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과연 이 사회를 한국이라고 할 수 있을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인 백승헌 변호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미FTA 체결 조항이 국내법과 충돌하는 탓에 현행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이 과연 우리가 살았던 혹은 살아야 할 한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바꿔야 할 현행'법으로 자동차 관련 법안을 예로 들었다. 미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관세철폐(3년 이내)를 받아들이면, 특별소비세법·지방세법 등 자동차 관세와 관련된 국내법 조항을 다 개정해야 한다.
백 변호사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자동차 관련 법안뿐만 아니라 100개가 넘는 국내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 반면 미국이 바꿔야 할 법률은 단 한 개도 없다"며 "이 자체가 불균등 협상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사회 시스템을 교류하는 것이라면 양자가 서로 장점을 취해야 하는데, 국내법만 바꾼다면 우리가 미국의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창립 이후 네번째 철야농성
29일 오후 백승헌 변호사는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한미FTA 졸속 협상'에 반대하며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회원 30여명과 기자회견을 열고 " 법률가의 양심과 국민의 이익에 비춰볼 때 한미FTA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민변 창립 이후 회원들의 철야농성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금까지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노동법 개정 반대 등을 주장하며 사무실에 자리를 폈다. 한미FTA 체결이 이라크 파병, 국보법 이슈들과 같이 엄중한 것일까.
백 변호사는 "국보법은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이 있지만, 한미FTA는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는데도 돌이킬 수 없는 문제"라며 "워낙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다 국민의 힘만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부연했다.
또한 백 변호사는 "개헌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올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은 야당의 묵살과 국민의 관심 부족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FTA는 우리 생활에 더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투표를 통해 찬반을 묻거나 그에 앞서서 협상 내용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한미FTA 타결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데 대해 백 변호사는 "참여정부의 이름에 부끄러운 절차"라며 "국민 참여라는 민주주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뒤늦게 FTA 반대 움직임에 동참하지만, 마음은 무겁고 결연하다"고 말했다. 민변 회원들은 협상 마감 시한인 31일 오전까지 농성장을 지킬 예정이다. 이들은 이날 저녁 7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한다.
"한미FTA, 개헌보다 국보법 폐지보다 더 크다"
민변은 기자회견문에서 "비정규직 법안, 국보법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 주장이 좌절됐을 때도 이렇게 절망스럽지 않았다"며 절박함을 강조했다.
이들은 "후대에 물려줄 자연환경 보호를 위한 환경정책, 공공서비스를 위한 통신정책, 저소득층을 위한 공익적 국가정책들이 한미FTA 협정에 의해 모두 폐기돼야 한다"며 "국가정책을 고수하겠다면 한국정부는 국제중재기관에 제소당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들은 "노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는 민주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독선적이고 편협한 고집으로 국민들을 '우매한 백성'이라 치부하고, 한미FTA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만 강요하는 등 군사정부 시절 독재자들의 망령을 재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