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의 실패로 우리 문화콘텐츠를 전문적으로 기획, 마케팅 할 수 있는 인력을 길러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9일 역삼동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서병문)에서 열린 2007 문화콘텐츠 기획·창작 아카데미 입학설명회에서 아카데미 대표교수 이현세 화백은 이렇게 밝혔다.
이날 특강의 주제는 다양하게 OSMU(원소스멀티유스) 할 수 있는 ‘토털 콘텐츠’를 만들자는 것. 토털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그 프로젝트를 기획 및 마케팅 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내자는 논지다.
이 화백은 특히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토대로 한 솔직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자신의 만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 <아마겟돈>의 실패로 먼저 입을 열었다.
만화 <아마겟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은 1994년. 당시 <주라기 공원>의 폭발적인 흥행 행진 등으로 삼성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제작붐이 싹트던 때였다.
4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된 <아마겟돈>. 전례가 없던 시도였던 터라 이 화백은 물론 업계의 기대는 컸다. <망치>, <홍길동>, <붉은매>, <오돌또기>까지 <아마겟돈>의 뒤를 잇기 위해 기다리던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고, 이를 통해 이 화백이 느낀 바는 컸다.
“당시만 해도 국내 창작애니메이션의 개척시기라고 여겼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우리나라는 OEM강국이지, 애니메이션 강국은 아니었다. 기계가 있어도 그것을 다룰 사람이 없더라.”
그 ‘사람’은 비단 만드는 사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정작 중요했던 것은 그 창작품을 기획해내고, 팔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이른바 기획자와 마케터의 부재였다.
그는 이러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수년 전부터 만화가협회, 세종대 교수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해오고 있고, 이 아카데미의 대표교수직에도 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토털 콘텐츠’야말로 현재의 소비자들과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및 통신 환경에 적합한 것이며, 콘텐츠의 체계적인 멀티유즈가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면 파이가 적은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기도, 살아남기도 힘들다.”
이 교수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영화, 게임, 음악 등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기획과 마케팅 인력이 있어서”라고.
후학과 기획 및 마케팅에 대한 인프라를 위해 일하는 일 뿐만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그러한 ‘토털 콘텐츠’의 모델을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연초 한 스포츠신문을 통해 선을 보인 만화 <버디>를 통해서다.
“지난 1월 국내 최초 골프만화를 표방한 <버디>를 선보인 것은 순수하게 창작 그 자체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신문의 젊은 독자는 물론 골프에 관심있는 중년 독자들에게까지 읽힐 만한 다양한 방법들을 찾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여자가 선의의 경쟁 속에 미국 LPGA에까지 진출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골프’라는 특성상 이미 한 의류업체와 PPL을 맺었으며 TV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이는 모두 그가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부분.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하게 확산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만화만 사랑하고 생각하고, 오로지 만화를 그려내는 일로 평생을 보내온” 그로선 힘든 일이었다. 한때는 “작가와 장이로서의 가치에만 신경을 쓰고 돈벌이에 신경쓰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도 했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순수예술, 상업예술 등의 구분을 떠나 기본적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야기, 사람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진 작품이라면 모두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이러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다양하게 퍼져나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나가고 싶다"고 굳은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