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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겨울이 가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던 하얀 눈가루가 봄꽃으로 다시 피어난 듯하다.
벚꽃은 겨울이 가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던 하얀 눈가루가 봄꽃으로 다시 피어난 듯하다. ⓒ 김연옥

여기저기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화려한 봄날이 왔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서도 생명이 아름답고 놀라운 선물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계절이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저마다의 색깔로 이 세상을 예쁘게 물들여 가는 봄꽃들로 나이가 먹을수록 나는 따뜻한 봄이 좋아진다.

지금 나는 중학교 선생이다. 게다가 오랜만에 담임까지 맡았다. 지난 29일 아침에 내 반 학생이 코에 피어싱을 하고 등교를 했다. 물론 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조그만 반창고를 코에 붙이고 다녔던 게 언뜻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벚꽃은 아이의 뽀얀 얼굴 같다.
벚꽃은 아이의 뽀얀 얼굴 같다. ⓒ 김연옥

그 학생이 너무 앞서는 건지 내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건지 모를 일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짜여진 틀에 길들여지지 않아 사고(思考)가 더 자유로운 것 같다. 피어싱을 한 이유를 물으니 한마디로 '예뻐서'이다.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혓바닥에 피어싱을 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그 학생은 자기 만족이 이유라고 했다. 지금은 내 선에서 그녀의 비밀을 묵인해 주고 있지만, 시간을 내어 한번 이야기를 길게 나누어 볼 생각이다.

나는 점심 시간에 학교 근처에 있는 개천으로 나갔다. 출근길에 본 화사한 벚꽃과 목련이 자꾸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날처럼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때에는 자연 속으로 뛰어드는 게 가장 좋다.

그곳 연애다리에서 바라보는 벚꽃과 목련의 풍경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처음 다리 이름을 들었을 땐 이상해서 우습기만 했다. 그런데 사연을 들어 보니 절로 고개가 끄떡여졌다.

ⓒ 김연옥

예전에는 직장에서 돌아온 선남선녀들이 그 다리로 많이 놀러 나왔다고 한다. 그곳 경치가 하도 좋아서 자연스레 사랑을 속삭이게 되니 연애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거다.

벚꽃은 마치 무슨 미련이 있는지 겨울이 가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던 하얀 눈가루가 봄꽃으로 다시 피어난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뽀얀 얼굴 같다. 새들도 즐거운 듯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세 알아차리고 뽀르릉 날아가 버린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연애다리를 지나가다 내 디지털 카메라에 담은 경치를 굳이 보고싶어 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밑에 서 있는 우리 학생들의 얼굴도 보송보송하다. 사실 그날은 이상스레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다.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렸다고나 할까.

학생들을 야단칠 일도 있었고 학급 일로 잘잘못을 따져야 할 일도 있었다. 화(火)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후회스럽다. 나라는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지혜가 늘 부족한 것 같다.

대곡산에도 연분홍색 등불을 밝히듯 고운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대곡산에도 연분홍색 등불을 밝히듯 고운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 김연옥

퇴근길에 직장 가까이에 있는 대곡산(516m·경남 마산시)을 찾았다. 화난 마음 상태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연분홍 진달래, 샛노란 개나리가 나를 반겼다. 그 봄꽃들은 내 못난 속내를 짐짓 모른 체하는 것 같았다. 대곡산 군데군데에는 연분홍색 등불을 밝히듯 고운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간간이 가는 빗줄기가 흩뿌렸다. 시간이 늦어 정상까지 갈 수 없어 다시 돌아 내려갔다. 나는 혼자서 진달래꽃에 눈을 맞추고 코를 박으며 행복해했다. 누가 보면 혼자 웬 청승을 떨고 있나 했을 거다. 그래도 기분이 한결 가뿐해졌다.

복숭아꽃의 자태가 참 곱다.
복숭아꽃의 자태가 참 곱다. ⓒ 김연옥

대곡산에서 내려와 만날고개를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우연히 작은 텃밭에 노란 배추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 보는 배추꽃이다. 배추 하면 맛있는 김치만 떠올리던 내가 갑자기 쑥스러워진다.

마침 그 집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그 집 복숭아꽃을 나와 같이 쳐다보던 주인 아주머니는 그 나무에서 열리는 복숭아가 참 맛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만날고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도 붉은 처녀꽃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그 집 아저씨가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다 붉은 꽃으로 변한 순결한 아가씨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한 남자만을 사랑한 여인의 애타는 가슴을 보는 듯한 처녀꽃을 뒤로 하고 나는 점차 어둑해져 오는 길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붉은 처녀꽃은 한 남자만을 사랑한 여인의 애타는 가슴을 보는 듯하다.
붉은 처녀꽃은 한 남자만을 사랑한 여인의 애타는 가슴을 보는 듯하다. ⓒ 김연옥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도종환의 '책꽂이를 치우며'


봄꽃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이 세상을 물들이는데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자연이 참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화려한 봄날이 왔다. 꽃이 피어나듯 우리의 마음도 깨어났으면 싶다. 그래서 봄꽃 같은 사람들끼리 따뜻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우리 학교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아래 있는 학생들의 얼굴도 보송보송하다.
우리 학교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아래 있는 학생들의 얼굴도 보송보송하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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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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