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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 천안행 지하철을 찾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자리는 없고, 마땅히 시간을 때울 소일거리도 없고, 집에 있자니 자식들 눈치가 보인다. 특별히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이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낼 곳이 그나마 덜컹거리는 무료 지하철이다.

65세 이상은 경로우대권으로 지하철·전철 전 구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기차여행을 하듯 바깥 풍경까지 구경할 수 있어 지하철이 무료한 노인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오전 11시, 지하철 1호선 천안행.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노약자석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로 바깥 풍경을 구경한다. 한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엔 뻥튀기처럼 보이는 과자들이 들어 있다. 한참 창밖을 바라보더니 곧 잠이 든다. 종착역인 천안역에 도착하자 두리번거리는 기색 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간 곳은 역 내에 있는 분식집. 1000원짜리 튀김 어묵을 먹으며 종업원과 정치 이야기, 세금 이야기를 잠시 나누더니 반응이 시큰둥하자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역 주변 커피 자판기 앞. 삼삼오오 노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 남성이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사람도 간간이 눈에 띈다. 언뜻 보기에 같이 천안행 지하철 여행을 온 사람들 같진 않았다. 역 근처에서 만나 '커피 친구'가 된 분위기였다.

1호선 천안행 무료 이용... 노인들로 붐벼

역 주변에서 신문을 읽던 한 노인(69·인천시)은 "아침에 간식거리를 들고 천안행 지하철을 타면 오고 가며 6∼7시간이 후딱 지나가기 때문에 시간때우기 딱 좋다"고 말했다. 돈을 쓰지 않고 따뜻한 공간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천안행 지하철이 노인들의 아지트로 떠오르는 이유라는 얘기다.

천안역에서 하루 발급하는 노인 무임승차권은 2500장 남짓이다. 서울 기준 편도 2300원짜리 승차권 2500장이 무료로 나가고 있는 것.

천안역의 한 직원은 "천안역에 오는 어르신들의 95%가량이 역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다 다시 돌아간다"며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분들은 택시를 타고 인근 아산·온양온천, 현충사, 독립기념관, 병천 아우내장터 같은 관광지를 찾는 등 제대로 천안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5%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역 관계자와 상인들은 천안역을 찾는 노인들의 80% 이상은 남성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오기보다 혼자 역을 찾는다고 귀띔한다. 친구들과 여행 삼아 천안행 열차를 타는 여성 노인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남몰래 혼자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을 찾는 남성들이다.

오전 10시대·오후 4∼5시는 '실버타임'

이렇게 천안행 열차가 노인들의 아지트가 되다 보니 지하철을 이용해 천안으로 통학하는 대학생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 노인들과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이 오전 10시대, 오후 4∼5시로 비슷하기 때문에 선 채로 장거리 통학을 하는 학생도 많다. 일부 학생들은 이 시간대를 '실버 타임'이라고 부르며 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평택역에 있는 스낵바 직원 이아무개(50)씨는 "평택역만 하더라도 무료승차권을 발급받아 온 노인들 천지"라며 "노인들 때문에 서울에서부터 서서 온 학생들이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전동차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떠돌 수밖에 없는 노인들과 그런 노인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 노인들의 노후가 덜컹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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