽 통상장관들이 끝장 협상에 나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이들 이외 민동석 농림부 통상정책관과 이재훈 산업자원부 제2차관,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 이혜민 외교통상부 한미FTA기획단장(상품분과장), 이건태 외교부 국장(지적재산권 분과장) 등도 막판 쟁점을 조율하고 있다.

핵심 안건은 크게 10여가지. '협상 결렬 요인'(딜 브레이커, Deal breaker)인 쌀을 포함해 쇠고기, 민감농산물(돼지고기, 닭고기, 오렌지(감귤), 사과, 포도, 고추, 마늘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 자동차, 방송-통신, 금융의 일시 세이프가드, 지적재산권(저작권 연장과 비위반제소 포함),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무역구제, 개성공단, 섬유 등도 들어가 있다. 특히 개성공단 문제는 일단 '타결후 추후 협의'쪽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통상장관급 협상의 주요 안건이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협상단 안팎에선 이들 가운데 패키지 형식으로 묶어 막판 '주고받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쪽 고위인사는 "농업과 쇠고기가 거의 막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사실상 협상 99%는 정리됐고 오늘중으로 주요 쟁점도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쌀과 쇠고기' 지키고 다 내주는 시나리오?

26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시작된 한미 FTA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한미 양국의 대표로 나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협상에 들어가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26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시작된 한미 FTA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한미 양국의 대표로 나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협상에 들어가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문제는 쟁점 정리과정에서 한국이 얼마나 이익을 올릴 수 있느냐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왜냐면 쟁점 대부분이 우리의 이익보다는 방어적인 안건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있지만 쌀 문제를 비롯해 민감한 농산물, 쇠고기, 자동차와 방송-통신, 지적재산권 등 대부분 미국의 공세가 거센 것들이다. 우리쪽에선 미국 자동차시장 관세철폐와 섬유, 투자자-국가소송제의 예외조항 인정 정도다.

특히 쌀과 쇠고기의 향방이 이번 협상 타결의 핵심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들 분야에 대한 미국쪽의 양보를 강조했고,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협상 태도를 볼때 미국은 마지막 주고받기 과정에서 쌀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쇠고기와 연계시킬 수도 있고 다른 농산물 개방 폭 확대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은 "미국은 마지막에 쌀문제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국의 대폭적인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쟁점에서 쌀을 지렛대로 삼아 1~2가지라도 얻어낼 것으로 보인다.

또 지적재산권과 투자 등 다른 쪽에서 협정문에 자신들의 요구가 보다 분명하게 명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이 최대한 협상력을 발휘해 쌀과 쇠고기를 지킬 경우 나머지 섬유와 자동차, 의약품, 지적재사권 등 상당 부분에서 양보안을 내놓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결국 미국쪽 공세에 밀려 내줄건 다 내주고 협상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쪽에선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타결과 결렬의 기로점에 선 노무현, 결정은...

중동 3개국을 순방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협상 진행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협상의 최종 결정은 자신이 직접 내릴 것이라는 의지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28일 동포간담회에서 "한국에 들어가서 마지막 보고를 받고 마지막 한 두개 꼭지를 따야 될지도 모르겠다"며 "마지막 결정은 전문가가 아니라 설명을 충분히 들은 최종 책임자인 내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장관급 회담에서도 타결이 되지 않을 경우 최종협상의 내용을 듣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 판단이 타결이 될지, 아니면 결렬이 될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 청와대쪽 설명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그동안 발언 추이나 내용을 보면 결렬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도 타결에 좀더 무게가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도 "우리도 그동안 국내산업을 보호하면서 점진적 개방했고 논란은 있지만 매번 개방은 다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은 FTA시대이며 적절한 속도로 관리하겠다"며 '낮은 수준'이라고 말해 타결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정치학)는 "과거 개방과 현재의 한미FTA와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면서 "과거는 선택적 개방이었지만 이번 협상은 포괄적이고, 사실상 경제 모든 분야에서의 전면적 개방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한국 사회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한미FTA가 예정된 타결로 갈지, 극적인 결렬로 갈 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종 결심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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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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