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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
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 ⓒ 김도연
모래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팔짱 끼고 해 떨어지기만 기다리기엔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았다면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걸어보라. 망주봉을 지나면 곧 나무들의 호위를 받는 아늑한 산책로가 나오는데 그 사이로 비추는 바닷빛 또한 일품이다.

다시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도 돌아와 이번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와 하늘을, 그리고 어쩌면 바다인지도 모를 하늘을, 혹은 하늘인지도 모를 바다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눈앞의 가장 가까운 섬 뒤로 수줍게 제 모습을 숨긴다.

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 일몰
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 일몰 ⓒ 김도연
그 날의 석양은 분명 여행안내책자에 쓰여 있는 것처럼 경이롭고 황홀한 ‘불바다’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붉음은 보고 있는 사람을 비롯한 세상을 자신과 같은 색으로 물들이기에는, 그래서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부안 모항 가는 길

부안터미널에서 격포행 버스에 오르면 약 30분 남짓 변산반도를 낀 부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를 감상할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버스 오른쪽 창가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왼쪽에 자리하면 바다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논밭만 줄곧 이어진다.

어쨌든 넋을 놓고 감탄사를 연발하다보면 채석강과 함께 있어 더 유명한 격포에 닿는다. 하지만 너무 이름난 관광명소인 탓에 바다보다 먼저 눈에 띄는 즐비한 횟집과 모텔의 북적거림이 영 석연치 않다면 그때가 바로 진정한 ‘떠남의 미학’을 체험할 시점이다. 모항까지는 걸어가 보는 것이다!

부안군 모항갯벌해수욕장
부안군 모항갯벌해수욕장 ⓒ 김도연
버스를 타면 10분이 채 안 걸릴 거리를 100분 동안 걸어간다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말 비경제적이라고, 그 시간을 아껴서 한 곳이라도 더 보는 게 낫겠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지도 위에 그려진 무수한 동그라미들을 다 돌아보는 것 자체가 떠나온 목적이 아니라면 일단 버스가 줄곧 달려온 30번 국도로 나가 모항 쪽을 향해 서보라. 그리고 발을 떼어보라.

이제 그 길을 내 발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버스 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길이 나를 위한 길로 변모한다. 그 길을 걷는 내내 온몸에 활짝 열린 창으로 차의 속도가 만들어내는 작위적인 바람 대신 대지의 숨결이 불어오고, 바다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배낭의 무게 속에, 가파른 오르막 속에, 흐르는 땀 속에 매 순간이 살아 움직인다.

이쯤 되면 어느 맘씨 좋은 가족이 내 옆에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물어도 극구 그 친절을 마다하게 된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면 목적지에 더 빨리 닿은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내 몸이 알아챈 탓이다.

그렇게 도착한 모항은 어수선한 이 세상과는 무관한 듯 아주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작지만 세상 만물을 말없이 품어줄 것만 같은 그 포근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하는데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 그것은,

여행이 항상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모항갯벌해수욕장에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아이가 모항갯벌해수욕장에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김도연

덧붙이는 글 | <나만의 여행지>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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