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영성>(예수살렘출판사)을 내놓은 지성수 목사는 자신을 '비주류 인생'이라고 규정한다. 젖을 떼기도 전에 부모가 헤어지고, 호주에서 유색인으로 택시 운전을 하는 주변인으로 살았으며, 목사의 세계에서도 비주류의 길만 걸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에게 강자와 차이가 난다는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톡톡히 경험했다. 강자에게는 차이가 행복이지만, 약자에게는 그것 자체가 차별이고 폭력이다.
지 목사는 자신을 비롯해 4명의 대구성서아카데미 필진의 공동 출판기념회가 열린 29일 수유리교회(목사 방인근)에서 차이를 차별로 몰고 가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삶을 이야기했다. 강연 주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삶-차이의 축제'였다.
지 목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차이'가 '차별'로 변하는 과정을 근대라고 한다며 서구·백인·유럽중심주의가 낳은 폐해를 설명했다. 지 목사는 우리 역사에서도 차이를 차별로 경험한 사례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하는 큰아들이 일본에 다녀와서 '조센징은 그저 조선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말에 흥분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지 목사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아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조센징은 한국 사람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의미로 쓰였다고 말했다.
교회는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곳
세상에 존재하는 차이 가운데 가장 민감한 것이 종교적인 차이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만큼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치열한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에 대해 지 목사는 "세상 어디에 가도 내가 절대적으로 옳고 네가 그른 경험을 하기 힘들 것이다, 교회에서는 내가 절대세계에 가깝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 내부의 싸움에는 어떠한 약도 듣지 않으며 그러한 싸움은 가장 치졸한 방법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이러한 차이를 차별로 이해해 서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지 목사는 강조했다. 지 목사는 재미있게도 이러한 덕목을 잘 구현하는 나라가 북한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북한의 외교를 두고 '악동외교'나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하지만, 지 목사는 북한 외교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외교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반론을 폈다. 외교라는 게 크고 강한 나라가 힘을 바탕으로 약한 나라에게 자신의 논리를 설득하는 과정인데, 북한은 미국에게 큰 나라가 양보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허위의식을 깬 악동, 북한
지 목사는 "과거에는 약자의 논리가 통하는 외교는 어림도 없었다"며 북한의 외교를 평가한 뒤 "게다가 북한은 핵에 대한 사람들의 허위의식까지 깼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등 일부 강대국만 핵을 보유하면서 자신들이 핵을 보유한 이유가 세계 평화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는데, 가난하고 약한 국가도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것.
지 목사는 얼마 전 파키스탄이 인도를 향해 작은 공격에도 핵으로 응수하겠다고 말해 인도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 경우를 예로 들며, 가난한 나라가 핵을 가졌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이렇듯 차이를 차별로 해석하는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허위의식을 깨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 목사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만들고 잘못된 상황을 그럴듯한 수사로 홀릴 때, 당연한 주장 뒤에 어떤 힘과 논리가 숨어 있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공부는 퍼즐이 아니다
지 목사는 인류에게 가장 큰 허위의식을 심어준 게 바로 종교, 특히 기독교라고 주장했다. 지 목사는 과거 한국에서 유행한 웬만한 성경 공부 모임은 다 찾아다녔지만, 대부분 문제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시중 교회에서 하는 대다수 성경 공부는 퍼즐 게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지 목사는 "처음에만 어렵지 조금만 하면 쉬워지고 나중에는 눈 감고도 하는 게 일반 교회의 성경 공부"라며 "어디 진리가 그렇게 퍼즐 같은 것인가"하고 말했다.
지 목사는 기독교 안에는 누군가 질문하면 서로 답을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답을 제시하기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에 매달리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기성 교회는 쉬운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데만 힘을 쏟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지 목사는 "기성 교회는 회개하고 축복 받아 천국 가는 것만 가르치며, 돈을 바치면 축복 받는다고 극약 처방까지 내린다"며 "교회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공장 같은 곳이 됐다"고 개탄했다.
지 목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가르치는 사람들만이라도 최소한의 문제의식을 갖춰야 한다며 목회자들이 깨어날 것을 호소했다. 나아가 차이를 대립과 갈등으로 몰고 가는 옛 습속을 버리고, 차이에서 창조적인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며 강연을 매조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